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공모 당선이 곧 방송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이미 경험을 통해 그걸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이번만큼은 훈풍의 기운이 느껴졌다. 지난번 드라마로 생긴 오점을 씻고 더 나은 커리어를 만들 전화위복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편성을 목표로 담당부장님의 피드백을 받으며 당선된 작품의 기획안과 대본을 거의 새로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결과는 이번 역시 다르지 않았다. 1년 동안 나는 열심히 글을 썼지만, 1년 동안 주변의 상황들도 열심히 달라졌다. 나에게 유리하게 달라졌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온 우주가 도와야 가능한 것이 방송이라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서글펐다. 외면당한 나의 노력과 시간들이, 나의 대본이 세상에 소음조차 되지 못한 채 다시 감옥행을 탔다는 그 사실이 화가 났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냐고,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거냐고, 신이 있다면 따져 묻고 싶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당시에는 잘 깨닫지 못했다.
당선이 되고 방송이 될 때마다, 나는 행복했다. 그러나 그 행복을 당연시 여겼다. 그만큼 노력했으니까, 딱 그만큼의 보상을 받은 거라고 생각했다. 왜 나에게 이런 행복을 주시었냐고, 내가 무엇을 얼마나 잘했기에 이런 행복을 받은 거냐고 그때는 신에게 되묻지 않았다. 만족이라는 걸 몰랐고 언제나 더 큰 행복을 탐하느라 분주했다. 감사한 일은 너무 쉽게 까먹은 반면 억울하고 분한 일은 두고두고 곱씹으며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다.
행과 불행은 번갈아 찾아왔지만 불행만 크게 받아들인 결과 나의 삶은 불행했다. 늘 되는 일이 없다고 끊임없이 불평했고 심지어 세상을 원망했다.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고, 그 간절함이 나의 무기였으며 그것마저 없었다면 지금껏 버텨내는 것조차 힘들었을 거라고 항변해보지만, 어찌 됐든 부족한 실력으로 욕심만 앞세운 참혹한 결과일 뿐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간절함은 아무런 죄가 없었고 그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문제는 지나치게 서둘러 이루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비롯된 욕심과 집착과 질투와 미움 등과 같은 것들이 스스로를 갉아먹고 삶을 아프게 만들었다.
티끌만 한 노력으로 태산을 바라는 것, 그건 간절함이 아니다. 티끌을 모아서라도 언젠간 반드시 태산을 만들어내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간절함이다. 간절하다는 미명 하에 앞뒤 분간 못하고 질주하는 건 단돈 오백 원으로 일확천금을 바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뒤늦게 나를 돌아보고 질문을 던져보았다.
너는 진정 간절했던 거니? 혹시 도박을 했던 건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