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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빈 Jun 30. 2019

눈길이 향하는 곳 발길이 닿는 곳

감정을 공유하는 일, 다섯 잔

종착역으로 가는 표 두 장이요.



언제인가 그랬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놓은 뒤 줄곧 마음만 먹어왔던 일이었는데 꼬박 다섯 일을 버텨내고 남은 이틀은 쉬고 싶다는 이유로 오래도록 미뤄왔던 여행이었네요.



다시 돌아올 때까지 어떤 걱정도 하지 않는 거야. 이를테면 두고 온 것들에 대한 염려 같은 것들 말이야.



이른 아침 가장 빠른 시간의 기차표를 쥐고 올라 보았던 차창으로 선명하게 스쳐 지나가던 먼 하늘.  

     

여차하면 울음을 터트리며 자지러지던 아기, 좌석이 떨어져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서로를 곁눈질하던 연인들. 에어컨이 춥다는 이야기, 점심엔 뭘 먹을까, 나올 때 집에 가스 밸브를 잠갔었나.


사람 사는 냄새가 유난스러웠던 곳.

     

간간이 안내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던 역들의 이름.

다음 역. 그다음 역. 다음다음 역.

     

내릴까?

조금만 더 가서요.

     

낯선 곳에 간다는 생각, 조금은 먼 곳에 내려야겠다는 생각. 부푼 마음으로 잠시 후에 펼쳐질 것들을 그려내며 당신의 팔에 매달려 차창 가득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셔서,

     

한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꼭 썬크림을 바르고 오랬더니.

     

턱 끝. 부드럽게 발리다가 만. 하얗게 뭉친 썬크림에 작게 터져버린 웃음소리와 멋쩍은 듯 다른 곳을 바라보던.

     

두 번째 손가락, 그 서툰 흔적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당신의 얼굴 그 생김새가 마음에 들어서, 어느 덫 익숙해진 모습들은 어쩐지 모르게 꼭 당신이 완전한 내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생각을 들게 해서.

     

때맞춰 들려오던 하차 안내 방송에 허겁지겁 손을 잡아끌면 군말 없이 따라와주는 당신이 고마워서요.

     

이름 모를 역. 그리 멀지 않은 곳 그렇다고 그리 가깝지도 않은 어디쯤.

     


허름한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그게 맛집이면 좋겠어. 근데 사람들은 그곳이 맛집인지 몰랐으면 해. 우리만 아는 거지.



너스레를 떨어 보기도 하고.

     

특이한 양식의 건물이 보이면 큼지막한 글자가 적혀있을 간판을 궁금해하기도 하고, 무심코 지나치려다 몇 걸음을 되돌아와 뚫어져라 바라보았던 골목의 연둣빛 담벼락도, 지나오다 보았던 와인을 파는 곳인지 커피를 파는 곳인지 거기에 가볼까.


그러다 잘 꾸며진 공원이 눈에 들어오면 나란히 아이스크림을 물고 앉아서는



참 이상하지? 지금 보이는 하늘도, 나무로 가득 찬 흔해빠진 공원도 하다못해 아이스크림까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것들인데, 여기에 왔다는 이유로 옆에 네가 있다는 이유로 특별하게 느껴지나 봐.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가, 온 힘을 다해 일렁이는 노을이 온몸으로 당신을 감싸 안고 있는 것만 같아서, 이마에서 코 끝을 따라 턱 아래까지.


부드럽게 그려진 곡선이 반짝반짝 빛이 나던 그 모습이 꼭 말 못 할 사연이라도 가진 것처럼 아름다워서요.

  


가끔 이렇게.

눈길이 향하는 대로 발길이 닿는 대로

하염없이 걸어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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