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안 해 본 이가 없을 것이다. 왜 사는가. 나로서는 이 질문을 한 번만 했으면 다행인 수준이다. 중학생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 한참이 지나서까지 이 물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이와 같은 질문처럼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왜 살긴 왜 살겠는가. 태어났으니 일단 살아보는 것 아니겠는가. 삶에서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왠지 모르게 비상하고 특별한 무언가를 떠올려야 할 것만 같고, 그러다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한 사람으로서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할지 모른다. 그러니 인생에 꼭 별다른 의미가 있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해 애쓰는 건 전혀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니체나 헤로도토스 같은 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좋다고 하는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무리 무난한 인생일지라도 인생이라는 것 자체는 크고 작은 장애물로 가득하며 원하든 원치 않든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내 생각이 여기서 그쳤다면 정말 불행했겠지만 다행히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렇게 견디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인생,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나 스스로를 행복하게 해 주자고 말이다. 그리고 이 행복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스스로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무언가라고도 할 수 있다.
• 회복을 위한 또 한 번의 도전
절친인 헌터와 남편인 댄과 함께 익스트림 스포츠로서 암벽 등반을 즐기는 베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댄이 추락해 사망하고, 그 이후 베키는 한동안 아빠의 관심과 걱정도 매몰차게 쳐내며 폐인처럼 고립되어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헌터가 베키를 찾아오고, 다시 예전의 베키로 돌아오라며 함께 철거 예정인 600 미터의 송신탑에 오르자고 제안한다. 아직 남편을 잃은 슬픔과 추락 사고에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베키는 이를 거절하지만, 헌터가 타워의 꼭대기에 올라가 아직도 보관하고 있던 댄의 유골을 뿌려주자고 제안하자 결국 마음이 흔들린다.
아찔하기만 한 탑의 높이
그렇게 두 친구는 여행길에 나서고,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던 베키는 타워를 점점 더 올라감에 따라 한때 즐겼던 스릴을 다시 만끽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정상에 올라 인증 사진도 찍고, 댄의 유골까지 뿌려준 베키와 헌터. 이제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일만 남은 줄 알았건만. 탑이 너무나 낙후되어 있던 탓에 정상과 중간 지점을 연결해 주는 사다리가 분리되어 떨어지고 만다. 결국 600미터 상공에서 내려갈 방법이라곤 없이 완전히 고립된 베키와 헌터. 두 친구는 구조 요청 포스팅을 하기 위해 완충 처리한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조명탄을 쏴 보고, 심지어는 드론도 동원하는 등 탈출을 위한 갖은 방법을 시도하고, 심지어는 이를 위해 목숨까지 걸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심지어는 그들을 더한 극한으로 몰고 가는 위기 상황만 계속해서 닥쳐올 뿐이다.
구조 요청을 하는 베키와 헌터
•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영화 ‘폴: 600미터’에서 주인공 베키의 친구 헌터는 얘기한다. 인생은 순간이고 너무 짧기 때문에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걸 하면서 살라고 말이다. 아마 이와 같은 이유로 헌터는 그렇게까지 극적인 활동들을 즐기고 마침내는 절친 베키까지 600미터의 송신탑에 데리고 갔을 것이다. 그래서 그 위험천만한 곳에 간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고 싶은 것과 별개로 헌터의 말에는 얼마간 일리가 있다. 어떤 삶이든 그 자체로는 힘들 수밖에 없고, 어쩌면 더 최악이게도 지루할지 모른다. 흔히 말하는 쳇바퀴 같은 삶, 그런 것 말이다. 아무리 남들 보기에 화려한 인생을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이들일지라도 어느 정도의 반복은 필연적이다. 김연아나 손흥민처럼 대단한 사람들도 매일 같은 연습과 훈련은 필수였을 것이다.
구조를 기다리는 베키와 헌터
물론 인생이란 매일매일이 다르고 새로울 수는 없는 법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 전제부터 거부한다면 왜 살지, 같은 질문에 집착하는 것 못지않게 우울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일들을 찾아야 하는 것이리라. 개인적으로는 소확행으로만 만족하지 못하는 대확행 파이다. 그렇다 보니 일정 시간 생산적인 무언가에 시간을 썼을 때 만족감을 느낀다. 예를 들어 출퇴근 버스에서 채 읽기, 평일 퇴근 후 헬스 한 시간, 주 2회 화상 영어 수업 듣기, 그리고 주말에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식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내 모습이 갓생처럼 보일 수도 강박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확실한 건 이렇게 하고 나면 기분은 좋다. 조금씩 내가 그리는 미래에 가까워지는 기분이고, 나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잘 활용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점점 지쳐가는 베키
그렇다고 내가 소확행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얼마 전엔 ‘피라미드 게임’이라는 드라마에 빠져 금요일 밤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새벽 2시가 다 되어 잠들었고, 틈만 나면 영화 어플에서 상영 예정 영화를, 넷플릭스 앱에서 공개 예정작들을 확인하기도 한다. 유튜브에서 귀여운 동물들을 보며 바보 같은 미소를 짓고, 잔고 걱정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귀여운 무언가를 수집하고 싶어 진다. 나와 달리 누군가는 맛집 탐방을 통해 만족을 느끼고, 또 누군가는 반려동물과의 시간을 통해 활력을 얻을 것이다. 아니면 업무 내내 시달리다 침대와 한 몸이 되는 순간에야 비로소 이게 사람 사는 거구나 생각하는 이도 있을 거고. 뭐가 됐든 베키와 헌터처럼 목숨 걸고 600 미터 높이의 송신탑에 올라가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