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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빈 Jul 19. 2019

당신의 색

감정을 공유하는 일, 일곱 송이

초록색과 파란색을 좋아한다고 그랬었지요. 연유에 대하여 물었더니 머뭇거리며 자연과 닮아서, 짧게 대답하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편견에 가득 찬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화려한 네온사인이 가득한 곳을 좋아해야 할 나이에 당신은 자연의 색을 띠는 것들을 좋아한다고 자주 말하고는 했습니다.

그 말이 진심일까? 되뇌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길가에 핀 꽃이라던가, 청명한 날의 바다 빛 하늘, 비가 내린 탓에 촉촉이 젖은 땅이나 수분을 머금은 축축한 공기의 냄새 같은 것들.
 
우연하게 많은 것들을 함께 마주할 때면 당신은 한결같이 찰나의 순간 흐뭇한 표정으로 오래 그것들을 바라보기도 했었지요.


그런 모습들은 종종 나마저도 초록색과 파란색을 경외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초록색과 파란색이 이제는 당신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이 되어버렸고요.

때때로 당신은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내내 고민하던 말들을 기꺼이 삼켜내는 그 성숙함이, 지나치는 작은 미물에도 감탄을 금치 못하는 그 순수함이, 헤아리지 못할 아픔을 품고도 티없는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 모습까지도.  

비가 내릴 것만 같은 새벽 이따금 홀로 잠에서 깨어날 때면 간혹 우리가 가까워지던 날들이 불현듯 떠오르고는 합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 텅 빈 카페에 남아 줄곧 즐겨듣는 노래를 나누며 서로가 좋아하는 부분을 짚어주고는 했었지요.

사실 나는 우리가 참 잘 맞는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바보 같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조금은 늦게 알아버렸습니다.

당신의 많은 부분들이 나에게 맞춰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몰려오던 그 감정을 무엇이라 표현을 해야 좋을까요.  

당신이 그랬지요.  

그 때에는 좋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제는 정말로 좋아져 버렸다고요.

오랜 기억을 따라가 보니 알겠더군요. 리드미컬한 팝을 좋아했던 당신이 언제부터인가 발라드를 좋아한다며, 때때로 뉴에이지를 즐겨 듣기도 한다고 말하던 것을요.

오래 기다리던 영화가 개봉을 해서 일찍이 보고 왔다는 내 말에  늦은 시간 혼자 영화관에 다녀와 일이 끝날 때까지 나를 기다리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주던 당신의 모습까지.

이렇게 문득 당신의 고마운 모습들이 마구 떠오르는 날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마음들이 내내 머물러 있고는 합니다.  

몇 시간이 지나면 밤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 아침이 왔다는 말을 전하겠지요.

파란 어스름이 창밖으로 빛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당신이 좋아하는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넌지시 고맙단 말을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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