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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Mar 08. 2024

[배드 지니어스] 돈으로 어디까지 살 수 있나

무엇까지 팔 수 있나






돈, 나로서로는 애증의 이름이다. 까놓고 얘기하면 돈, 정말 좋아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돈과 관련한 문제점을 이야기해 보자면, 나 홀로 짝사랑을 하고 있다는 점 정도다. 가슴에 손을 얹고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상투적인 말로 돈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중요한 것은 맞다. 땡볕 아래 있다가, 얼죽아의 경우 휘날리는 눈발을 견디다가도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소중한 사람의 생일이 다가와 선물을 사살래도 돈을 내야 하고, 아까워 죽겠지만 월세와 관리비를 지불하자면 역시나 돈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한 주가 시작되면 무거운 몸뚱이를 이끌고 노동을 하러 가는 것이다.


그럼 돈이 있기만 하면 땡일까? 이왕이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목이 잔뜩 타는 상황에서 이왕이면 스몰 사이즈 대신 톨 사이즈 음료를 마시면 더 만족스럽고, 치킨을 먹을 때도 뼈 있는 것보단 몇 천 원 더 주고 순살로 편하게 먹고 싶으니 말이다. 조금 더 큰 스케일로 나가 보자면 금전적 여유가 받쳐줄 경우 기차 여행 대신 비행기 여행이 가능해지고, 대학교에 만족할 걸 유학까지 노려 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쯤 돈을 향한 나의 간절한 짝사랑이 마침내 쌍방향의 감정으로 발전할지 간절히 알고 싶다.


그렇다고 돈이 곧 선이요, 답이라는 말은 아니다. 분명 돈으로부터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이 존재한다. 설명을 이어가기에 앞서 덧붙이자면 돈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돈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며, 편리한 물물교환을 위한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하나의 수단으로써 개발된 돈을 향한 우리들의 차고 넘치는 욕망 때문일까. 돈은 그저 태생대로 여기서 저기로 흐르고 또 흐를 뿐이건만, 돈 앞에 선 우리가 도덕성과 윤리 의식을 잃어 왔다. 오직 돈을 위해서 무엇이든 하거나, 권력을 휘두르듯 돈으로 무엇이든 사기 시작한 것이다.



나쁜 재, 거래임하


천재 소녀 린은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음에도 훌륭한 성적 덕에 장학금을 받으면서 명문 사립고를 다니게 된다. 그렇게 학교 생활을 시작한 린은 공부는 못해도 구김살 없이 활발한 그레이스와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연기자가 꿈인 그레이스는 린에게 교내 연극부에 들고 싶지만 연극부에서 요구하는 성적에 미치지 못해 가입할 수 없는 사정을 털어놓는다. 친구의 사정이 안타까웠던 린은 결국 시험 때 그레이스가 자신의 답안을 커닝하도록 돕는다. 덕분에 충분한 성적을 받아 연극부에 합류한 그레이스는 이 사실을 남자 친구 팻에게 얘기하고, 마찬가지로 성적이 나빴던 팻은 린에게 엄청난 액수를 제시하며 시험 때마다 커닝을 도와줄 것을 제안한다. 이내 부유하지만 성적이 별로인 다른 학생들까지 몰려들면서  커닝 사업은 점점 더 판이 커진다. 처음에는 껄끄러워했던 린은 쉽게 큰돈을 벌게 되자 좀 더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그동안 엄두도 못 냈던 유학까지 꿈꾸게 된다.


그레이스(왼쪽)의 커닝을 돕는 린(오른쪽)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언제나처럼 돈은 많지만 머리가 나쁜 친구들의 커닝을 돕던 린은 자신만큼 똑똑하지만 가난한 뱅크에게 이를 들키고 만다. 결국 뱅크의 신고로 린은 장학금을 놓치게 되고, 린은 이 일을 계기로 커닝을 그만두기로 결정한다. 한편 팻의 성적이 오르자 그의 부모님은 아들은 물론 그가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도록 도왔을 것이라 생각되는 여자친구 그레이스까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려 한다. 이에 마음이 급해진 팻과 그레이스는 린에게 차마 거부하기 힘든 큰 금액을 약속하며 STIC(극 중 가상의 시험)를 통과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기준이 엄격한 국제 시험인 만큼 린은 이 제안을 거절한다. 그러던 차에 린은 각 국가에서 시험이 진행되는 시각의 시차를 이용할 수 있음을 깨달아 결국 계획에 착수한다. 그러다 그레이스나 팻과 사정이 비슷한 다른 부유층 자녀들이 더 몰려들면서 규모가 커지자 린은 또 다른 천재 뱅크를 판에 끌어들인다.


린과 뱅크



• 돈은 죄가 없다


영화 ‘배드 지니어스’의 가장 큰 매력을 꼽자면, 정말 최소한의 감정만을 내비치면서 철저하게 지능과 판단능력만으로 움직이는 천재 주인공 린이랄 수 있다. 마치 눈앞에 쫙 펼친 본인의 손금을 읽듯 모든 상황을 세심하게 계산해서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TMI이긴 하지만 이러한 린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캐릭터 상위 5명 안에 든다. 그러나 이 영화가 실화를 보티프로 한 이야기인 만큼, 린이라는 캐릭터를 한 사람으로서 바라보자면 마냥 긍정적으로만 얘기할 수 없다. 의심의 여지없이 커닝은 나쁘고, 심지어 그의 동기가 돈이라는 점에서 더욱 좋게 봐주기 힘들다. 하지만 인간적인 시각으로 본 김에 좀 더 깊이 들어가자면 일면 안타깝기도 하다. 그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집안 사정이 여유롭지 못해 그만큼 절박함도 더 컸을 테니까.


피아노로 커닝 방법을 개발 중인 린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점이 한 가지 있다. 내가 만약 그들 중 하나였다면 과연 양심과 소신을 지킬 수 있었을까? 이러한 가정 속에서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학생일 필요는 없다. 누군가 다가와서 얼마가 됐든 구미가 당기고도 남는 금액을 제시하면서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요구한다고 생각해 보자. 대뜸 경찰서에 들어가 춤을 추고 튀라거나, 공공 도서관에서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한 소절만 부르라거나, 스포츠 경기장에 가서 자신의 주변의 관중들이 응원하는 상대 팀을 응원하는 것 등. 겁쟁이인 나의 경우 얼마를 받으면 티익스프레스를 탈 수 있을지 상상해 봤다. 고민 끝에 30만 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예시들은 그래도 우스꽝스러운 축에 속한다. 하지만 누군가 눈 돌아가는 금액을 제시하며 거래를 제안할 땐, 보통 재밌다기보단 옳지 못한 일들을 요구한다.


그레이스와 팻에게 커닝 계획을 설명 중인 린


앞서 언급한 것을 반복하자면 나는 돈을 좋아한다. 그것도 상당히. 그리고 돈 자체는 죄가 없다. 돈은 그저 흐를 뿐이다. 하지만 이를 추구하고 사용하는 우리로 인해 각종 문제들이 발생한다. 덕분에 자연스러워야 할 돈의 흐름은 인위적으로 특정 방향만을 향하게 되었고, 그 분배는 불공정해졌다. 그저 돈이라는 이유 하나로 남을 속이고 절망에 빠뜨리는 이들은 기사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런 사건들을 보며 내가 피해 당사자가 아님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이외에도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과연 부당하게 번 돈으로, 혹은 돈으로 취한 부당한 이득으로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이미 돈 앞에 양심을 팔아버린 이들에게는 쇠 귀에 경 읽기처럼 들리겠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돈을 사랑함과 동시에 겁쟁이라는 사실이 차라리 다행스럽다. 그렇다고 돈에 대한 짝사랑을 그만둘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사진 출처 : IMDB

https://m.imdb.com/title/tt6788942/mediaindex/?ref_=tt_mv_cl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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