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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수 Mar 03. 2020

스터디를 하지 않는 이유

요즘 온라인상에 스터디팀을 모집하는 글들이 자주 올라온다. 학생은 물론 주부나 직장인을 막론하고 각 분야마다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다.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응원하고 정보를 나누며 시너지를 얻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좌절과 무기력이 수시로 찾아오고 이럴 때 스터디는 도움이 된다. 같은 꿈을 가진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로와 힘이 되기 때문이다. 건전한 경쟁의식이 좋은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물론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크고 작은 갈등은 필연적인 것. 감수성이 예민한 작가들의 경우 감정 소모가 클 수밖에 없다. 공격적인 비난으로 고의적으로 남을 깎아내리려 하는 에너지 뱀파이어를 만나면 스터디를 아니한 만 못하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드라마 쓰기 스터디의 가장 큰 난제(?)는 아이템 노출이 아닌가 싶다. 스터디의 목적은 서로의 글을 오픈하고 여러 의견들을 수렴하여 수정 방안을 모색하는 것에 있고, 그렇다 보니 아이템 도용의 위험이 없을 수 없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저작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쉽지 않다. 분명 신뢰를 기반으로 한 교류지만 작고 사소한 틈 하나로 튼튼한 제방이 무너지기도 한다.


예전에 함께 드라마 공부를 하던 한 친구가 자신이 구상 중인 아이템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에게 의견을 물어왔다. 근데 들으면 들을수록 기시감이 느껴졌다. 전에 내가 그 친구에게 들려준 이야기와 흡사했기 때문이다. 순간 식은땀이 났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무래도 그 친구는 전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어물적 넘어가듯 상황을 모면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난 그 아이템을 고심 끝에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쓰다 만 한글파일과 함께.  


또 이런 경우도 있었다. 방송 중인 작가가 드라마 전개 상 가장 재미있는 방향을 놔두고 다른 걸 고민하는 걸 보고 그 이유를 물으니 스터디 때문이란다. 스터디 멤버 중 한 친구의 작품 속 전개와 비슷해진다고. 그들이 눈에 불을 켜고 확인할 것이고 만약 이야기를 그렇게 끌고 나간다면 아마 양심도 없는 대역죄인으로 찍히게 되는 상황으로 보였다. 나는 좀 의아했다. 왜냐하면 그건 이미 여타 드라마에서 보아왔던, 그래서 이제는 새로울 게 없어 보이는 아이디어였기 때문이다. 결국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갔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로선 참 곤란하고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친한 친구에게도 내 작품을 공개하지 않게 됐다. 그들의 작품 역시 되도록 보지 않으려 했다.

만약 내가 A라는 작품을 보았다고 치자. 피드백을 주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나중에 나의 머릿속에서 A라는 아이템이 떠오를 수도 있고 그 안의 에피소드 역시 떠오를 수 있지만, 그들의 작품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그걸 쓰는 데 있어 제약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작품을 보고 영향을 받은 거라고. 더 나아가 표절을 했다고. 훔쳐갔다고. 그런 소리를 듣지 않을 거라 장담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내 작품을 누군가에게 보여줬는데 그가 쓴 작품에 비슷한 설정이 나온다면? 나 역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한번 불붙은 의심은 끄기 어려운 법이다.

물론 매우 극단적인 예시이고 빈약한 논리적 비약일 수 있다. 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제로인 것도 아니다.

창작자라면 표절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저작권법이 모호하다 보니 어디까지가 표절이고 오마주이고 패러디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특히 더 조심하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표절 이야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한 친구가 있다. 그 아이는 공부도 잘했지만 글을 참 잘 썼다. 초등학생 답지 않은 성숙한 글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그 아이의 글을 하나 읽어주셨다. 그리고 순간 나는 멍해졌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 어리둥절했다. 한번 가슴에 깊이 와 닿은 글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 법이다.

방과 후 곧장 집으로 돌아온 나는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각종 어린이 글짓기 대회 수상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빠르게 책장을 넘기던 손이 이윽고 멈췄다. 나의 시선이 고정된 그곳에 또렷이 보였다. 그 아이가 감쪽같이 자기가 쓴 글로 둔갑시킨 그 글이. 차마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얼마 뒤 문제의 그 글은 학교에서 큰상을 받았고, 교실 뒤편 정중앙에 걸렸다.

어느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 아이가 누군가의 글을 가져다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베껴 썼다는 걸.

그때 나이 고작 열 살이었다. 표절이라는 단어조차 모를 때 나는 그렇게 표절을 바로 눈앞에서 목도했다. 그리고 나는 끝까지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너무 어마어마한 일이라서.. 그걸 말하면 그 아이가 어떻게 되기라도 할 것 같아서..  그럼 내가 그 아이보다 더 나쁜 아이가 되는 것 같아서.. 감히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그때 그 아이가 했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모두 다 내 글을 좋아하게 만들고 싶어.."

그 말이 왜 그렇게 나는 슬펐을까?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가 쓴 건 글이 아니다. 양심을 팔아버린 욕심이었을 뿐.

인간에게 인격이 있듯 글에도 격이 있다. 소신 있고 진실되게 글을 써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자신만의 견고한 자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갈고닦아야 하는 것이다.


그 날 이후 난 그 아이의 글이 전부 다 가짜처럼 느껴졌다. 질투가 날만큼 진짜 같았지만 진짜인 척한다고 해서 진짜가 될 수는 없다. 한 번 깨진 신뢰는 돌이킬 수 없었다.


그때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이제는 그 아이에게 해주고 싶다.

나는 너의 글을 좋아했지만 너를 더 좋아했다고. 네가 쓴 글이기 때문에 좋아했던 거라고..

문득 궁금하다.

그 아이는 과연 꿈을 이루었을까?


“You were born an original, don't die a copy.”

너는 오리지널로 태어났다. 짝퉁으로 죽지 마라.  

―  John M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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