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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hind you Jun 08. 2020

제16차 이산가족상봉

비하인드 유

2007.10.16

고성 대명콘도. 점심때가 지나 가족들이 개별 도착.

콘도 홀에 울리는 웅성임이 밝다.

몇 년 만의 만남일까.

북측 가족 97명을 만나기 위한 남측 가족 401명의 설레는 대화가 홀에 낮게 깔린다.


2007.10.17

몇 달, 아니 몇 년 만일까.

허리 굽은 할머니의 삐뚜름한 립스틱 라인.

곱디 고운 한복을 입고, 북측 CIQ 통과.

바다에 떠있는 해금강 호텔에 짐을 풀고

버스로 10분 정도 걸리는 상봉장 외금강 호텔로 이동.

금강산 외금강 호텔

첫 단체 상봉.

금강산 외금강 호텔 1,2층 4곳에 나뉜 상봉장.

14시 30분. 남측 가족들은 1번부터 100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57분, 58분, 59분.... 15시 정각.

북측 가족들이 버스에서 내려 호텔로 들어선다.

이동 동선을 고려해, 2층 상봉장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먼저 입장한다.

한 손엔 서류봉투를 들고 딱딱하고 긴장된 표정으로 2층으로 올라선다.


1층 가족들이 크게 웅성이기 시작한다.

몇몇 할머님들은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고 일어난다.

49번 북측 박시권 할아버지가 초청한 가족이 눈 앞 사람을 알아본다.

4명의 가족이 와락 달려든다.

팔에 여유를 두지 않고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린다.

주변 테이블. 아직 가족을 만나지 못한 가족들도 눈가를 훔친다.

빨간 눈으로 애타게 찾는다.

곧 여기저기서 소리치며 울음이 터진다.


남측 가족은 감정을 터져 나오는 대로 보이는 반면 북측 가족은

취재진을 곁눈질로 확인하며 감정과 표정을 조절한다.

"좋은 날인데 왜 우냐"고 진정시킨다.

10분쯤 지나자 울음이 잦아든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대화를 시작한다.

서로 인사하고, 각자의 땅에서 생긴 가족을 인사시킨다.

그리고 이 자리에 없는 가족들의 생사를 묻는다.

왜 그리 일찍 죽었냐며 울음을 터뜨린다.

생사를 확인한 뒤, 압축하기 힘든 긴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 입장할 때 손에 들고 있던 서류봉투에서 사진을 꺼내 지난 시간을 더듬는다.


이 와중에 남측 취재진이 접근하면 북측 가족은 빨간 꾸러미를 꺼낸다.

가로, 세로 30cm 돼 보이는 붉은 천 위엔 수십 개 훈장이 빼곡하다.

그리고 훈장에 대해 설명한다. 잘 살았노라고.

그런데 이상하다. 테이블마다 꾸러미가 같다. 1층도, 2층도. 선물가게 기념품처럼.

차츰 격한 감정이 잦아든 북측 가족이 미디어에 더욱 반응한다. 꾸러미를 풀어 찬양하고,

잡고 있던 손도 슬그머니 놓아버린다. 얼마 서로 닿고 싶었을까.

그런데 무언가가 그들 마음과 쥐어 잡았던 손을 놓아버리게 한다.


더 이상 취재는 못 할 짓이란 생각이 든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좀 더 여유 있게 가족들을 살펴본다.

취재진이 빠지자 좀 더 자유로워 보인다.

도란도란. 손도 다시 잡고....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북측 기자단과 보장성원 들을 둘러본다.


생각보다 북측 취재진이 많다. 30여 명 정도. ENG나 캠코더, 필름 카메라. 장비가 다양하다.

평균 연령이 남측 기자단 보다 10살 정도 많은 것 같다.

북측 가족들보다 보장성원들이 덜 경직돼 보이고, 보장성원 보다 적십자 단원들이 덜 경직돼

보인다. 그리고, 단원들보다 기자들 표정이 좀 더 여유롭다.


2007.10.18

오전엔 남측 숙소인 해금강 호텔에 북측 가족이 방문했다.

손에 손엔 선물이 들려있는데 내용물은 같다. 들쭉 술.

가족들 표정이 어제 보다 덜 경직돼 보인다.

개별 상봉은 공개가 되지 않는다.


삼일포

금강산 호텔 공통 중식.

어제부터 보낸 시간들이 먹먹한 시간 업데이트가 됐을까.

서로 같이 있는 것이 더이상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점심식사를 마친 뒤. 오후엔 경치 좋다는 삼일포 관광.

관광지 입구 버스에서 내리자 북측에서 준비한 간식을 하나씩 나눠준다.

물 깨끗하고, 경치 좋지만 아무것도 필요 없어 보인다.

1초라도 빨리 대화를 하기 위해 가까운 자리 아무곳에나 앉는다.


2007. 10.19

9시부터 10시까지 마지막 상봉.

2박 3일간 총 10시간 30분 동안 만날 수 있는 이산가족.

그리고 마지막 1시간.


타인에 의해 갈라진 시간이 다시 갈라지려는 순간.

안내방송이 나온다. "상봉 시간이 끝났으니 북측 가족은 버스에 탑승하기 바랍니다."

남측 가족들은 버스까지 올 수 없다.

30여 미터 떨어진 호텔 현관까지만 배웅을 할 수 있다.

현관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멀어지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는 듯 했다.


하지만, 이동도 힘들어 하던 어르신들에게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현관 앞 1차 이동저지 라인이 무너지고

계단 앞 2차 라인도 또 무너졌다.

그리고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사람들은 버스로 버스로 밀착되어 갔다.


작은 창 사이로 손에 손을 잡았다.

힘 하나 없을 것 같은 자글자글한 주름진 손이 억세다.

쥐고 쥐고 쥐어도 그리워 한번 더 움켜쥔다.

창문 너머로 소리가 들리진 않지만 버스 안 외침이 한 편의 마임이 되어 울린다.


"통일되어 만나자우", "기래 조심히 들어가....", "조심히..."


2007년 9월 말 현재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 등록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는

126,209명이고, 이 중 돌아가신 분은 32,296명이다.

6.15 남북 공동선언 이후 15차례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치러졌고,

3,188 가족이 짧은 만남을 가졌다.

이 짧은 만남도 가지지 못한 가족 중 72.3%는 70대 이상 고령자이다.


2년 만에 찾은 금강산은 조금 변해 있었다.

못 보던 건물들이 들어섰고, 어떤 곳은 공사 중이며,

옥류관 기념품 판매점 맞은편에 생긴 커다란 면세점엔

롤렉스 시계와 구찌 등을 팔고 있다.


편해졌지만 구멍이 뚫리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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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대 중반 출장 순서를 놓고 작은 논란이 있었다.

업무 특성상 출장이 잦은 편이라 형평성을 위해 해외/국내 순번이 따로 있는데,

논란이 된 의견은 '북한' 출장을 해외 출장으로 할지, 국내 출장으로 할 것인가 였다.

화해 분위기로 북한 출장이 하나, 둘 생기던 초창기는 해외 출장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격주로 북한을 가는 상황이 됐다.

당시 데스크와 논의해 금강산/개성은 국내출장, 평양은 해외 출장으로 셈하기로 했다.


2020년 현재. 북한은 다시 셈하기 어려운 가깝고, 먼 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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