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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수 Feb 06. 2020

후회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은 참 좁다. 방송가 바닥은 더욱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서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본 역시 그렇다. 그 인연은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돌고 돌며 자기 임자를 잘도 찾아간다.


나의 단막극 당선작은 단막극 폐지로 인해 그해 방송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대본을 좋게 보신 한 제작사 대표님이 계셨다.

당시 나는 방송 중인 연속극 대본 작업에 정신이 없었고 대표님은 작업실 근처까지 찾아오셔서 그 단막극의 판권을 사겠다고 했다. 사람마다 꽂히는 작품이 따로 있는데 그 작품이 그분에게는 그랬나 보다.

그리고 한참 후 그분의 연락이 와서 만났다. 그 작품 개발에 대한 의논을 위한 자리였다.

당시 나는 다른 미니시리즈 작품을 준비 중이었고, 그 작품을 개발할 여력이 없었다.

자연스레 내가 준비 중인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고, 대표님은 이번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작품을 보자마자 함께 디벨롭하고 싶다고 했고, 곧바로 그 제작사와 미니시리즈 계약을 하게 됐다. 생각지도 않게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면서 나는 또 바빠졌다. 다시 한번 힘을 내어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늘 가보지 않은 길은 설렘과 희망이라는 꽃길로 곱게 포장되어있는 법.

제작사 대표님의 확신에 찬 말을 굳게 믿었다. (물론 그분도 나의 글을 굳게 믿으셨을 테고)

이번에는 뭔가 정말 잘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미련할 정도로 열심히 글을 썼다.

단 한 번도 마감 시간을 늦어본 적이 없다.

수정을 대체 몇 번을 했는지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작업실에 박혀 2년여 동안 글만 썼다.

감독도 붙고 배우 미팅도 하고, 이제 곧 편성이라는 빛이 보일 거라는 확신으로 대본과 계속 씨름했다.

더 이상 수정할 게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성은 되지 않았다.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제작사의 수정 요구는 계속되었다.

편성이 안 된 걸 모두 다 나의 대본 탓으로 돌렸고,  한 팀이라고 여겼던 회사가 어느 순간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방어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견디고 버티며 그저 또 하나 배웠을 뿐이다.

모든 힘과 권력은 파괴적이라는 것을.

상처가 모여 분노가 되고 그것은 어느 순간 화살이 되어 나를 공격하며 자존감마저 갉아먹었다.

결국 드라마 편성은 되지 않았고 그대로 계약기간이 만료되었다.


계약 기간 동안 여러 기회들을 놓쳐야 했다. 답답했지만 계약을 한 이상,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제작사의 입장은 또 달랐다.

그동안 출혈이 컸다며 내가 쓴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포기하라고 했고,

말로만 듣던 제작사의 계약 횡포가 이런 것이구나, 몸소 느껴야 했다.

어느 쪽 출혈이 더 컸는지 서로 경쟁이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납득할 수 없었다. 엄연히 계약서가 있는데 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일까?

내 생각은 그렇다. 편성이 되고 방송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고 일이 틀어졌을 때, 그 때를 위해 만드는 것이 계약서라고.

작가는 시간을 넘어 세월을, 그리고 자신의 글을 담보하여 투자하는 것이고,

회사는 이익창출을 기대하며 자금을 투자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사가 투자한 자금을 작가에게서 되돌려 받겠다는 건 아무리 봐도 어불성설 아닌가?

그렇다면 작가가 투자한 그 시간과 세월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으로 보상받는단 말인가?

 

당장이라도 만나 담판을 지을 것 같던 제작사에서는 한동안 연락이 없었고,

얼마 뒤 나는 방송작가 협회의 도움을 받아 난생처음 내용증명이란 걸 써서 제작사에 보냈다.

살다 보니 내가 이런 걸 다 쓰게 되는구나,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어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 왜 계약을 했을까? 그 계약만 안 했어도 지금 나의 모습은 달라졌을 수 있는데..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거라고.. 신중하지 못한 나를 탓하라고.. 자업자득이라고 스스로를 한심해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시작이 좋으니 분명 끝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중하지 못했던 게 아니라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물론 후회가 소용없는 짓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소용 있는 짓만 하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근데 세상엔 온통 후회하지 말라는 말들로 넘쳐난다.

후회하면 엄청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지난 일을 미화시키고 두둔하기 바쁘다.

몰래 숨어서 후회해야 하는 걸까? 그것도 너무 심하면 강박으로 보인다.


후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심리현상이다. 후회하는 나를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게 더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다.

그리고 모든 건 후회로부터 시작된다.

최선을 다해 후회해야 비로소 마음이 개운해지고, 그래야 다시 심기일전 전화위복의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


어쩌면 산다는 건 후회를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돌무덤과 같은 것이 아닐까?

후회가 모여 삶을 이루고 그로 인해 새로운 소망이 거듭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더 이상 후회를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최선을 다해 후회하고.. 최선을 다해 다시 일어서자고.


이제 나는 내가 건너온 시간들을 좀 더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시간들은 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할 수 없다. 이렇게 글이 되어 추억의 책장 속에 또박또박 기록되어졌으니까.

흉터라는 건 고통을 이겨냈는지에 대한 기록이고  내몸에 남겨진 기억일 뿐이다.  

세상에는 원치 않아도 절로 배워지는 것이 있다.

경험한 만큼 세상이 보인다. 딱 그만큼, 나는 더 단단해졌다.

지독한 계절을 온몸으로 부딪쳐 겪어낸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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