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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nie May 27. 2022

인도 India III

뉴델리 / 자이푸르 / 푸쉬카르





뉴델리로 가는 길

 

 인도에서 가장 좋은 도시가 오르차였다면 가장 힘들었던 도시는 뉴델리였다. 어디든 그렇겠지만 대도시는 시끄럽고 복잡하고 쓰레기가 넘쳐난다. 그런 대도시들 중에서도 뉴델리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했다. 시끄러움과 복잡함과 더러움의 정도가 남달랐던 것.

 아그라에서 뉴델리로 가는 날. 특급열차를 한번 예약해 봤다. 인도 특급열차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는데, 아주 열악했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직원들이 밥을 한 끼 서빙해주는 정도?! 특급열차 별거 없구먼 하면서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충격적인 장면들이 시작되었다.

 철로를 따라 판자촌이 형성되어있었던 것. 판자촌 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는데, 사람들의 행동이 놀라웠다. 철로에서 양치를 하고, 철로를 따라 볼일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기차에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 게 분명 보였을 텐데도 남자든 여자든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아무 스스럼없이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보았다. 이건 정말 충격적이라는 말 말고는 다른 말로 표현이 안 되는 장면이었다.

 가난하면 이렇게 기본적인 존엄성도 침해당해도 되는 건가. 인도의 부자들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라는데, 자국 빈곤퇴치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뉴델리로 들어가는 길부터 나는 썩 유쾌하지가 않았다.






여행자들의 거리, 빠하르간지


 뉴델리는 첫 숙소를 찾는 것부터가 강렬했다. 에어비앤비로 예약을 하고 갔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분명히 그 주소지가 맞는데도 우리가 예약한 숙소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에어비앤비 실내 사진과 호스트 사진을 여기저기 보여주며 숙소를 찾고 있는데, 다행히 한 남자가 호스트 얼굴을 알아보면서, 저 호텔이란다. 남자를 만나기 전, 우리는 이미 그 호텔에 들어가 주인에게 여기가 아니냐고 물었고 분명 아니라고 했다. 시간은 흐르고, 덥고, 배낭은 무거워 오고 정말 짜증이 났다. 결국 그 호텔에 다시 찾아갔다.


'너네 호텔 맞다는데, 잘 좀 봐봐' 하고 사진을 다시 보여줬다. 한참을 이리저리 보더니 자기네 호텔이 맞단다. 정말 허무하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호텔 이름을 적어주지. 더 화가 나는 건 주인장도 못 알아볼 정도의 사기 사진을 에어비앤비에 올려두었다는 것. 분명 새로 지은 건물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는 20년은 더 되어 보이는 건물이었다. 아무래도 지어진 직후의 사진을 갖다 썼나 보다. 화가 난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오늘 안에 숙소를 찾은 게 어디냐 하며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그런데, 물에 이물질이 엄청나게 많다! 인도에선 수돗물로 양치도 하면 안 된다더니, 이 물가 지고는 몸을 씻기도 어려워 보였다. 궁여지책으로 물을 좀 받아놓고, 이물질이 가라앉으면 그 윗물을 썼다. 빗물 쓰기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지. 깨끗한 물 펑펑 틀고 샤워하는 게 보통 행복이 아니었구나 싶다.


 인도에선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 기차는 당연히 제시간에 오는 게 아니고, 릭샤의 진짜 가격은 인도인들도 모른다. 물은 더럽고, 따뜻한 물은 사치다. 자동차와 오토바이는 날카로운 경적을 계속 울려대고 대기오염 수준은 심각하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불편의 집합체라고나 할까. 인도 여행을 한 사람이라면 웬만한 건 이겨낼 수 있을 거다.





라씨와 장염


 빠하르간지에 유명한 라씨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위생상태가 심히 걱정되었지만 현지인들도 외국인 관광객들도 잘 마시고 있길래 우리도 한잔씩 마셔봤다. 음, 이게 진짜 인도의 라씨인가. 대단히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특별할 것 없는 라씨를 마신 대가는 혹독했다. 장염이 시작된 것.


 인도의 설사병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바라나시에서 한번 앓았기 때문에 '설마 또 걸리겠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도의 장염은 한번 앓았다고 면역이 생기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며칠 됐다고 또 장염에 걸리다니, 둘이서 화장실을 들낙날락 거리는데, 진짜 몸속에 모든 걸 비워낼 때까지 증상이 멈추질 않았다.


  인도 장염에는 인도 약을 써야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약은 소용이 없었다. 여행자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노란 알약이었다. 하지만 이 알약이 얼마나 독한고 하니, 너무 많이 먹으면 반대로 변비에 걸리고 만다는 것. 극단적인게 약도 인도스럽다. 바라나시에서 장염을 앓았을 때 마음씨 좋은 여행객분들이 다들 이 노란 알약을 주셔서 다행히 증상이 시작되자마자 약을 바로 먹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델리의 장염은 바라나시와는 비교도 안되게 심했다. 복통을 동반해서 배는 또 어찌나 아픈지... 결국 자이푸르로 가는 오전 기차를 놓치고야 말았다. 이대로 강행군을 했다간 언제 괄약근이 풀려버릴지 모르는 상황. 기차표는 아깝지만 자이푸르행은 하루 미루기로 했다. 

라씨는 그냥 한국에서 먹는 걸로-


 나는 인도에 와서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인도가 좋다는 사람들은 대체 뭐였을까. 인도는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느니 하는 소리들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인도에서 만난 여행자들에게 인도가 좋냐고 물었더니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며 두 번 올 곳은 아닌 것 같다는 답을 많이들 했다. 내 심정도 그렇고...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인도를 좋아했던가 하고 생각해보니 20대 초반, 해외여행이 처음이라 뭐든 신기하고 좋은 나이의 사람들이 인도를 좋아했던 것 같다. 공인된 학설은 아니고, 내 맘대로 내린 결론이다. 그러니까 나도 두 번 가고 싶은 나라는 아니었다는 거. 그런데 사진은 왜 하나같이 강렬한 건지. 사진작가들의 심정은 조금 이해가 간다.






꾸뜹 미나르와 오파츠


 꾸뜹 미나르는 12세기 승전기념탑, 웅장한 꾸뜹 미나르와 그 유적군은 델리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꼭 한번 들러보는 장소이다. 꾸뜹 미나르도 멋졌지만 나는 철기둥이 더 신기했다. 녹이 슬지 않는 철기둥으로 순도 99.9%의 철이라고 한다. 현대 제철기술로도 만들기 힘든걸, 그 옛날에 만들어 낸 것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녹이 있긴 했지만 세월을 감안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저런 물건을 OOPArts [Out of Place Artifacts]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그 시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공적인 가공물을 뜻하는 오컬트 학계의 전문용어. 오파츠에는 흥미로운 게 많았다. 19세기에 발명된 전기도금 기술이 쓰인 이집트의 장식품이라든지 BC200경 만들어진 걸로 추정되는 이라크의 배터리 등등. 그리고 페루의 나즈카 라인도 오파츠의 하나다.

 세계 7대 불가사의, 미스터리라면 혹 하는 우리 둘은 오파츠 기둥 앞을 서성였다. 세상 밋밋한 유적지 투어가 될뻔한 꾸뜹 미나르 유적관람이, 순식간에 외계인과 시간여행을 얘기하는 오컬트 장르로 변해버렸다. 역시, 미스터리가 제일 재미있다.






핑크시티, 자이푸르


 자이푸르에 온 이유는 하나 바로 이 '바람의 궁전' 하와 마할을 보기 위해서였다. 하와 마할은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왕족 여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창문이 많은 궁전이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게 고안된 설계라는데, 그것 때문인지 외관까지 화려해져서는 아주 예쁜 궁전이 되었다. 사진을 보고 하와 마할은 꼭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기대를 해서인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서 조금 실망했다. 역시 실제로 봐야만 느껴지는 뭔가가 있다.

  

 자이푸르는 핑크시티라는 별명이 참 어울리는 도시였다. 하와 마할도 작고 예쁘고, 자이푸르 성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문도 예뻤다. 심지어는 우리가 반한 루프탑 레스토랑도 예뻤다. 인도에서 가장 큰 극장이라는 라즈 만디르도 핑크 핑크 했고... 모든 게 반짝반짝 예쁜 느낌이랄까. 끊임없이 영업을 해대는 릭샤꾼들만 아니라면 꽤 괜찮은 도시였다.






인물사진


 사람을 찍고 싶은 순간이 참 많았는데, 은근 소심한 성격 때문에 못 찍고 돌아서는 경우가 참 많았다. 그런데 인도는 정말 찍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자이푸르 성의 문지기 할아버지는 의상도 인상도 너무 찍고 싶은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했더니 흔쾌히 OK 하신다. 이제껏 난 뭘 한 거지. 이렇게 물어봤으면 되었을 것을... 그런데 나랑 같이 찍는 줄 아셨는지, 내가 할아버지를 찍으니 당황하신다. 눈을 어디 둘지 몰라 당황하시는 모습도 귀엽다. 그렇게 이 사진은 인도 여행사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가 되었다.






암베르 포트


 자이푸르 외곽에 있는 암베르 포트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웬 청년이 다가오더니 버스비를 지불하란다. 워낙 당한 게 많은지라 운전기사 아저씨를 쳐다봤더니 그 녀석에게 버스비를 내도 괜찮다는 눈빛이었다. 아저씨를 믿고 인당 20루피씩 버스비를 지불했다.

 웬일로 별 이유 없이 암베르 포트에 잘 도착했다. 버스 타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그런데 조서방의 몸상태가 심상치 않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웬만하면 어디 돌아다니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인데, 암베르 포트 입구에서 도저히 안 되겠다며 숙소로 돌아가잔다. 조서방이 컨디션 난조로 관광을 포기한 건 2년 세계일주 동안 이때가 유일했다. 그러니까 진짜 심각하단 얘기. 바로 수긍하고 암베르 포트를 돌아 나왔다.

 다시 자이푸르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차장 청년이 말한다. 버스비 10루피를 내라고. 그러니까 원래 버스비가 10루피란 말이지. 푼돈도 뜯어가는 너네들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조서방도 아픈 와중에 피식 웃는다. 대단한 놈들.

 아니 알고 보면 버스비 5루피 아니야?! 






라즈 만디르


 라즈 만디르는 영화관이다. 이름도 거창한 '왕의 궁전'. 안 그래도 인도에 왔으니 발리우드 영화 한 편 정도는 봐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있었는데, 라즈 만디르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에 딱 좋은 장소 같았다. 일단 외관부터 영화관을 넘어선 느낌. 오페라 하우스라고 해도 믿을 규모였다. 이 정도면 인도에서 가장 큰 영화관이 아닐까 싶은 크기. 그렇게 그날 저녁 우리는 발리우드 영화 관람에 나섰다. 과연 라즈 만디르는 대기실도 으리으리했다. 엄청 핑크 핑크 한 인테리어였는데, 조서방이 자꾸 뭔가 생각나는 게 있단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무릎을 탁 친다.


'에뛰드 하우스'


얼마나 웃었는지, 정말 한동안 한국에 엄청 퍼졌었던 그 에뛰드 하우스의 핑크색 인테리어였다. 조서방 눈썰미 있네. 그렇게 에뛰드하우스에서의 영화 관람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본 영화는 야구선수의 일생을 다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였는데, 영어 자막이 없다 보니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액션이나 러브스토리라면 대충 눈치로라도 알아볼 텐데, 이건 대사를 느낄 수가 없으니 너무 재미가 없다. 주인공은 우리나라에 세 얼간이로 유명한 바로 그 사람. 배우 얼굴은 낯익어서 좋지만, 못 알아들으니 이해도에 한계가 있었다.

 들리는 거라곤 주인공의 이름 '도니, 도오니~'

이건 아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서양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르르 나가신다. 이때다 싶어서 우리도 따라 나왔다. 발리우드 영화 체험은 이쯤 하는 걸로.






나하가르 성


 자이푸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나하가르성. 구불구불한 산길을 제법 올라가야지만 나하가르성에 도착할 수가 있다. 걷기 싫어하는 나는 굳이 저길 올라야 하나 싶지만, 호기심 천국 조서방은 어디든 가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내가 맞춰주는 편이다. [이렇게 말하면 조서방이 코웃음 치겠지만...] 그리고 이런 경우, 도착하면 내가 더 좋아하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 부부의 아주 규칙적인 루틴.


 해가 낮게 내려앉은 나하가르성은 제법 운치가 있었다. 문 닫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나하가르 성을 돌아다니는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시끄러운 인도 고등학생들 한 무리와 우리 둘 정도. 한적한 성의 이 방, 저 방을 구경하고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이푸르 시내를 보면서 땀을 식혔다.


 나하가르성은 특이하게도 루프탑이 개방되어있었다. 옥상에는 독특한 장식들이 가득했다. 노랗고 낡은 벽과 일몰 직전의 오렌지 빛 볕이 그림 같았다. 그 와중에 벽색깔과 같은 유니폼을 입은 가드들이 보였다. 세상 심심하고 무력해 보이는 가드들. 평생 저 자리에 있어왔고, 앞으로도 저 자리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 같은 가드들 때문에 나하가르 성 옥상은 엄청 슬퍼 보였다.





푸쉬카르의 문라이즈 킹덤


 푸쉬카르에 오기 전부터 우리가 찜해둔 숙소는 문라이트 호텔, 내가 좋아하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문라이즈 킹덤이 떠올라서 괜히 기대가 되는 숙소였다. 여행 성수기가 아니다 보니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아도 웬만하면 방이 다 있었는데, 문라이트 호텔은 풀북이었다. 우리가 난감해 하자, 사장님이 '루프탑에 작은 방이 하나 비어있는데, 거기에 매트라도 하나 깔아줄까?' 하신다.

 우선 방을 한번 봤는데, 아주 작지만 깨끗하다. 게다가 루프탑에 있어서 전망이 좋다. 가격도 저렴하게 준다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방에 입주를 끝내자 아저씨가 아주 자랑스럽게 얘기하신다. 우리 집 루프탑에서 푸쉬카르의 세븐티파이브 퍼센트가 보인다며 아주 뿌듯한 표정을 지으신다. 어찌나 귀여우시던지. 문라이트 호텔 주인장 아저씨가 무섭다는 평들이 많던데, 주인아저씨가 바뀌셨나-

 그렇게 우리는 푸쉬카르의 75%가 내려다보이는 문라이즈 킹덤에 입성했다.






원 짜파티


 푸쉬카르의 일몰은 이 자이푸르 가트에서 보는 게 정석이라고 해서 해 질 녘 자이푸르 가트로 향했다. 외국인 관광객과 동네 아이들이 다 같이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떨어지는 해를 보면서, 푸쉬카르는 좀 좋은데?! 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 꼬마 녀석 하나가 레이저 빔을 우리 얼굴에 막 쏘면서 해맑게 웃는다. 그러면서 '원 짜파티'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해맑게 구걸하는 녀석은 또 처음 본다. 참신할세. 귀여운 녀석이다.





애착 신발

 

 카페에 앉아 차를 한잔 하고 있었다. 한 청년이 조서방에게 다가오더니 '썰, 제가 신발을 고쳐드려도 될까요?' 하면서 조서방의 찢어진 고무 슬리퍼를 가리킨다. 똑똑한 녀석이다.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다니. 조서방의 고무 슬리퍼는 방콕 짜뚜짝 주말시장에서 산 가짜 버켄스탁 고무 슬리퍼. 찢어져서 버려야 하나 하면서도 조서방이 너무 편하다며 애착하는 신발이었다. 싸게 산거라 고친 게 마음에 안 들면 이참에 버리자는 마음으로 청년에게 수선을 맡겼다. 그 자리에서 척척 바느질을 하는 청년. 제법 잘한다!

 까만 고무에 까만 실로 수선을 해놨더니 신발이 멀끔해졌다. 6개월은 더 신을 수 있겠네 그려. 영업 수완 좋은 신발 수리 청년 고마워- 그렇게 조서방은 애착 신발과 함께 한동안 더 여행할 수 있었다.






쇼핑의 도시, 푸쉬카르


 바라나시 보나카페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쇼핑은 푸쉬카르에서 하는 거라고. 오래간만에 본업인 쇼핑 요정 본능을 발휘할 수 있는 도시에 오니 힘이 났다. 배낭 무게를 늘리지 않는 품목으로다가, 쇼핑을 시작했다. 첫 번째 타겟은 은반지. 반지 하나에 한국돈 3천 원꼴이다. 마음 같아선 열댓 개도 살 수 있겠지만 조신하게 2개만 샀다. 왜냐하면 또 살게 있을 수 있으니까.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너무 예쁜 스카프 가게를 찾은 것!


 스탬프를 찍어 프린트를 만드는 인도 전통 방식으로 만든 스카프들은 하나같이 너무 예뻤다. 선물도 할 겸 스카프를 서너 개 정도 샀다. 여러 개 샀더니 인심 좋은 사장님이 가격도 잘 깎아주신다. 알고 보니 오늘 첫 손님이 나라고 한다. 이렇게 예쁜 스카프를 아무도 사지 않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여기 스카프 너무 예쁘다고, 꼭 번창하실 거라고 했더니 너무 고맙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가게 앞에 서서 우리가 멀어져 갈 때까지 인사를 한다. 예쁜 스카프를 산 나도 좋고, 매출 0을 벗어난 사장님도 좋고, 완벽한 쇼핑이었다.


 푸쉬카르의 사람 좋은 사장님께 산 스카프는 이제 우리 집 커튼이 되어있다. 지금도 그 스카프를 보면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활짝 웃던 푸쉬카르 사장님이 생각난다. 






이 호텔에 묵었더라면...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내 사랑 트립어드바이저를 돌려봤더니, 한눈에 봐도 인테리어가 너무 예쁜 레스토랑이 딱 뜬다. 그래 오늘 저녁은 너로 정했다! 레스토랑은 호텔 루프탑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벨리 [왕이나 귀족의 궁전이나 집]를 개조한 호텔이라더니 남다르다. 호텔 방 가격을 물었더니 생각보다 너무 싸다! 진즉 알았으면 여기 묵는 건데, 너무 아쉬웠다. 그래, 그래도 난 푸쉬카르의 세븐티파이브 퍼센트가 보이는 문라이트 호텔 루프탑에 묵고 있으니까, 진정하자. 그렇게 레스토랑에 앉아 메뉴를 고르고 있는데, 옆 테이블 인도 커플이 말을 건다.


'너네 카메라 엄청 좋아 보이는데, 우리 사진 한 장만 찍어줄 수 있어? 그리고 이메일로 좀 보내줘'


 이 당당함은 뭐지?! 해맑게 웃는 얼굴에 침 뱉기는 뭐해서 대충 한 장 찍어줬더니,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보는 눈들은 있어가지고. 다시 예쁘게 찍어서 보여주니 그제야 만족한다. 엄청 고맙다고는 하는데, 뭔가 부림 당한 기분?! 고단수다 이 녀석들. 사진을 보며 희희낙락하는 커플을 보고 있자니 이 호텔에 대한 미련이 싹 사라졌다. 그래 우리 문라이즈 킹덤이 최고다.






한국어 메뉴


 푸쉬카르에는 유명한 팔라펠 노점이 몇 개 있었는데, 우리의 첫 번째 픽은 파완 레스토랑이었다. 한국어 메뉴판에 한국인은 짜이 공짜라고 쓰여있었는데, 정말 짜이 한잔을 공짜로 줬다. 어떻게 된 히스토리일까 궁금했지만 이야기가 길어질까 봐 묻지 않았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있는데, 파완 레스토랑 주인장 아저씨가 물으신다.

 '너네 나 좀 도와줄래? 한국어 메뉴판을 좀 수정해야 하는데, 워드로 작성해줄 수 있겠니? 지금 먹는 거 다 공짜로 줄게'

 메뉴판 워드쯤이야. 우리는 흔쾌히 수락했고, 파완 레스토랑 안쪽의 낡은 컴퓨터를 켰다. 문제는 한국로 언어를 바꾸는 것. 그 뒤로는 일사천리로 메뉴판을 타이핑했다. 별것 아니지만 작은 도움이 된 것 같아서 뿌듯했다. 이때가 2016년이었는데, 그 뒤로 메뉴판은 또 업데이트가 되었을까? 푸쉬카르의 롤링 난 골목은 여전할까?


두 번 다시 인도에 오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지만 푸쉬카르라면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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