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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수 Dec 28. 2019

두 번째 당선, 실패한 사람에게도 문은 또 나타났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 사실은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 더욱 성실해졌다. 그래야 역전의 기회가 생기는 거니까. 

내게 맡겨진 첫 장편드라마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도중하차라는 고배를 마셨지만, 곧바로 다시 심기일전했다. 구겨진 마음을 반듯하게 펴서 다리고 전보다 더 열심히 글을 썼다.


얼마 되지 않아 크고 작은 기회들이 찾아왔다. 

드라마 제작사와 연결이 되어 계약서가 오고 갔고, 다시금 페달을 힘껏 밟을 차례였다.


그런데 난데없는 돌부리가 나타났다. 지난 드라마 일이 내 뒤를 꼬리처럼 따라다녔고, 나는 발끈했다. 

건들지 말아야 했던 나의 스위치가 눌려버린 탓이다.


계약 일을 모두 없던 일로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보이지 않는 내상은 쉽게 아물지 않는 법. 머릿속이 다시 뒤죽박죽 구겨졌다.

내 글이 폄하되고 심지어 매도당한 느낌.

아물지 않은 지난 상처들이 다시 나를 괴롭혔다.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악착같이 독해지려 했던 내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런데 조금 뒤에 나는 깨달았다. 그렇게 해야만 보호되는 상태라면, 악착같이 독해져야 하는 상태라면, 그건 뭔가 단단히 잘못된 거라는 걸.


괜찮은 줄 알았지만, 나는 아직 괜찮지 않았다. 

왜 그냥 쿨하게 웃어넘기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뾰족하게 날을 세웠을까?


답은 내 안에 있었다. 여전히 미움과 분노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상처가 되어서.


머릿속에 새겨 죽는 날까지 가져갈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떨쳐질 리 만무했다. 

잊으려 하면 더 기억나고, 기억하려 하면 더 빨리 잊어지고, 그런 게 삶이다.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이라면 그저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상처가 사라질 때까지, 새살이 돋을 때까지, 순리에 맡기기로 했다.

어떤 상처도 시간을 이길 수 없으므로.




당시 난 거의 매일매일 잠결이었다.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글을 썼던 때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앙갚음이라도 하려는 듯 내 몸은 내리 잠만 자라고 했다. 자는 게 깨어있는 것보다 덜 괴로웠다. 차라리 악몽에 시달리더라도 꿈속이 더 나을 만큼 현실의 무기력은 무시무시한 공포였다.


그때, 전화가 왔다. 방송사 연속극 극본 공모 최종심 연락이었다.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하긴 했는데, 과연 될까 싶었고, 전처럼 조마조마한 마음조차 없이 잊고 있었는데, 막상 최종심에 들었다고 하니 다시금 심장이 쫄깃해졌다.


그리고 2~3주 뒤 당선 전화를 받았다. 근데 뭐라고 했는지, 도통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역시 잠결이었으니까. 당선됐다는 표현을 썼던가. 아닌가. 축하한다는 말은 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저작권 등에 대한 몇 가지 물음에 단답형의 대답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단막극 당선에 이어 연속극 당선.
최근 통화내역을 확인해본 뒤에야 비로소 꿈이 아닌 생시임을 깨닫고 안도했다. 물론 좋았다. 기뻤고 행복했다. 근데... 뭐랄까, 잠결처럼 멀게 느껴지는 그런 느낌. 딱히 좋은 그 감정이 피부로 와 닿지 않았다. 이 기분이 대체 뭘까?


이제 일희일비하지 않는 그 정도의 경지에 도달한 걸까? 드라마 작가로 산다는 건 흡사 도를 닦는 일과 다르지 않으니, 어쩌면 열반에 든 걸지도.. 근데 이 내리찍는 기분은 또 뭐란 말인가..


눈앞에 찬란하게 빛나는 좁은 문 하나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떤 세상이 나타날지 모를 때, 그래서 그 문을 열면 세상 진귀한 꽃과 새와 나비가 날아와 우아하게 나를 맞아줄 지상 낙원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환상에 젖었을 때, 그 문은 나에게 희망이고 설렘이고 궁극의 환희였다.


그러나 이미 난 알고 있었다. 그 문을 열면 또 다른 문이 첩첩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 문은 단지 시작일 뿐이고, 계속해서 열어야 할 문이 끝도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래서 그 문이라는 존재 자체가 나를 점점 더 지치게 할 거라는 것도. 나의 온몸의 세포들은 속속들이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당선 소식에도 물먹은 솜처럼 축 쳐졌으리라. 궁극의 무기력이라는 걸 깨달았다.


드라마 공모전에 당선된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정말 바닥까지 가서 이제는 끝이다, 포기다, 항복이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 때 당선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했다. 인생역전 드라마라고. 그런데 역전이라는 말은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니었다.

겪어보니 역전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전과 이후의 그림이 너무 똑같았다. 틀린 그림 찾기로 치자면 감히 최상급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바닥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 그 좁은 문을 향해 달려간다. 용감하다 못해 무모할 정도로, 상식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 아닌 도박을 한다. 바로 나처럼..


나는 이 길을 꼭 가야만 했다. 어리석고 미련해서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융통성이 없어서 오로지 이 길만 고집했다. 나 아직 살아있다고, 끝까지 살아남을 거라고, 끊임없이 자기 최면을 걸었다. 지치면 안 되니까, 실패하면 안 되니까, 그럼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지치면 안 되는 게 아니라 지쳐도 된다. 안 되면 누구나 지친다. 실패하면 안 되는 게 아니라 실패해도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살다 보면 그때그때 열어야 할 문이 나타난다. 두드려서 열리는 문이 있고 열쇠가 있어야 열리는 문도 있고 끝내 열릴 것 같지 않아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문도 나타난다. 그 문을 열고 또 열고, 지치면 지친 대로, 실패하면 실패한 대로, 우리는 매일 새로운 문 앞에 서있을 뿐이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자 저기 또 하나의 문이 보였다. 실패한 사람에게도 문은 또 나타났다. 나는 여전히 계속 나였고, 인생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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