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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원 Oct 31. 2023

관을 상대로 '등'쳐 먹기


요즘 들어 공공기관의 각종 행사를 지원하고 있다. 시민이 알아야 하는 행사는 키우고, 발전시켜 더 잘 홍보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때문에 행사의 중간 단계에 투입되어 필요한 부분은 키우고 필요없는 부분은 없애는 등 지원하고 있다. 


어떤 개장식을 준비할 때였다. 우리 기관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던 것이었는데, 드디어 개장식을 한다고 했다. 내가 투입되었다. 용역까지 맡겨 진행해오던 행사였다. 


첫 회의를 하는데, 용역사 대표도 함께 들어왔다. 늦게 들어오더니 다리 한쪽을 쫙 꼰다. 그리고 입을 굳게 다물고 듣기만한다. 가을 행사를 준비하는데 계절감에 맞지도 않는 물총행사와 훌라춤(?) 공연 등이 용역 계획에 들어있다. 담당에게 물으니 여름에 진행하려던 행사를 바꾸지 않고 가져왔단다.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리고 그 업체에서 계속 쓰던, A사회자를 섭외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일이 터졌다. 


당시 개장식 행사는 할당 된 예산이 전혀 없어서 끌어와야하는 상황이었다. 그 회의에서 가장 직급이 높으신 분이 물었다. "사회자를 안쓰고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그랬더니, 처음으로 용역사 대표가 입을 열었다. "사회자 안쓰고 어떻게요." 높아진 목소리, 짜증 투의 말투. 


이 사람 지금  짜증내고 있는거지? 그리고 사회자를 안쓰고 할 수 있는 방식은 본인이 찾아야 하는게 아닌가? 


순식간에 회의장이 얼어붙었다.


그 분이 어리기 때문이었을까? 아님 그동안 그렇게 공무원들을 대해 온건가? 대체 무슨 배짱이었을까? 이미 그 분의 직급을 아는 분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용역업체를 회의장에 부른 실무진은 "점수 따라고 불렀더니 점수를 까먹고 있으니 미칠노릇이었다" 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럼 제가 알아볼까요?" 높은 분이 말하셨다. 그리고 회의장의 분위기를 감지한 대표가 아차 싶었는지  "아니. 사회자가 없으면 행사가 어렵다는 말씀이었죠 제 말은.." 하고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이후로 행사를 진행하는데 참을 인을 수십번 새겨야했다. '이렇게 만들어오겠습니다'던 감성있는 포스터 예시와는 달리 (알고보니 본인들이 일전에 제작한 것도 아니고 퍼온 거였다) 일반적인 행사 포스터를 만들어오질 않나, 우리가 지적하고 계획과 다르니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자, '돈을 더줘야 한다'며 뻗댔다. 


견적서를 뜯어보니 뻥튀기도 그런 뻥튀기가 없었다. 단상정도만 배치하면 되는 행사에 LED 백월을 세우겠다고 하질 않나. 필요 없다고 하니 계속 해야한다고 하질 않나. 그것도 안된다고 하니 LED 배너를 그럼 무대 양측에 세우겠단다. 뿐만 아니라 원래 구매를 해도 1000원정도 하는 물품을 1500원에 빌려주겠다고 하니, 참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행사의 분위기와 맞지도 않는 행사를 기획해오는 센스는 어찌보면 전초전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후 그 업체에 대해서 알아보니 해당 지자체의 거의 모든 사업을 맡아서 했던 업체였다. 그러니 그렇게 배짱을 부릴 수 있었겠지. 그러니 그렇게 나이브 했겠지. 그리고 대표가 해당 지자체의 상공회 임원이더라. 높으신 분들과 친하다던가?


행사를 했던 부서들에게 물어보니 악평이 자자했다. B부서가 진행한 행사에서는 행사 당일, 업체가 준비가 전혀안돼서 결국 모든 직원들이 투입이 되어 겨우 행사를 끝냈고, C부서의 행사에서는 그 용역업체의 팀장이 일을 너무 못해 실무진이 다해야 했다고 했다. (알고보니 그 팀장도 그 대표의 딸이었다..!!) 


그런데 계속 같은 업체와 같은 사회자를 쓰는 악순환. 예산은 예산대로 나가고 행사는 행사대로 삐걱대고, 단 한사람의 기대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예산만 쓰는!!! 그런 답답해 죽는 상황!! 


나와 함께 행사를 준비하던 실무진은 "저는 다른 지자체에서 왔으니까, 여기 분위기를 모르죠. 그래서 물어보니 이 업체랑 많이 한다고 하는겁니다. 그래서 이 용역사랑 진행하게 됐는데 이정도로 행사를 망칠 줄이야.." 후회에 후회를 거듭했다. 







그렇다고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업체를 쓰지 말라고 게시판에 올려? 모든 부서에 연락을 돌려? 아니면 계속되는 이 비극을 어떻게 막지? 


늘공들의 현장에 와보니 그런 경우가 참 많았다. 특히 '용역'일 경우엔 더 그랬다. 높으신 분들과의 친분을 들어 실력이 없는데도 그 기관을 틀어쥐고 있거나, 이미 계약이 된 용역이기에 결과는 대강 만들거나, 어찌저찌 따낸 사업을 또 본인들의 이력에 한 줄 넣어 또 다른 지자체에 피해를 양산하는. 용역은 대부분 1000만원 이상을 부르기에  


나라에 도둑놈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 도둑놈은 의외로 공무원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한주원입니다. 많은 분들의 사랑과 격려로 첫 책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브런치에 썼던 원고들을 모아, 책 <다정한 정치를 꿈꿉니다>를 펴냈습니다. 


MZ 세대 보좌진이 경험한 국회의 일상을 담았습니다. 복잡한 국회의 모습을 톺아보시는데 많은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사랑과 관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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