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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you
Jun 05. 2019
다 큰 사람이나, 어린 아이나, 어린 고양이나 병원은 무섭다.
심장사상충 주사나, 광견병(이상하게 광묘병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예방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에 가면 씩씩한 길남은 한없이 작아진다. 의사와는 눈도 마주 보지 못하고 꼬리는 다리 사이에 감춰둔다.
암고양이 중성화 수술은 숫고양이 수술보다 어렵다. 전신마취를 하고, 배를 열어야 하며, 자궁을 들어낸 뒤 봉합한다. 그리고 상처가 아물기를 일주일 동안 기다리며 하루에 두 번씩 약을 먹어야 한다. 수술하기 전 수술받기 적합한 상태인지 피검사를 선택적으로 할 수 있는데 혹시 모르니 검사를 받기로 했다.
오른팔 털을 쓱쓱 밀고 주사기로 5 mml정도 피를 뽑는다. 길남이 피도 붉은색이라고 알고는 있었으나, 가느다란 관을 통해 1mm 정도 피가 뽑히다가 0.5mm 정도 공기가 뽑히고 다시 1mm 정도 피가 뽑히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다 보니 저놈이나 나나 더운 김 나는 피를 가진 생명이라는 사실이 모락모락 다가왔다. 일방적으로 정해버린 결정이 다시 미안했다.
'드물기는 하지만 수술 뒤 못 깨어날 수도 있다'라고 수의사가 알려준다. 수술은 20분 정도 걸리며, 전신마취가 깰 때까지 6시간쯤 뒤에 다시 오면 된다고 한다. 난생 처음으로 의사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해봤다.
길남이 수술하고 바로 이어 수술한 흰색 중년 암고양이는 아직 마취에서 온전히 깨지 않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구석에서 원망의 눈빛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 어린 길남은 마취에서 금세 회복되었지만 줄어들지 않는 동공 때문에 궁금하고 귀여운 표정으로 회복실 안에서 종종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배에 붕대를 칭칭 감은채, 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길남은 붕대 때문에 낮은 포복으로 30분쯤 기어 다니다가, 걷기 시작했고, 왕성한 식욕으로 원기를 회복하곤 몇 시간 뒤엔 창틀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2번은 약을 잘 먹었으나, 3번째 투약은 실패해 입에 초록색 게거품을 물고 온 집안을 쓴맛을 피해 뛰어다녔다. 4번째도 약 먹기를 거부해 병원에 가서 꼬리를 감추고 '하악'거리며 주사를 맞았다.
일주일이 지난 오늘은 움직임이 부자연스럽지 않고, 밥도 잘 먹고 있으며, 로봇청소기를 피해 다니며 분석하고 있다. 현재까진 청소기가 위로는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룸바가 다가오면 상자위로 뛰어올라 이틀 전보다 여유 있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