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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nie Apr 06. 2022

인도네시아 Indonesia II

브로모, 카와이젠 / 플로레스 [라부안바조, 코모도, 린카] / 발리




브로모 화산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지진 중 80%가 일어나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해 있으며 전 세계 활화산과 휴화산의 75%가 몰려있는 나라이다. 여행 전에는 인도네시아 하면 발리만 떠올렸었는데, 인도네시아 여행을 하려고 알아보니 화산이 꽤 유명했다. 우리가 첫 번째로 찾은 화산은 브로모. 2011년에 마지막으로 분출한 활화산이었다. 수증기를 내뿜는 분화구 위로 해가 떠오르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라 할만했다. 정상에 올라 분화구 앞에 섰더니 수증기가 하얗게 피어오르는 데다가 금방이라도 분출할 것처럼 소리까지 쿠르릉 쿠르릉거려서는 좀 무서웠다. 게다가 분화구 둘레의 길은 펜스 하나 없이 딱 한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의 작은 길이어서 저어 멀리 분화구 가장자리에 서있는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어지러웠다. 

 우리가 분화구를 찾은 날은 종교적인 축제 다음날이어서 화산에 바치는 제물인 꽃들이 쓰레기가 되어 가득 쌓여있었다. 그 꽃 쓰레기들을 한 사람이 치우고 있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분화구 목구멍으로 미끄러지진 않을까 보는 내내 불안했지만 그 사람은 담담히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





카와이젠


 카와이젠은 유황가스를 분출하는 화산 군집으로 아직도 유황 채굴이 활발한 것으로 유명했다. 유황가스가 공기 중으로 분출되면 푸른빛을 뿜어내는데, 그 푸른빛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게 새벽시간이라 카와이젠 산행은 아주 이른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캄캄한 산을 제법 올랐더니 유황냄새가 조금씩 나기 시작한다. 가이드가 이제부턴 준비해온 방독마스크를 쓰라고 한다. 동이 트기 전, 캄캄한 가운데 거짓말처럼 파란 불빛이 보였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다. 유황가스가 만들어내는 파란 불빛을 카메라로 잡아보려 애썼으나 캄캄한 가운데 정확한 사진을 찍기란 쉽지가 않았다. 솟구치는 유황가스와 일렁이는 파란 불빛을 보고 있는데, 유황냄새가 난다. 방독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말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면 여기 이렇게 서있을 수가 없겠구나 싶어서 아찔했다.

 아직도 활발히 유황을 채굴하는 카와이젠. 샛노란 유황 덩어리들을 등에이고 가스 분출구에서 산 정상까지 오르내리는 인부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더위 때문인지 일부는 상의도 입지 않고 일을 했다. 브로모의 청소부를 봤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 올라왔다. 남의 삶의 현장에 나는 놀러 온 기분.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여튼 별로인 기분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한번 곰곰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은 장소가 없겠구나 싶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여행을 가는 곳은 그곳 사람들의 일터이자 일상인 공간 들일 테니까. 너무 미안해하지는 말자.

힘들어 보이면 말없이 다가와 이런저런 얘기를 건네던 우리 가이드.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스쿠버 다이빙 : 바닷속의 세계


 2011년 4월 30일 우리는 결혼했다. 결혼을 압둔 그해 1월, 설 연휴를 이용해 예물 면세점 쇼핑 겸 이집트 여행을 떠났다. 우리가 카이로에 도착한 그날은 바로 이집트 혁명 첫날. 역사책에 기록될만한 사건이 터진 날 이집트에 도착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카이로에 도착한 우리는 피라미드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중간쯤이나 갔을까. 다리는 트럭이 막아서고, 화염병이 날아다니며, 폭도들은 각목을 들고 다녔다. 이러다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만큼 위험해 보였다. 결국 우리는 철수를 결정했고, 택시기사에게 카이로 공항으로 돌아가 달라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비행기 편을 구할 수가 없었다. 찾아보니 홍해 근처의 휴양 도시들에는 격렬한 시위가 없을 것 같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결국 우리는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후루가다로 갔고, 거기서 전혀 계획에 없던 스쿠버 자격증을 땄다. 

 이런 걸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거다. 홍해 바다는 정말 경이로웠다. 스쿠버다이빙을 취미로 하고 있는 친구에게 말했더니, 첫 바다가 홍해면 어떡하냔다. 앞으로 만날 바다들에 감흥이 없어질 거라며. 음, 홍해는 그 정도의 평판을 갖고 있구나 싶었다.

 세계일주를 하면서 꽤 여러 나라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했다. 이집트 다합에서 한달살이를 하며 다시 한번 홍해에 몸을 담그기도 했고... 다 2011년 이집트에서 자격증을 따 놓은 덕분이었다. 여행을 끝낸 지금 돌이켜보면 다이빙을 하지 않았더라면 50%의 재미는 놓쳤을 거란 생각이 든다. 바닷속은 또 다른 세상이니까.

 그러니까 왜 이런 얘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했느냐 하면, 여행 중 가장 예뻤던 다이빙 포인트가 바로 플로레스 이기 때문이다. 수십만 마리의 빨간 안티아스 떼가 반짝이던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세계일주를 꿈꾸는 그대라면? 다이빙 자격증을 먼저 따라!





여행사 놈들

 

 코모도, 린카 그리고 주변 섬을 돌아다니며 스노클링도 하고 트레킹도하는 2박 3일 보트 투어. 배에서 삼시세끼가 제공되고 잠도 자는 투어이다. 출발하는 날, 같이 가는 일행들도 성격이 좋아 보이고, 날씨도 좋고, 풍경도 좋고,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첫 스노클링을 마친 그때, 샤워실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역시, 또 당했다. 2박 3일 보트 투어. 샤워시설은 없다. 그렇게 묻고 또 물었건만, 이 뻔뻔한 여행사 놈들. 이럴 땐 답이 없다 체념하는 수밖에. 그날 저녁 소금에 절인 머리를 틀어 묵고 몸만 대충 닦은 뒤 옷을 갈아입었다. 그랬더니 순진한 이탈리아 커플이 물어본다. ‘샤워했어?’라고. ‘아니 얘들아 이 배에 샤워시설은 없어.’라고 했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얘들아. 나랑 똑같은 얘기를 한다. 분명히 여행사에 몇 번이나 체크했다고. 나도 그랬단다 얘들아. 여튼 다들 찝찝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여긴 인도네시아 바다 한가운데니까. 하지만 일몰은 장관이고 해가 지니까 별이 쏟아진다. 예쁘긴 더럽게 예쁘다. 그래 내가 언제 소금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얹고 자보겠어. 여행을 하다 보면 어쩔 수없이 좀 더러운 것에는 익숙해진다. 이게 좋은 거라고 해야 할지 나쁜 거라고 해야 할지. 뭐 2박 3일 정도는 소금물에 절여져야 장기여행 좀 했다고 할 수 있지 암.

우리가 2박 3일 투어를 했던 보트, 양옆으로 난간이 없어서 잘 때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며 잤다.





코모도왕도마뱀


 세계 7대 불가사의, 신기한 동물 백과사전, 뭐 이런데 집착하는 우리 서방님이 플로레스에 온 이유는 바로 '코모도'라는 도마뱀 때문이다. 코모도 도마뱀은 바로 이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제도에만 살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도마뱀이다. 실제로 본 코모도는 도마뱀이라기보다 작은 고질라 같은 괴수의 느낌이었다. 레인저가 말하기를 자기가 낳은 새끼도 먹어버리는 카니발들이란다. 그래서 새끼들은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우선 나무 위로 올라가 8개월 정도를 생활한다고 한다. 이렇게 살벌한 설명을 듣고 있는데 무슨 수가 틀렸는지 두 마리의 코모도가 싸우기 시작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심장이 떨리던지... 여보- 코모도는 한번 보는 걸로 족한 것 같으다.





유충이행증?!


 인도네시아 여행의 마지막 도시는 우붓이었다. 이 고즈넉한 동네에서 조용히 며칠 머물면서 쉴 계획이었다. 그런데 플로레스에 가기 전부터 허벅지 뒤쪽의 가려움을 호소하던 조서방이 점점 더 증상이 심각해진다며 나에게 좀 봐달라고 한다. 베드 버그를 의심해 보았으나 나에게 옮지 않는 걸로 봐서 그런 종류의 벌레 문제는 아니겠거니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조의 허벅지 뒤쪽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모기 물린 자국 같은 게 열댓 개 있고 그 주변으로 빨갛게 벌레가 다니는 길처럼 핏줄 같은 자국이 생겨있는 것이다. 이건 사태가 조금 심각하다 싶어서 바로 병원에 가기로 했다. 우리에겐 여행자 보험이 있으니까. 우붓의 작은 병원, 의사는 무심히 한번 살펴보더니 '응, 옴 진드기야. 연고 처방해줄게'라고 한다. 아니 나는 안 옮았는데 이상하다, 생각은 했지만 뭐 의사가 그렇다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연고 처방을 받아 나왔다. 그렇게 며칠을 연고를 발랐건만 우붓을 떠나 태국에 가서도 조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우리가 가입한 여행자보험의 효력이 없는 나라가 딱 두 군데 있었는데, 그게 바로 태국과 미국이었다. 그래서인지 조는 태국에서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결국 그냥 옴 진드기 연고를 처방받는 걸로 타협을 보고 이 약국 저 약국 돌아다니는데, 약사가 카오산로드에 병원 약국이 있다며 거길 가보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약사분을 만난 게 행운이었다. 카오산로드 병원 약국은 병원에 딸린 약국이라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지만 약을 주는 곳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진료를 보자 싶었다. 진료실에는 한껏 졸린 눈을 한 청년 의사가 앉아있었다. 환부를 보여주었더니, 단번에 병명을 말한다. '이건 유충이행증이예요.'라며 구글에서 찾아서 병의 증상을 보여주는데, 조의 상태보다 훨씬 심각하긴 했지만 그게 맞았다. 졸린 눈을 반짝 뜬 의사는 옆방의 동료 의사까지 불러다가 확인을 받은 다음 진단을 내렸다.

'선생님, 그 유충이행증이라는게 뭔가요?'

'네, 개나 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사람에게 종종 옮는 기생충인데, 사람의 몸에서는 성체로 자라지 못하고 유충인 상태로 몸속을 돌아다니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길이 보이는 거죠'

으윽. 그런 거였구나.

'치료방법은요?'

'약만 3일 치 잘 드시면 됩니다'

세상에... 카오산로드의 전 세계 여행자들을 보는 의사는 다르구먼. 한 번에 진단을 내리다니. 아니 그 우붓의 의사 양반은 대체 뭘 한 거야! 우리 바깥 냥반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3일 치 약을 먹고, 그 기생충들은 싹 죽어버렸다. 가만히 돌아보니 조가 이 기생충들에게 옮은 건 꾸따 비치에서 일몰에 맥주를 즐기던 그날이 아니었나 싶다. 개도 많았고, 고양이도 많았고, 그다음 날부터 가려웠으니까.

 이렇게 조서방의 유충이행증과 나의 화상을 끝으로 여행에서의 질병, 상해사건은 끝이 났다. 초반에 액땜을 잘한 탓인지. 그 후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의 몸에는 큰 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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