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공유하는 일, 다섯 잔
언제인가 그랬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놓은 뒤 줄곧 마음만 먹어왔던 일이었는데 꼬박 다섯 일을 버텨내고 남은 이틀은 쉬고 싶다는 이유로 오래도록 미뤄왔던 여행이었네요.
이른 아침 가장 빠른 시간의 기차표를 쥐고 올라 보았던 차창으로 선명하게 스쳐 지나가던 먼 하늘.
여차하면 울음을 터트리며 자지러지던 아기, 좌석이 떨어져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서로를 곁눈질하던 연인들. 에어컨이 춥다는 이야기, 점심엔 뭘 먹을까, 나올 때 집에 가스 밸브를 잠갔었나.
사람 사는 냄새가 유난스러웠던 곳.
간간이 안내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던 역들의 이름.
다음 역. 그다음 역. 다음다음 역.
낯선 곳에 간다는 생각, 조금은 먼 곳에 내려야겠다는 생각. 부푼 마음으로 잠시 후에 펼쳐질 것들을 그려내며 당신의 팔에 매달려 차창 가득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셔서,
한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꼭 썬크림을 바르고 오랬더니.
턱 끝. 부드럽게 발리다가 만. 하얗게 뭉친 썬크림에 작게 터져버린 웃음소리와 멋쩍은 듯 다른 곳을 바라보던.
두 번째 손가락, 그 서툰 흔적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당신의 얼굴 그 생김새가 마음에 들어서, 어느 덫 익숙해진 모습들은 어쩐지 모르게 꼭 당신이 완전한 내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생각을 들게 해서.
때맞춰 들려오던 하차 안내 방송에 허겁지겁 손을 잡아끌면 군말 없이 따라와주는 당신이 고마워서요.
이름 모를 역. 그리 멀지 않은 곳 그렇다고 그리 가깝지도 않은 어디쯤.
너스레를 떨어 보기도 하고.
특이한 양식의 건물이 보이면 큼지막한 글자가 적혀있을 간판을 궁금해하기도 하고, 무심코 지나치려다 몇 걸음을 되돌아와 뚫어져라 바라보았던 골목의 연둣빛 담벼락도, 지나오다 보았던 와인을 파는 곳인지 커피를 파는 곳인지 거기에 가볼까.
그러다 잘 꾸며진 공원이 눈에 들어오면 나란히 아이스크림을 물고 앉아서는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가, 온 힘을 다해 일렁이는 노을이 온몸으로 당신을 감싸 안고 있는 것만 같아서, 이마에서 코 끝을 따라 턱 아래까지.
부드럽게 그려진 곡선이 반짝반짝 빛이 나던 그 모습이 꼭 말 못 할 사연이라도 가진 것처럼 아름다워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