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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Mar 20. 2023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

내가 만나고 싶었던 어른처럼


한 때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누가 됐든 뭐가 됐든 날 좀 도와줬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열여덟 번의 봄이 지났고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에게도 좋은 어른들이 있었다는걸.
친구도 날씨도 신의 개입도요.

더 글로리, 16화 중 문동은 대사







기부를 했다. 25살 때부터. 큰돈은 아니다. 어떤 곳은 5천 원. 다른 곳은 1만 원. 또 한 곳은 3만 원. 생각나는 기부처라면 유니세프, 전국재해구호협회, 그린피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지파운데이션 정도. 단체마다 사용처가 다르다.



소득이 없을 때 한두 달 쉰 적은 있지만, 웬만하면 이어나가려 하는 편이다. 사업을 하면서도 가장 먼저 신경 썼던 지출처였다. 기부 내역을 마케팅 요소로 활용한 속물이지만, 그렇더라도 일부를 나누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여겼다.





유기견입양센터 산책 봉사를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길에 떠도는 유기견과 시설에서 보살핌을 받는 보호견 가운데, 더 행복한 강아지는 누굴까? 하는 생각.



"길에 떠돌아다니는 강아지를 알지만 신고하지 않았다. 보호소에 잡혀가면 곧 안락사 당할 테니까. 열악하고 위험하더라도 길을 떠도는 것이 더 오래 살 수 있는 길인 것 같았다."


문장이 똑같진 않지만, 이런 스타일의 글을 본 적 있다. 안타깝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보호소가 가진 자원에 비해 구조되는 개체 수는 훨씬 많다. 모든 개를 다 보호할 수가 없으니, 보호소에선 일정 기간을 두고 입양 가능성이 낮은 강아지를 안락사시킨다. 특히 나이가 많거나 몸이 아픈 개체, 덩치가 크거나 공격성이 있다면 확률은 더 높아진다. 보호소가 왜 그러냐 싶기도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우리 마음대로 흘러가던가. 






22살 무렵, '누가 됐든 뭐가 됐든 날 좀 도와주면 좋겠다. 갑갑한 삶에서 나를 꺼내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게 아주 작은 숨 구멍이라도 틔워준다면 그 대가로 무엇이든 하겠다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그러니까 내게 기부는, 십여 년 전의 내게 건네는 위로의 일종인 셈이다. 




매주 천안을 오가는 일이 꽤 부담스러웠다. 집에서 자차로 1시간 30분. 대중교통으론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니까. 편도로. 봉사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구실이 마땅치 않았는데, <캐나다 체크인>을 보고 유기견 임시보호가 떠올랐다. 그렇게 9개월된 믹스견, 진저가 우리 집에 온 것이다. 



보호소에서 태어나 9개월밖에 안 살았건만, 벌써 4번째 임보처로 떠도는 아이였다. 안타까운 사정에 귀여운 외모, 적당한 크기와 칭찬 일색인 임보후기. 임보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제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아직 입양 문의가 없는 상황. 3개월간 돌보기로 약속하고 데려왔는데, 그때까지 입양처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걱정이 앞선다. 



이제 3살 된 반려견 지구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이것저것 물고 뜯고 시도 때도 없이 놀아달라 투정을 부리고, 여기저기 아무 데나 쉬야를 하고 참을성도 약한. 다 잊고 지냈던 그 현실이 어린 강아지와 함께 다시 왔다. 1+1은 2가 아니다. 3.5에서 4정도 되는 강도다. 산책에 들이는 시간, 사료 및 간식에 쓰는 비용은 2배로 늘었고 신경 써야 할 일은 3배 이상 늘었다. 차라리 그냥 천안을 오갈걸, 그냥 그만 둘 걸. 아니 지금이라도 어떤 핑계를 대고 그만한다고 할까? 어쩌면 제대로 된 선의로 아이를 데려온 게 아니었다 보다. 





지난 3월 10일, 넷플릭스 <더 글로리> PART 2가 공개됐다. 1회차 관람 후 마지막 회만 다시 봤다. 악역에게 천벌이 내려진 장면이 꽤 속 시원했으니까. 넋 놓고 화면을 보던 중 송혜교의 대사가 다른 느낌으로 들려왔다. 내 두 눈동자는 급히 화면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봄에 죽자던 말은 
봄에 피자는 말이었다는걸요.

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크진 못했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어느 봄에는 
활짝 피어날게요.

더 글로리, 16화 중 문동은 대사 








이제야 봄이 왔다. 입춘이 지났으니 봄인 줄 알았는데. 왜 이리 춥고 갑갑한가 투정 부렸는데. 이제야 바람에 봄 내음이 스며있다. 내가 모르는 어느 순간에 잎을 틔운 산수유처럼, 어린 강아지는 우리 가족이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일상에 스며들었다. 때때로 부는 싸늘한 기운에 팔짱을 끼는 순간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 우리를 틔우게 한다. 활짝 핀 웃음을 따라, 쉬지 않고 움직이는 꼬리를 따라 우리의 입꼬리가 오르내린다. 


나는 정말이지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돈 많은 어른도 좋고, 예쁜 어른도 좋지만 그보단 훨씬 더 좋은 어른으로 나이 들고 싶다. 내 작은 영향력 아래에서도 웃고 기죽는 작은 강아지에게만큼은 정말이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이 아이만큼은 다음에 찾아올 봄에 더 활짝 피어날 수 있게. 





내게 왔을 때보다

더 행복한 강아지가 되어

평생을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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