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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hind you Jun 05. 2019

노란 리본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노란 리본을 부착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길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현상은 5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유래와 의미를 정리해보기 위해 글을 작성한다.


유럽에선 약 4세기 전부터 고난에 빠진 애인을 기다린다는 내용의 시와 노래(She wore a yellow ribbon)로 전해졌다. 이 노래가 청교도를 통해 미국에 전해졌고, 점차 군인들의 무사생환과 연결되어 사용되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노란 리본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곳은 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 후보 김황식 선거사무소이며 4월 17일이다.


이튿날인 4월 18일. 단원고 교내 나무에 학생들이 노란 리본을 묶었다. 이때부터 BBC 등의 외신을 통해 노란 리본 관련 소식이 해외로도 전해지기 시작했다.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4월 22일 한 누리꾼은 인터넷을 통해 “카카오톡 세월호 희망의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에 동참해요”란 글을 올렸다. 이때를 기점으로 ‘세월호 참사’와 ‘노란 리본’은 연관 키워드로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온라인에서 시작된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은 오프라인으로 이어졌다. 단원고 주변과, 시내, 인천 여객선 터미널, 팽목항, 서울 청계천 등 전국으로 무사귀환 염원이 노란 리본에 담겨 바람에 날렸다. 이 같은 바람에는 ‘끝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국가를 독려하고 구조요원을 격려하는 뜻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노란 리본은 실재 리본에서, 갖고 다니거나 소지하기 쉬운 배지, 고무 고리, 팔찌 등의 다양한 형태로 진화되었다. 눈에 쉽게 띄는 옷과 가방, 팔목, 휴대폰, 목걸이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2019년 현재도 거리,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노란 리본의 의미.

시기적으로 노란 리본에 담긴 함축적 의미는 변해왔을 거라 생각된다. 사건 발생 초기, 실질적으로 생환 가능성이 있다고 희망하던 시기에는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전통적인 노란 리본의 의미로서 마음이었을 것이다. 현실적 생환 가능성이 낮아진 시기 이후를 중기로 본다면 이때부터의 의미는 희생자를 추모하고, 희생자 가족과 사고와 관련된 직접적인 관계자분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작은 위로를 전해드린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생각된다. 이후로는 참사에서 발생한 아픔, 상처와 더불어, 국가적/제도적 시스템의 불완전함 속에서 비롯된 이 같은 비극적 인적재난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도 포함되었을 것 같다.


가슴에 배지, 가방에 고리, 휴대폰에 스티커를 붙이는 작은 행위들은 생존자와 피해자 가족분들에게, 그리고 우리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역할을 작게나마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버스 옆자리 생면부지 사람의 옷깃에 달려있는 노란 리본 배지를 보며 작은 감정들이 지나지는 않았는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당신도 기억하려는구나.. 그래 잊지 말자.


트라우마와 사회적 지지.

세월호 사건은 국가적인 집단 트라우마 사건으로 볼 수 있다. 흔히 트라우마로 불리는 증상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말한다. 세월호 침몰이라는 외상사건은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 그리고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불특정 한 많은 일반인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트라우마가 발생했을 때 증상을 낮출 수 있는 외부 요인 중 ‘사회적 지지’ 요인이 있는데, 쉽게 말하면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족의 위로와 가까운 친구가 주는 따뜻한 위안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선박 침몰’, ‘비행기 추락’, ‘지하철 화재’, ‘공사장 붕괴/화재’ 등 인간의 의도적, 비의도적 요인으로 비롯된 재난인 사회적 재난 피해자들의 장기적인 상실감은 ‘더 이상 기억되지 못함’이 중요한 요인으로 포함된다. 피해자나 가족은 발생 당시엔 여러 관심과 지지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미디어의 어젠다에서 사라지게 되면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사람은 오래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와 가족들은 지연 발생되고, 만성화된 트라우마로 오랜 시간 치유와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지 출처: https://twitter.com/hashtag/노란리본

노란 리본의 기억

1. 나는 노란 배지를 팽목항과 광화문 광장, 그리고 협회에서 몇 개씩 집어왔다. 팽목항과, 광화문은 유가족 협의회 및 관계자 분들이 운영하시는 추모 공간이었다. 협회에 배치된 배지는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궁금해 문의하니 유가족 분들이 직접 가져다주셨다고 했다.


2. 백남기 님은 2015년 11월 ‘1차 민중총궐기’ 현장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1년 가까이 의식 불명 상태로 계시다가 2016년 9월 25일 서울대 병원에서 사망하셨다. 당시 사망진단서가 논란이 되었고, 경찰이 부검영장을 발부받자 각계 인사들이 장례식장에 모여 부검을 반대했다. 10월 23일 경찰은 1차 영장 집행을 실패했고, 이틀 뒤 재 집행하려다 포기하고 병원에서 철수했다. 당시 현장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는데, 얼굴을 알 수 있는 공인들의 경우 시신을 사수하기 위한 대열에 쉽게 합류할 수 있었던 반면 일반인들의 경우 정보경찰로 오해받아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때 사수 대오에 합류할 수 있는 열쇠처럼 사용되었던 물건 중 하나가 노란 리본이었다. 출입을 통제하던 사람들이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과 논란을 벌이다가 몸에 부착되거나 휴대폰에 걸린 노란 배지를 보면 사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3.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말을 건넨다. 오늘 공중변소에 들어가는데, 바로 앞에 건장하고 무섭게 생긴 사람이 들어가더라. 소변기가 두 개라 옆에 설 수밖에 없는데 반팔 민소매 밖으로 울긋불긋한 문신이 길게 내려와 있더라. 순간 저 옆에서 소변을 봐야 하나.. 무섭더라고. 그런데 그 사람이 바지 지퍼를 내리기 전에 전화기를 소변기 위에 올려두는데, 노란 리본이 매달려 있는 거야.. 갑자기 안심이 돼서 그냥 볼일을 봤어. 짧은 시간이었는데 내 의식의 변화는 다이다믹 해서 왜 그런지 조금 생각을 해봤는데, 저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무슨 모습을 하고 있던 타인의 아픔을 기억하려고 하는 사람이 쉽게 폭력을 사용을 사용하진 않을 것 같은 믿음이 들었던 것 같아...       

이미지 출처: www.inews365.com


‘노란 리본’은 현재,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와 기억

유사한 인적재난 재발방지에 대한 염원

이 사회에서 공존하려는 인간애의 흔적

등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보인다.


기억이라는 것은 어떤 구원의 행위임을 함축하고 있다. 기억이 되고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음이라는 것으로부터 구제되어 온 것이다. 잊히고 있는 것은 버림을 받아온 것이다(존 버거, 1992: 본다는 것의 의미)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하고, 좀 더 나은 시간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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