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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수 Dec 31. 2019

고마운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세요

조용한 카페에 와서 앉아있다. 텀블러에 받아온 따뜻하고 고소한 라떼를 마시면서.

습관처럼 인터넷 서점을 잠시 기웃거리고,

멍한 눈을 들어 잠시 사람들 얼굴을 흘깃거리고, 생각에 잠긴 채 뭔가를 끄적거리다가 이내 다시 멍해지는 나의 감각이 느껴진다.


다른 날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오늘.

이래 봬도 2019년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2020년의 시작.

의미가 남다른 오늘과 내일.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무엇도 하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기분은 몹시 초조하고 뿌연 먼지처럼 지저분하다. 깨끗하고 정갈하게 뽀득뽀득 닦아내고 싶다. 조금은 명료해진 기분을 건져 올릴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행복감마저 보태진다면 금상첨화.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우울증을 앓는 내담자에게 그간 고마움을 전하지 못한 사람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그에게 편지를 쓰고 찾아가 읽어 주도록 권했다. 내담자와 상대 모두 전보다 행복감이 높아졌다.


정말 그럴까?

가장 최근의 고마운 마음이 떠올랐다.

밑져야 본전이다. 어디 한번 써보도록 한다.


나의 부족한 글을 늘 애정 어린 눈으로 읽어봐 주시고 물심양면 성원을 보내주시는 감독님, 고마워요. 내가 역시 보는 눈이 있었다고 생각하실 날이 분명히 올 거예요. 더욱 열심히, 글을 잘 쓰도록 할게요.

몇 안 되는 나의 지기들아, 고마워. 늘 징징대며 투덜대는 속 좁은 나를 너른 마음으로 안아주고 다독여주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 너희들과 늘 함께 나란히 걸을게. 외롭지 않도록.

돌도 채 안된 나의 예쁜 조카야, 고마워. 넌 정말 아름다워. 존재 자체가 기쁨이고 선물이야. 지금처럼 늘 건강하게 자라렴. 너에게 예쁜 이모가 되고 싶어. 사랑해.   

우리 가족들, 늘 나에게 신경 써줘 고마워. 나도 늘 신경 쓰고 있어. 살아보니 서로에게 늘 신경 쓰라고 있는 게 가족이더라.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보아요.


고맙다는 마음은 평소 잘 표현하기 어렵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부끄러워서.

그로 인해 우리가 평소 잘 인식하지 못하는 감정이 있다.

고마운 마음이 가져다주는 충만함.

혼자가 아니라는 이 근사한 기분, 이것이 혹시 행복감일까?

그래, 이것이 행복감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역시 마틴 셀리그만의 말이 맞는가봐.

어느 틈에 행복감이란 게 생겨버렸으니.

근데 어쩌면 이건 가짜약 효과일지 모른다. 플라시보 효과.


플라시보 효과 [ Placebo effect]
의사가 효과 없는 가짜 약 혹은 꾸며낸 치료법을 환자에게 제안했는데, 환자의 긍정적인 믿음으로 인해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 위약(僞藥) 효과, 가짜약 효과라고도 한다.


아무렴 어떤가, 우리는 가끔 누군가의 긍정어린 확고한 말 한마디가 듣고 싶다. 그 말을 진심으로 믿고 싶다. 한 알 한 알 영양제가 되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종종 믿음의 기적을 만들어 내고는 하니까. 혼자이고 싶지 않고 행복해지고 싶고 더불어 함께 잘 살고 싶은 게 우리의 바람이니까.


고마운 마음을 편지로 써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대를 찾아가 읽어주는 건 도저히 못하겠다. 정말 우울감이 궁극에 이른다면 그땐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아 참, 올 한 해, 불평불만 끊임없이 늘어놓았던 나에게 그러느라 고생했다고 격려의 편지를 써야겠다.

그리고 그건 나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리라.

올 한 해 수고했다고, 연초부터 액땜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고 글을 썼고, 골방에 나 자신을 외롭게 방치하지 않았음에 기특하다고, 앞으로 좀 더 후회 없이 사랑하고 아낌없이 행복하자고. 그리고.. 정말 고맙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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