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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관웅의 tellmewine Mar 27. 2019

11. 와인, 죽음의 공포를 잊게 한 전쟁의 필수품

@ 와인, 알고 마실까요? - 1부 전쟁과 와인

제1차 세계대전 중 와인을 마시는 독일군 병사


총과 대포 소리에 이성 마비… 광기의 전쟁을 와인이 마취시켜


인류에게 가장 어리석고 잔혹한 행위가 ‘전쟁’입니다. 전쟁은 인류가 애써 이룩한 문명을 송두리째 부수고 인간의 본성마저 파괴합니다. 특히 한 순간에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일이 벌어지는 전쟁터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눈앞에서 동료가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심지어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모습으로 죽어가기도 합니다. 죽는 사람도 공포에 덜덜 떨며 죽어가지만 그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더욱 큰 공포를 느낍니다.


전쟁은 TV 속에서 보는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실제 총소리를 옆에서 들어보면 어마어마한 굉음에 놀랍니다. 그 소리 이후에도 귓전에서는 계속 쇳소리가 납니다. 총소리가 이 정도 일진 대 대포 소리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엄청난 소리와 진동에 의해 고막이 마비되고 이성을 잃게 됩니다.


갑자기 왜 이런 잔인한 얘기를 하는지 궁금하겠지만 ‘전쟁’과 그 마취제 ‘술’을 얘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전부터 전장에는 와인과 맥주 등 술이 필수품이었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술로 이기고자 했던 것이죠.



와인을 마시는 미군 공수부대


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병사 한 명에게 하루 2L 이상씩 와인 지급… “극한의 공포 잊어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군 병사 한 명에게는 하루 2L 이상의 와인이 주어졌다고 합니다. 화약과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참호 속에서 극한의 공포를 이겨내고 전쟁을 수행하려면 맨 정신으로는 힘들었기 때문이죠.


지난해 말 개봉한 전쟁영화 ‘저니스 엔드’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당시 프랑스의 최전선에서 6일간 펼쳐지는 이 같은 전쟁의 공포를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부대가 6일 동안 전선을 지키고 다른 부대와 교대를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전장에서 임무를 마치고 진지를 빠져나가는 병사들의 얼굴에서는 “이제 당분간 죽을 염려는 없다”는 안도감이, 새로 투입돼 진지로 향하는 새로운 부대원들의 얼굴에서는 공포가 그대로 묻어납니다.


언제 적이 공격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부대원들은 모두가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비치며 때로는 이상한 행동까지 보이기도 합니다. 중대장은 공포심에 짓눌려 환영을 보기도 하고 부중대장은 불안감에 어쩔 줄 몰라 늘 위스키에 절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공포와 마주한 이들을 달래주는 유일한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술입니다.



프랑스 상파뉴 마시주 참호

 

프랑스 상파뉴의 마시주 참호 유적지에서는 지금도 주변 땅 파면 유골과 함께 와인병이 함께 출토


실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진지 하나를 놓고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수십 차례 뺏고 빼앗으며 5만여 명의 사상자를 낸 프랑스 상파뉴의 마시주 참호 유적지에서는 지금도 주변 땅을 파면 유골과 함께 와인병이 함께 출토된다고 합니다.


삶과 죽음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참호 속에서 극한의 공포를 이기기 위해 마시던 술병은 어찌 보면 총탄에 부스러진 유골보다 전쟁의 참상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기도 합니다.


고대부터 술은 전사의 필수품이기도 했습니다. 중세시대 전사들은 늘 맥주에 취해 있었다고 합니다. 프랑크 족, 색슨 족 같은 게르만 전사들은 맨 앞에 가장 용맹한 전사 한 명이 서고, 그 뒤에 2명, 다시 그 뒤로 3명이 늘어서는 삼각 대형을 즐겨 짰는데 맨 앞의 병사는 만취한 전사였습니다.


맨 앞에 서는 전사가 적 앞에서 겁을 먹고 달아나거나 움츠러들면 안 되기 때문에 이 병사에게는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먹였다고 합니다. 진짜인지 모르지만 그중에는 술에 너무 취해서 적 앞에서 칼이나 도끼조차 휘두르지 못하고 혼자서 쓰러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서양에서 ‘투구를 쓴다(Put on one’s helmet)’는 표현이 ‘술을 코가 삐뚤어지도록 퍼마신다’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로마 군인 전쟁 전날 2~3L 와인 배급… 용맹한 로마군의 이면에 술도 한몫


고대 로마시대 때 로마군에서도 와인은 정복전쟁의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로마 군인에게는 저급 와인이기는 하지만 하루 1L 정도의 와인이 배급됐는데 전쟁을 앞둔 전날에는 이보다 많은 2L 또는 3L 정도로 양을 크게 늘렸다고 합니다. 용맹한 로마 군대의 그 이면에는 술도 한몫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요즘 시대에도 술은 공포를 없애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게 사랑 고백이죠.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괜히 고백했다가 창피만 당하면 어떻게 하지?’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는 것은 어쩌면 전쟁에 나서는 병사보다 심장이 더 요동칠 수도 있는 일이죠. 이 때문에 약간의 술기운을 빌면 사랑 고백이 쉬워지기도 합니다.


혹시 사랑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와인을 곁들인 자리에서 그 사람에게 당신의 심장소리를 전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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