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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Dec 03. 2024

[위키드] 모든 차별과 편견을 거스르다

‘위키드’라는 영화가 담고 있는 가치






의도치 않더라도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판단한다. 남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저열한 목적이든, 아니면 상대를 빠르게 분석해 손해를 입거나 상처를 입을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방어 수단이든, 그것도 아니라면 별다른 의도가 없이 상대방에 대한 단순한 정보값을 입력하기 위함이든 판단이라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완전히 억제하기는 힘든 행위이다. 그리고 판단을 하는 데 있어서 상대방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판단에 활용되는 조건은 다양하다. 나이, 외모, 성별, 국적, 인종, 학벌, 직업, 종교 등 그 값이 딱 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고, 가치관, 취미, 노래나 음악 취향 등 사람마다 기준이 천차만별인 요소들도 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후자에 비해 전자로서 상대방을 판단하는 일은 권장되지 않는다. 우선 전자의 기준들 중 많은 부분이 운으로서 타고나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나이나 기분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더구나 이러한 생득 조건들의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우열을 가리는 선들이 존재하며, 이 선은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가부장제가 존재하기에 남성보단 여성들이, 인종차별이 남아 있기에 백인보단 유색인종이 불리하다. 외모지상주의로 인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미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은 은근하거나 직접적인 조롱에 시달린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조건들로 인해 내려진 판단은 웬만해선 뒤집기 어렵다는 점이다.



• 초록 피부의 엘파바, 위대한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다


인간과 말하는 동물들이 행복하게 어울려 지내는 오즈. 그 평화로운 마을에서 초록색 피부를 갖고 태어난 엘파바는 어렸을 적부터 이로 인한 조롱과 괴롭힘에 시달리며 자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엘파바의 동생 네사가 쉬즈 대학교에 입학하는 날이 다가오고, 입학식 당일 생긴 해프닝으로 인해 엘파바는 마법 교수인 마담 모리블의 눈에 들어 동생과 함께 학교에 입학하는 하는 한편, 자신과는 완벽하게 상극인 글린다와 룸메이트가 된다. 달라도 너무 다른 엘파바와 글린다. 덕분에 첫날부터 사사건건 부딪히는 둘이지만 마침내 서로가 서로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추어둔 외로움과 열망을 알아 봐 주면서 급속도록 가까워진다.


엘파바와 글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엘파바의 마법의 힘이 강해지고, 이를 지켜보던 마담 모리블은 오즈의 마법사에게 그런 엘파바에 대해 알리는 편지를 쓴다. 그러던 어느 날 동물들의 강의가 금지되자 엘파바는 이를 마법사에게 알려 도움을 받고자 결심한다. 그리고 마침내 엘파바에게 마법사의 초대장이 도착하고, 그는 부푼 마음으로 글린다와 함께 마법사의 성으로 찾아간다. 이제 마법사가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건만. 기대와 달리 엘파바는 그곳에서 그동안 감추어졌던 거대한 음모와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마법사를 만나러 간 엘파바와 글린다



• 언젠가는 우리의 현실 역시도 영화와 닮아 가기를


언젠가 ‘위키드’의 내한 뮤지컬을 봤었다. 때문에 영화 버전 ‘위키드’를 보기 전부터 이 이야기가 그 유명한 ‘오즈의 마법사’에서 출발했으며, 해당 세계관에선 사악한 서쪽 마녀가 실은 나쁜 악당이 아닌 복잡한 사연을 지닌 인물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만 뮤지컬을 너무 오래전에 봤던 터라 그 외의 기억은 모두 휘발된 상태였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위키드’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선과 악의 정의나 경계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 그리고 엘페바와 글린다 사이의 복잡한 감정선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선함과 악함에 대한 고민들과 두 주인공의 관계성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다수에 속하지 못한 소수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다. 엘파바는 타고난 초록색 피부색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놀림을 당했다. 어른이 된 이후에도 주변 사람들은 대놓고 말만 안 했다 뿐이지 그에게 은근한 경멸과 불편을 드러낸다. 한편 쉬즈 대학교의 딜라몬드 교수는 학교에 남은 유일한 동물 교수로, 이후 동물의 강의가 금지되면서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 외 다른 동물들은 딜라몬드 교수 이전에 이미 직업은 물론, 말할 수 있는 능력마저 잃었다. 다수에 속한 덕에 안온한 삶을 보장받은 대부분의 오즈 사람들과 달리 외모로 인해 소수자에 속해 있는 엘파바만이 다수의 인간에 밀려 핍박받는 동물들을 이해하고 돕는다.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


일정 이상의 공감능력을 지닌 것이 아니라면 내게 없는 소수자의 조건과 그로 인해 겪게 되는 편견과 차별을 충분히 이해하기 힘들다. 애초에 안전한 울타리 안에 속한 다수가 굳이 자신의 감정을 소모해 가며 소수를 이해하고 싶지 않을 확률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목소리가 커지거나, 그들의 영역을 넓히고자 할 때마다 다수의 반발에 부딪힌다. 그래 봤자 오랜 시간 단단한 성벽으로 보호받던 다수의 것들에 흠조차 가지 않음에도 말이다. 특권을 당연히 누리다 보면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만 바로잡으려는 시도마저 역차별로 느껴지는 법이니까. 오랜 시간 이런 식으로 유지되어 온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과연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인식이 어느 날 갑자기 이상적으로 바뀌거나, 근시일 내에 차별을 금지할 법과 제도가 마련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당장의 현실은 암담하지만 적어도 ‘위키드’라는 영화를 구성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세계관만은 아름답다. 감독인 존 추와 마담 모리블 역의 배우 양자경은 동양인이고, 엘파바 역의 신시아 에리보는 흑인이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대형 상업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주요 등장인물들부터 단역들까지 유색 인종의 비율이 꽤 높다. 더구나 장애가 있는 배우가 본인의 모습 그대로 출연하고, 성소수자인 배우들도 많이 등장한다. 두 여성 배우가 이끄는 이야기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엘파바가 거스르고자 한 중력은, 곧 우리가 마주하는 차별과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위키드’가 담고 있는 가치를 닮게 되기를 바라본다.






사진 출처 : IMDB

https://www.imdb.com/title/tt126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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