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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nie Apr 29. 2022

미얀마 Myanmar II

껄러 / 인레




껄러트레킹


 여행 계획과 스케줄링은 꼼꼼한 조서방 담당. 계획을 짜고 나에게 브리핑을 하는 식으로 여행을 다녔다. 미얀마 브리핑 중에 껄러에서 1박 2일 혹은 2박 3일 트레킹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흠. 트레킹, 등산 등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껄러에서 인레로 가는 트레킹이 유명하다니 해야 하나 보다 생각했다. 한 가지 허점이라면 세계여행 중 트레킹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 껄러가 첫 트레킹이었다. 팔다리 튼튼한데 못할게 뭐 있으랴 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1박 2일 트레킹의 시작은 좋았다. 미얀마 시골의 초록 초록한 풍경이 꽤 멋졌다. 우기의 막바지, 날은 더웠지만 부슬비가 뿌려주어 땀을 식힐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난관은 진흙탕 길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소똥과 진흙이 섞였음이 분명한 진득진득한 진흙탕길을 걸어야 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느낌도, 신발로 조금씩 흙탕물이 들어오는 느낌도 너무 별로였다. 결정적으로 흙탕물 개울을 건너야 했을 땐,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발가락은 아파오고 어깨에 배낭은 무거워져 가기 시작했다. 풍경은 너무 좋았으나,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고난의 하루가 지나고 어둑해져서야 하룻밤 묵어갈 집에 도착했다. 정말 미얀마 시골 한가운데, 누군가 사는 집을 하루 비워주는 느낌이었다. 가이드가 구석구석 안내를 한다. 여기가 부엌, 여기가 화장실, 여기는 샤워실, 하는데 샤워실에서는 조금 놀랐다. 큰 물통에 물을 받아놓고 한 사람이 들어갈법한 간이 천막이 설치되어있었다. 그러니까 물통에 받아진 물을 바가지로 퍼 샤워를 하면 되는 것. 사실 하루정도 샤워를 참아도 되지만 하루종이 땀을 너무 흘려서 좀 씻어야겠다 싶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샤워실로 향했다. 야외라 모기에 물릴까 봐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씻으면 개운하겠지 하면서 바가지로 물을 한 바가지 퍼려는데,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벌레들이 보였다. 수면에 까만 벌레들이 제법 많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벌레 물로 샤워를 할 순 없었다. 다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숙소로 돌아와 조서방에게 얘기했더니 막 웃는다. 일행인 독일 친구들에게도 얘기했더니, 미리 알려줘서 고맙다고 한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건 이 작은 마을에도 슈퍼가 하나 있어서 미얀마 맥주를 살 수가 있었다. 그렇게 맥주 한잔에 발가락 통증을 씻어내며 첫째 날을 마무리했다. 내일은 또 얼마나 걸으려나.





껄러 트레킹 둘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마을을 산책했다. 정말 작은 마을이었다. 다 합쳐도 스무 가구가 넘을 것 같지가 않았다. 몇 안 되는 주민들을 마주치면 너무 반가웠다. 아이들은 너무 귀엽고, 주민들은 여유로웠다. 마을 중앙에는 아주 큰 사원이 보였는데, 가이드 말로는 100년이 넘은 사원이란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도 사원은 100년이 넘었다니, 역시 불심이 깊은 나라다, 미얀마는.

 우리 가이드는 20대 초반의, 아직도 소년 같은 느낌이 남아있는 앳되고 내성적인 청년이었다. 유창한 영어로 K-pop을 좋아한다며 힘들어하는 내 옆에서 이 얘기 저 얘기하며 트레킹 메이트가 되어주었다. 둘째 날도 역시나 출발은 아주 산뜻했다. 파릇파릇 끝이 보이지 않는 양배추 밭, 되새김질하는 소, 밭일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쫓아다니는 아이들. 평화롭다는 단어의 시각화 그 자체였다. 정오가 넘어갈 때 즈음엔 드디어 저 멀리 인레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의 트레킹은 할만하겠구나 생각하며 또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까워 보였던 인레호수는 제법 멀었고, 내 발가락은 다시 불타는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더 이상은 못 걷겠다는 생각을 한지 한 시간이 지났을까. 가이드가 저기 보이는 식당이 오늘의 종착지라는 걸 알려준다. 이제 살았다 싶었던 그 순간, 길가에 뱀과 눈이 마주쳤다. 더 이상 걷기도 힘들다 생각했는데, 내 몸은 뛰고 있었다.

 그렇게 강렬하게 힘들었던 껄러 트레킹이 끝났다. 낭쉐로 가기 위한 보트를 타고 시원한 호수 바람을 맞으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이 고통스러운걸 사람들은 왜 좋아하는 걸까. 말 그대로 고행 그 자체를 즐기는 걸까?! 여행사진을 정리하는 지금, 껄러 사진을 보니 정말 멋진 동네였구나 싶다.





인레 사람들


 인레 사람들은 호수에 살다 보니 수상가옥이나 수경재배, 보트를 이동수단으로 하는 것에 익숙했다. 어느 날은 호숫가 식당에 미얀마 맥주를 하나 시켜놓고 앉아있었더니 사람들의 일상이 보였다. 빨래하는 사람, 일하러 가는 사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학교를 마친 학생들. 아주 조그만 녀석들도 능숙하게 보트를 몰았다. 남자아이들은 교복도 론지였다. 하얀 상의에 초록색 론지를 입은 아이들이 둑길을 따라 한 줄로 걸어가며 장난을 치는 게 너무 예뻐 보였다. 그렇게 사람 구경에 푹 빠져있는데 옆이 시끌시끌하다. 보니까 식당 주인네 아들 들인듯한 삼 형제가 장난을 치고 있다. 어찌나 개구진지, 엄마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듣질 않는다. 까르르 까르르 노는 삼 형제가 너무 사랑스럽다. 호수가 주는 풍족함 때문일까. 인레 사람들 얼굴에는 그늘이 없다.





낚시꾼


 인레의 낚시꾼들은 아직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노를 젓고 고기를 잡았다. 큼직한 통발을 이고 보트 위에서 한 발로 균형을 잡고 있는 낚시꾼들을 보고 있자면 고기를 잡는 행위도 이렇게 예쁠 수가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매일매일 낚시를 한다는 건 분명 힘든 일일 거다. 낚시꾼들은 포즈를 취해주고 관광객들에게 팁을 받았다. 나는 어쩐지 그게 다행스러웠다. 고기를 많이 못 잡은 날은 관광객들을 만나 또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 테니까.





와이너리와 일몰


 트립어드바이저로 인레에서 할거리, 볼거리를 검색했더니 와이너리를 방문하란다. 미얀마에 시골 호수마을에 와이너리가 있다니. 우선은 신기한 마음에 한번 방문해 보기로 했다. 걷기에는 조금 먼 거리라 자전거를 타고 와이너리로 향했다. 와이너리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드넓은 포도밭과 저 멀리 보이는 인레호수까지... 와인은 맛이 없었지만 풍경이 맛있었다. 그렇게 와인멍을 즐기고 있는데, 멀리 인레 호수에 비구름이 보였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저어 멀리서부터 비구름이 비를 뿌리며 우리에게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보이는 대로 비구름은 정말 와이너리에 도착했고, 꽤 많은 양의 소나기를 짧은 시간에 뿌리고 지나가 버렸다.

 그 많던 사람들이 싹 사라지고 없었다. 비구름이 휩쓸고 지나간 와이너리, 조서방과 나는 전세라도 낸 듯 둘이 앉아 여유롭게 다시 와인을 홀짝였다. 구름이 지나간 하늘, 이제는 해가 지고 있었다. 비가 씻어낸 하늘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인레의 일몰은 원래 그런 건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노을이었다. 와인 한 병을 비우고, 해가 다 넘어가서 어둑해질 때까지 와이너리에 앉아 있던 우리는 기분 좋은 알딸딸함과 함께 음주 라이딩으로 낭쉐 마을까지 돌아왔다. 인레는 와이너리지!





인레 보트 투어


 드넓은 인레호수를 돌아보려면 보트 투어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호숫가 혹은 인레호수 수상 마을들을 둘러보려면 보트를 타야 하니까. 보트 투어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뱃놀이를 하는 기분이었달까. 가이드가 내려주는 스팟에 내려서 여긴 어떤 곳인가 둘러보기만 하면 됐다. 투어는 아주 알찼다. 인레 호수에서 가장 큰 절에도 가보고, 롱넥 카렌족들이 모여사는 수상마을에도 들렀다. 연꽃 줄기에서 나오는 진액으로 천을 만드는 패브릭 공장에도 들르고 [조서방은 스카프를 하나 샀다] 담배를 만드는 공방에 들러 담배 말기 체험도 했다. 마지막은 금빛 파고다가 빼곡한 인데인. 역시 미얀마 사람들의 불심은 대단하다.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 첨탑도 사람들의 자발적인 금기증으로 이뤄진 거라던데, 인데인의 빼곡한 금빛 파고다들도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다시 낭쉐 마을로 돌아오는 길, 호수 한가운데 정박한 채로 일몰을 보는 것으로 투어는 끝이 났다. 관광객들을 위한 코스를 돌아다녔지만 그 와중에도 꾸며지지 않은 인레의 진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분명 있었다. 하늘이 핑크빛으로 더 짙어지는 풍경을 즐기며 낭쉐에 도착했다. 순박한 우리 가이드, 팁을 요구하지 않는 가이드는 오랜만이다. 요구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기분 좋게 팁을 줘본 게 얼마만인지. 가이드도 우리도 활짝 웃으며 헤어졌다. 보트 투어, 참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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