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막힐 때가 있다. 썼다 지웠다 반복하며 더 이상 한 줄도 쓰지 못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머리를 쥐어짜 쓴 글은 맥락을 알 수 없는 아무말대잔치가 되어갈 뿐이다.
참담한 심정으로 조용히 백스페이스를 눌러 달려온 흔적을 지워버린다.
다시 또 제자리. 골똘히 한글 문서 창을 노려보며 머리를 굴린다.
무엇이 문제인가. 왜 글이 안 써지는가.
글치 작가는 고뇌에 빠진다.
속이 꽉 막혀 얹힌 느낌.
한 방에 내려가게 누가 좀 세게 등을 두들겨주면 좋겠다.
글이 안 써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쓰고자 하는 글의 방향을 잡지 못해서.
아이디어를 구현할 표현력이 떨어져서.
다시 말해 필력과 내공은 부족한데 잘 쓰고 싶은 욕망이 너무 크면 글이 막히곤 한다.
나의 한계를 부정하고 능력치 그 이상의 글을 쓰려고 하는 순간 귀신 같이 벽에 부딪힌다.
글에 값을 매길 수 있다면, 백 원짜리 작가인 내가 백십 원짜리 글을 쓰려고 할 때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 십 원의 간극은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크다.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그럴 때는 타협이 필요하다. 이건 비겁한 게 아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다시 출발선 위에 서는 일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절대 다시 달릴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건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작가가 되면 다를 거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글이 막힌다. 그것도 아주 자주.
내가 쓴 형편없는 글이 나를 번번이 자괴감에 빠뜨리고, 하얗게 비치는 한글 창을 보는 게 고통스럽다.
고통이 계속되면 공포가 된다.
하지만 나는 스펙을 가지고 있다.
그 ‘공포’를 겪어낸 ‘경험’.
그 경험은 차곡차곡 쌓여 글쓰기의 근육을 만든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글쓰기는 일종의 길찾기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이 없다. 누군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스스로 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는 방법도 모두 다 제각각이다.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얻게 되는 풍경 역시 다 다르다. 익숙한 길만 고집해선 재미없고 뻔한 풍경만 기다릴 뿐이다. 지름길을 찾는 게 아니니까. 길이 없는 곳에 나만의 길을 만드는 것, 그것이 글쓰기다.
글이 막힐 때 잠시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나를 돌아본다.
작가로서의 내 값이 얼마인지, 냉정하게 헤아려본다.
그건 곧 주제 파악이다.
그 뼈아픈 자각으로부터 막힌 글쓰기가 다시 시작된다. 나만의 보폭으로 낯선 길을 걷는다. 그리고 알게 된다.
글 한 줄 못쓰고 끙끙대다 글치임을 고백하며 써 내려간 지금의 이 글처럼,
때로는 의외로 쉽게 써지기도 하는 게 글쓰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