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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수 Jan 16. 2020

갈등 앞에서 갈등하지 말자

1년 가까이 준비한 연속극 방송의 기회는 물 건너갔지만, 폐지되었던 단막극이 한시적으로나마 편성되면서 운 좋게 좋은 감독님과 만나 작품 하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보다 더 나의 글을 깊이 있게 해석하고 애정 하는 감독님이었다. 그런 연출을 만난다는 건 작가에게 있어 최고의 행운이며 영광이다.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작업이었다.

그러나 딱 한 번 의견 차이가 있었다.


다른 작가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글을 쓸 때 뭔가 하나에 집착한다.

꽂힌다고 해야 할까? 그래야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것이 제목이 될 때도 있고 대사 하나가 될 때도 있고 장면 하나가 될 때도 있다.

무엇이 됐건 하나의 대본이 시작될 때 주춧돌이 되는 그 무언가 꼭 필요하다.

그 대본은 그게 제목이었다.

제목과 함께 전체 스토리가 스며들듯 나에게 한꺼번에 찾아온 경우였다.

근데 최종 대본까지 나온 상황에서 감독님이 제목을 바꾸자고 하셨다.

물론 나는 강하게 반대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제목만큼은 절대 건들고 싶지 않았다.

어떤 제목을 가져다 붙여도 내가 생각한 그 작품이 아니었다.

그런 느낌이 강하게 왔고, 어떻게든 그걸 어필하고 설득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사실 제목 하나 바꾼다고 해서 대세에 크게 지장은 없다.

정말 작가 당사자가 아니라면 크게 느낄 수 없는 미세한 부분이다.

나도 내 일이 아니라면 정말 고집불통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최종 결정은 작가가 아닌 감독의 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방송 대본은 이미 작가만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비겁해지기 싫었다.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직도 그럴 만한 깜냥이 되지 못했다.


결국 드라마는 다른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어쩔 수 없이 낯설고 아쉬웠다.

근데 누가 맞고 누가 틀린 건 없다.

애초에 답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도 나처럼 본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갈등을 선택한 것뿐이라고.

누가 이기고 지고의 싸움이 아니기에

어떻게든 최선의 최선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을 뿐이라고.


물론 갈등이 깊어지면 그 과정에서 작가와 연출의 관계는 크게 틀어질 수 있다. 그건 각오해야 한다.

다행히 당시 나와 함께했던 감독님은 너른 그릇을 가지신 분이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속이 좁은 인간인지 깨닫게 해 준 분이었고.


하나의 작품이 방송되기까지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쓴 대본은 수도 없이 부딪히고 깨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모양이 수시로 달라진다고 해도 달은 달인 것처럼.

녹차와 홍차, 우롱차로 각기 다르게 부르지만 셋다 동일한 찻잎인 것처럼 본질은 그대로다.

그러니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원칙은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되, 두려워서 변화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 경계에 서있고 그로 인해 우리는 수없이 갈등하는지 모른다.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지만, 갈등은 변화의 계기가 되고 갈등으로 인해 우리는 조금씩 성장한다. 갈등은 일종의 성장통인 셈이다.


흔히 드라마는 갈등의 예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갈등을 그리기 위해 드라마를 쓰는 건 아니다.

수없이 갈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인간의 진심을 담고 싶은 것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갈등하면서.. 인간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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