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알고 마실까요? - 1부 전쟁과 와인
프랑스와 미국, 2차대전 막바지 독일이 수탈한 수십만 병 최고급 와인 쟁탈전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5월 4일. 프랑스 제2 기갑사단과 미국의 제101 공수사단이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의 독일 휴양도시 베르크호프(Berghof)를 향해 탱크를 앞세우고 전속력으로 돌진합니다.
베르크호프는 히틀러의 별장이 있는 곳으로 독일 주요 간부가 대거 모여 사는 독일 권력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히틀러와 그의 주요 간부들은 며칠 전 패전을 직감하고 베를린 벙커에서 이미 자살을 했거나 도주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두 나라 기갑사단이 마치 경주하듯 베르크호프 점령에 나선 것은 그곳에서 프랑스에서 수탈해 간 수십만 병의 최고급 와인과 예술품을 그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벌어질 뻔한 또 다른 범죄 사건을 (우리가) 미리 막은 것뿐이오.” 프랑스의 제2 기갑 사단장 필립 르클레르(Philippe Lecicrc)가 조용히 돌아서며 나직이 읊조렸습니다.
미국 제101 공수사단장은 여전히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당신들은 우리의 지휘아래 있었고 아직도 우리의 지휘 하에 있다”며 프랑스가 독일이 수탈한 와인을 모두 빼돌린데 대해 다그치자 르클레르 사단장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히틀러의 은신처 ‘독수리 요새(Eagle nest)’에 숨겨져 있던 와인 50만 병 프랑스가 차지
이미 프랑스 군은 미군보다 베르크호프에 먼저 입성해 최고급 와인 2만 병을 프랑스로 안전하게 회수해 간 뒤였습니다. 이어 며칠 후 해발 1800미터의 칼슈타인 산 가파른 절벽 꼭대기에 위치한 히틀러의 은신처 ‘독수리 요새(Eagle nest)’에 숨겨져 있던 와인 50만 병도 결국 프랑스가 차지하게 됩니다.
10여 년 전 배우 톰 행크스와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해 우리나라에도 방영됐던 미국의 전쟁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는 히틀러의 최측근인 헤르만 괴링 원수의 집 지하창고에서 최고급 와인 1만 5000병을 발견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화면으로 봐도 드넓은 지하실 벽면을 빈틈없이 꽉 채운 프랑스 명품 와인에 넋을 잃은 한 장교가 “정말 기쁜 날이군”이라 말하며 와인을 꺼내 드는 모습은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1만 5000병의 와인이 그 정도 규모인데 히틀러의 독수리 요새 지하동굴에는 지금 기준으로 한 병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보르도와 부르고뉴 등지에서 가져온 명품 와인 50만 병이 꽉 차 있었다고 합니다.
프랑스 전쟁영웅 드골 지극한 와인 사랑… 특수부대 구성, 독일이 숨겨놓은 프랑스 고급 와인 되찾아
프랑스가 연합군의 지휘를 주도하는 미군과의 전승 경쟁에서 연이은 성과를 거둔 것은 당시 프랑스의 전쟁영웅 드골을 비롯한 프랑스 사람들의 와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드골은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독일이 곳곳에 숨겨놓은 프랑스 고급 와인을 찾아오기 위해 특수부대를 구성했습니다. 그 특수부대는 베르크호프에 이어 독수리 요새에 잠입해 와인을 숨겨놓은 곳을 찾아내 프랑스 군이 미군에 앞서 히틀러의 와인 약 50만 병을 회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1939년 9월 1일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와 자유주의 수호의 이념이 충돌한 전쟁이었지만 그 수많은 전투 이면에서는 프랑스 명품 와인을 둘러싸고 벌인 와인전쟁도 많았습니다. 적군과 아군도 없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프랑스는 그들의 나라는 빼앗겼지만 그들의 자존심인 와인을 잃지 않기 위해 눈물겨운 투쟁을 계속했습니다.
1939년 9월 1일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독일의 히틀러가 마침내 폴란드 국경을 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죠. 전쟁이 코앞에 닥친 프랑스는 군인들까지 동원해 서둘러 포도 수확을 마칩니다.
해가 바뀌자 독일의 기갑부대가 프랑스 국경을 넘어 파리로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프랑스 와인 수탈에 나섭니다. 앞서 프랑스의 와인 생산자들은 이를 예상해 지하 깊숙한 와인 저장고나 자신들의 저택에 또 다른 벽을 쌓아 소중한 와인을 숨긴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은 독일의 와인 수입상들로 구성된 ‘와인 총통’ 조직까지 만들어 약탈에 나섭니다.
파리 레스토랑 ‘라 뚜르 다르장(La Tour d'Argent)’ 수백 년간 와인 45만병 모아… 1788년 산 꼬냑 3병 1억 원에 팔리기도
파리의 센 강 근처에서 1582년에 문을 열어 무려 42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급 레스토랑 ‘라 뚜르 다르장(La Tour d'Argent)’의 와인 지키기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 레스토랑은 지하에 보관돼 있던 명품 와인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저장고 한편에 몰래 벽을 쌓아 밀봉한 뒤 2만 병의 특급 와인만 숨기고 나머지 8만 병만 노출되게 만들어 가까스로 고급 와인들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레스토랑은 음식도 맛있지만 보유한 와인들이 워낙 많아 그 당시에도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독일군 고위 장교들이 수시로 찾았는데 무조건 최고급 와인을 내놓으라고 했지만 와인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어 가장 싼 와인을 줘도 좋은 와인이라고 감탄하면서 마셨다고 합니다.
당시 라 뚜르 다르장의 사장은 테라이라는 사람으로 독일군 장교들의 대화를 듣고 정보가 되는 중요한 내용을 수시로 연합군에 전달해 전쟁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라 뚜르 다르장은 지난 2009년 12월 7일에 또 한 번 큰 뉴스로 등장합니다. 라 뚜르 다르장이 수백 년간 모아 보유하고 있던 와인 45만 병 중에 1만 8000여 병을 일반인에게 경매로 부친 겁니다. 사상 처음 있는 일어났었는데 이틀간 진행된 경매에서 1788년 산 꼬냑인 ‘끌로 뒤 그리피에(Close du Griffier)’ 3병이 무려 1억 원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한 해 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를 거치면서 숙성된 꼬냑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자 프랑스의 1등급 와인 ‘샤또 무똥 로췰드’는 승전의 기쁨을 표현한 ‘V’를 형상화 해 와인 라벨에 담았습니다. ‘샤또 무똥 로췰드’의 와인 라벨에 해마다 유명화가의 그림이 그려지게 된 시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