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hind you Aug 07. 2019

Lisbon story

Wim Wenders, 1994

야근 뒤 움직일 기력이 있을 무렵엔 늘 극장에 갔다. 대부분 조느라 영화의 절반도 보지 못했지만 그랬다.


몇몇 감독은 스토리나 배우를 찾지 않고 그냥 예매했다.


빔 벤더스 감독의 '리스본 스토리'라..


그날도 KOFA에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잠결에 벌어진 작은 눈 사이로 들어온 '하얀 단어' 때문에 눈이 번쩍 떠졌다.


졸다 깼지만, 투사되는 문장들을 놓칠 수 없었다.



-------------------(아래는 영화 속 대사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1.

하지만 믿을 수 있는 건.. 결국 믿을 건 기억입니다.

모든 게 사라집니다. 어떤 일이 정말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누구한테 물을까요?

세상일은 가상적인 환각이며, 유일한 실재는 기억입니다.


하지만 기억은 어떤 조작입니다

이를테면 영화에 나오는 마음속의 기억은

카메라가 포착한 순간입니다

이미 지나간 순간입니다


영화가 그 순간의 그림자를 그려냅니다

영화 밖에서는 그 순간이 있었는지 자신 못합니다

그런데 영화가 그 순간의 존재 증명일까요?


글쎄요


확신이 서질 않는군요


결국 누구나 끝없는 의구심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사는 겁니다

먹고 인생을 즐기며..



2.

여기가 내 시네마테크야

앞에 대형 스크린이 있어

그 잔해랄까...


영사실.

이것도 유물이지


이미지가 전 같지 않아

더는 믿음성이 없어

모두 알아, 자네도 알고


우리 때의 이미지는

뭔가를 말하고 보여줬지

팔리는 것만은 아니었어


이야기가 있었어


그런데 시각이 바뀌었어

뭘 보여주지도 않아

그런 건 잊혔어


이미지는 세상에 내다 파는

싸구려 상품이 됐어!


리스본에 와 작업을 하면서

그런 것에서 벗어나려고 생각했어

서로 이야기하던 거 기억해?


수동 회전 카메라로 흑백영화를 찍고 싶었어

버스터 키튼의 '카메라맨'처럼

카메라를 들고 홀로 거리를 누비면서

지가 베르토프가 그랬듯!


영화사의 한 장면을 재현해

출발점으로 삼았지

100년 뒤에 말이야


안 통했어, 빈터

한동안은 되는 듯했지만

이내 무너졌어


이 도시를 사랑해, 리스본!


시간을 들여, 똑똑히 지켜봤어

눈 앞에 놓고,

하지만 다시 카메라로 잡는 시점에서

바로 그 시점마다 사물은 흘러갔어


돌리고 돌렸지


핸들이 돌 때마다

도시는 점점 더 앞서 가며 사라졌어

수고양이 가토처럼

                         

無였어!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됐어

의기소침했지

그래서 구원을 요청한 거야


잠시 동안, 소리가 문제를 해결하리란

착각을 했어

하지만 마이크는 이미지에 어둠을 더할 뿐이야


가망 없어

가망 없다고, 빈터

가망 없어!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어

들어봐.


팔지 않고, 팔 수 없는 이미지


순수하지

진실되고

아름답고

때 묻지 않은 거야


시각에 오염되지 않고

완벽하게 세상과

일치하는 거야


볼 수 없더라도, 그 이미지는 사물의 표상이 되는 거야


그 사물은

그 자체로 사라졌지


저기 있어, 빈터


'보지 않은 이미지의 서재'


하나같이 보지 않고 찍은 테이프야

기록할 의도가 없었고

누구의 시선도 안 담겼어

모두가 등 뒤에서 찍은 거라고!

도시 그대로의 이미지야


내가 바란 그대로


아무튼 이 손타지 않은 순결한 이미지를

기꺼이 다른 눈으로 보게 될 미래 세대가 있을 거야


걱정 말게

우리가 죽은 뒤일 테니


잠시 생각해봐...


현실의 이미지들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쓰레기 취급이야

모든 이미지들이

거기로 직행이야


내 이미지들은 쓰레기통에 있어

비닐봉지에 담겨서

잊어버려!


---------------------------------------------------------------------------------------------------------------------------


'이미지'와의 인연은 17살에 시작됐다.


지금은 대부분 사람들이 이미지를 기록할 수 있고 기록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30년 전엔 초점, 조리개, 셔터스피드 3가지 기본 조합을 적절하게 손으로 하나하나 조작해 주어야 오롯한 이미지를 기록할 수 있었다. 이 시절  '카메라'는 사용하지 않을 땐 장롱 깊숙이 모셔두는 귀중품이었다. 우리 집 카메라는 나와 동갑이었는데, 부모님이 사용하시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자식들도 찍어 주시지 않았으니 아마 사용법을 모르셨을 거라고 생각된다. 80년대 중반 그 사진기로 기록된 단 한 장의 사진이 있는데, 가족 나들이로 간 행주산성에서 지나가던 사람에게 부탁해 촬영한 것이다.


고등학교에 가니 사진동아리가 있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카메라 사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만져 볼 수 없게 장롱 깊숙이 있었던 기계도 나이가 들어 손에 닿는 곳으로 나와 있었다.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동아리에 가입했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이 전공 결정에 영향을 끼쳤고, 결국 '이미지'와 관련된 일을 17년째 하면서 살고 있다.


공장생활 3년 정도 지났을 무렵 근본적인 질문이 시작됐다. 무엇을, 언제, 어떻게, 왜 기록해야 하는가는 학교와 회사에서 배웠지만 '이미지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다(질문 자체를 인지하지 못해 놓쳤거나 찾지 않았겠지만). 아마도 취미로 삼았으면 하지 않아도 될 생각들을 본격적으로 오랜 시간 하다 보니 발생했으리라 생각된다.


문자, 오디오, 사진, 동영상. 현재 이용되는 모든 미디어는 이 4가지 텍스트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이 4가지 중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텍스트 정보량이 월등히 높다. 정보량이 높은 만큼 상대적으로 객관적일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사실일 가능성도 높다고 인식된다. 이러한 특징은 특히 저널리즘 영역에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고, 현재도 대체 어려운 텍스트로 취급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이미지는 연필로 거짓 문장을 한 줄 쓰는 것처럼 쉽게 조작할 수 있다. 사실로 받아들여지도록 그 조작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여러 유형과 다양한 사례들을 찾으면 찾을수록 이미지에 대한 신뢰가 옅어졌다.


이런 불신은 오래되어 상처 부위에 떨어지지 않는 딱지처럼 되어버렸다. 항상 자각되진 않지만, 잠깐 돌아보면 늘 만져지는 가렵고, 딱딱한 상처.


빔 벤더스 감독의 '리스본 스토리' 마지막 대사는 '이미지'라는 텍스트의 '진실성'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다고 생각된다. 생산하는 미디어의 종류는 다르지만 그의 시선은 내가 관찰한 '이미지'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 아마도 그 반가움에 졸다가 벼락같이 깼을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2001년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의 반영이다.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을 감추고 변질시킨다.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의 부재를 감춘다.

이미지는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어떠한 사실성과도 무관하다: 이미지는 자기 자신의 순수한 시뮬라크르이다.



보르리야르의 생각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미지는 특정 시공간을 기록한 실재가 아니라 거기서 파생한 새로운 창작물이라는 것이다.


브라질 이과수 폭포를 보면서 어떠한 미디어와 방법을 동원해도 이 현장을 오롯하게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극단적 사례이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수시로 사용하는 스마트폰 촬영도 모든 상황에서 마찬가지다. 그대로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결국 선택과 표현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해관계가 높은 이미지 일수록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프레이밍 단계를 거치게 된다. 


좋은 방송뉴스는 이 같은 이미지의 특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보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작가의 이전글 길남의 복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