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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nie Jun 22. 2022

인도 India IV

조드푸르 / 자이살메르 / 우다이푸르




셰프님 어디가?!


 조드푸르에 도착하던 날.

 릭샤가 갑자기 선다. 이제부터는 릭샤가 못 들어가는 골목이니 걸어가란다. 맞는 말인데도 사기당한 기분. 인도에 그런 골목이 많긴 하니까. 좁은 골목을 돌아 돌아 숙소로 가는 길. 동네 꼬마들이 노니는 게 보인다. 작고 정겨운 동네긴 하다.

 숙소에 들어섰는데, 뭔가 어수선하다. 알고 보니 게스트하우스의 셰프가 네팔리인데, 디왈리를 맞아 고향 네팔로 돌아가는 바로 그날이었다. 주인 가족과 인사를 나누던 셰프는 우리를 보더니 유창한 한국어로 '여기 잘 왔어. 밥 맛있으니까 많이 사 먹어' 한다.

 셰프님 어디가?! 조드푸르의 백종원이라는 소문을 듣고 온 건데... 우리가 도착하던 날 그는 그렇게 떠나버렸다.


블루시티 조드푸르의 일몰






조드푸르의 옥상


 조드푸르의 백종원 셰프님이 떠나서 슬프긴 했지만, 게스트하우스의 전망은 끝내줬다. 메헤랑가르 성 바로 밑 언덕에 위치한 숙소 우리 방은 옥탑방인 데다 2면이 큰 유리창이어서 조드푸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옥상 테이블에 앉아서 조드푸르를 내려다보면 사람들 사는 게 참 잘 보였다. 빨래 너는 아낙네, 숨바꼭질하는 코찔질이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할아버지... 그중에서도 눈에 띄었던 건 옥상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소녀. 너무너무 기특했다. 책상, 아니 하다못해 테이블 하나 없이 저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다니. 뭐가 돼도 될 녀석이다 싶었다. 





오믈렛과 파리


조드푸르 시장 앞에는 유명한 오믈렛 가게가 있었다. 조드푸르에 와서 이 오믈렛을 안 먹으면 조드푸르에 온 게 아니라길래 한번 가봤다.


그런데, 오믈렛은 둘째 치고, 파리가 너무 많다!


윙윙거리는 소리, 피부에 닿는 벌레의 느낌. 파리가 없는 곳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랐다.


뜬금없이 동생이 떠올랐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내 남동생을, 그것도 한겨울에 국토 종단에 내보내신 부모님. 한 달 일정이었는데, 2주 정도 지나니 뉴스에 기사가 하나 떴다. '초등학생들 혹사시키는 국토종단의 실태' 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 한 데서 재운다는 내용이었는데, 우리 부모님은 그래도 이미 내보낸 거 마쳐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대단하다. 동생은 국토종단에서 돌아와서 입에도 대지 않던 콩밥을 먹어치웠다. 


 그래, 이제 파리만 없다면 모든 음식에 감사하면서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인도 파인 다이닝 


 인도가 가진 몇 안 되는 좋은 점 중 하나는 이렇게 근사한 레스토랑이 한국에 비하면 아주 싸다는 것. 조명이 들어온 메헤랑가르 성을 보면서 커리에 난을 곁들이자니 왕족이라도 된 기분이다. 소음과 쓰레기, 사기와 바가지가 난무하는 인도를 3개월이나 여행할 수 있었던 건 도시마다 한 번씩 가지는 이 파인 다이닝 타임 때문이었다.

조서방은 마치 약을 투여하듯 나에게 한 도시당 하나의 파인 다이닝을 선사했다. 이마저 없었다면 나는 이놈의 나라를 떠나겠다고 난리를 쳤을 텐데, 조서방은 정확한 타이밍에 약을 먹였다. 역시 마누라를 잘 안다.




일출과 일몰


 옥탑방인 우리 숙소 방에서는 창문만 열면 일출이 바로 보였다.

일몰은 보러 가도 아침 댓바람부터 일어나는 일출은 절대 보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나도, 눈만 뜨면 보이는 일출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많이 근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붉어지는 노을은 사람을 감상에 젖게 하고, 갈수록 쨍하게 밝아오는 일출은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한국에서도 매일 해는 뜨고 졌다는 것. 다만 내가 그걸 챙겨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지금, 한국에서도 가끔은 일출과 일몰을 챙겨보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내가, 우리가 참 마음에 든다.






자이살메르


온통 파란 도시에서 이번엔 온통 노란 도시로 왔다. 땅덩이가 크니까 도시를 옮길 때마다 나라를 옮기는 기분이다. 모래바람이 부는 건조하고 노란 자이살메르.

 사막이 지척인 도시라더니 색감도 맞췄나 보다. 노란색의 끝판왕은 자이살메르 성이었다. 박쥐가 냄새를 풍기는 성문을 지나면 성안의 세상이 펼쳐졌다. 성안에 사는 사람들, 골동품 가게, 호텔, 기념품 가게, 서점, 레스토랑, 카페...

 그중에서 우리가 가장 사랑한 공간은 자이살메르 성벽에 위치한 카페였다. 탁 트인 야외 테라스, 성벽 가장자리 테이블에 앉으면 노란 자이살메르 시티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자이살메르 성주는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인가 보다.





자이살메르의 가지


인도에는 유독 한국말에 유창한 인도인들이 많았다. 자이살메르 가지네의 가지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아이고 형님, 아이고 누님'하는데, 한국에 10년 이상은 살아야 나오는 바이브가 나온다. 반전은 한국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것. 가지는 인도 내에 유명한 한식당을 다니며 한식을 습득한 다음, 한식당을 갖춘 가지 호텔을 차려냈단다. 대단한 녀석이다.


 가지는 호텔도 경영하고, 한식당도 운영하고, 쿠리 사막 투어도 진행했다. 서글서글 웃는 폼이 사람 마음을 참 편하게 해 줬다. 가지네 호텔, 우리 방 테라스에서는 자이살메르 성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지네 호텔 루프탑의 한식당은 인도음식에 질린 우리에게 아주 큰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어느덧 자이살메르를 떠나 우다이푸르로 가야 하는 날이 왔다. 그런데 가지가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디왈리가 시작되어서 모든 교통편이 매진되었다는 것. 우리가 난감해하자. 지금 방에 계속 같은 가격으로 머무르게 해 주겠단다. 디왈리라 자이살메르의 모든 방값이 몇 배가 되었다는 건 우리도 잘 아는 사실. 손해를 보면서도 우리 편의를 봐주는 가지가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자이살메르에 며칠 더 머물게 된 우리는 가지네 호텔에서 그야말로 푹 쉬었다. 루프탑 레스토랑에 엎드려 몇 시간이고 블로그 포스팅을 하다가 밥시간이 되면 한식을 주문해 먹고 또 포스팅을 하기를 반복했다. 종일 루프탑에서 벗어나지 않는 우리를 보며 가지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이고 형님, 누님. 밖에도 좀 나가고 하세요' 귀여운 녀석.


하지만 6개월 남짓 여행 중인 우리에게 이렇게 뒹굴거리는 시간은 꼭 필요했다. 가지의 배려로 충분한 휴식을 가진 우리는 원기 충전하여 우다이푸르행 나이트 버스에 올랐다. 가지는 다른 게스트들과 함께 쿠리 사막 투어에 갔단다. 인사를 못하고 가는 게 내심 아쉬웠는데, 누군가 버스로 튀어 올라온다. 가지다!

'형님~ 누님~ 인사는 하고 가야죠' 내 말이 그 말이야 동생. 가지는 진한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부랴부랴 버스에서 내렸다.


가지의 마지막 인사에 우리 둘은 큰 감동을 받았다. 그 뒤로도 '아이고 형님, 아이고 누님' 하는 가지가 가끔 떠올라 우리 둘이 웃곤 했다. 가지네 호텔은 아직도 잘 있을까? 자이살메르에 간다면 꼭 가지부터 찾아갈 거다.





쿠리 사막


조서방과 나는 신혼여행을 세이셸로 다녀왔고 그때 두바이를 경유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본 사막은 두바이 사막이 다였다. 사륜구동을 타고 롤러코스터처럼 모래언덕을 넘었던 기억이 남아있어서 사막은 우리에게 재미있는 곳이었다.

쿠리 사막은 우리 인생의 두 번째 사막이었다.

자이살메르에서 한 시간 남짓 달렸을까. 쿠리 사막의 초입을 알리는 작은 쿠리 마을에 내린 우리는 모래바람에 대비해 단단히 채비를 하고 낙타에 올라탔다. 해 질 녘, 낙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는 시간이었다. 털석 털석 느리게 걷는 낙타 위에서 보는 사막은 사륜구동을 타고 쌩쌩 달리던 두바이 사막과는 다른 운치가 있었다. 쿠리 사막은 낮은 관목들도 간간이 눈에 띄는 사막이라 모래만 가득한 사막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어디선가 작은 사막여우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 

 식사 시간이 되자 스태프들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모닥불로만 모든 조리를 해내는 요리사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우리는 컴컴해지는 사막 한가운데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시내에서 사 온 인도 위스키를 한병 꺼낸다. 하나둘 떠오르는 별을 보며, 인도산 위스키를 홀짝이며, 그날의 긴 저녁식사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모닥불도 꺼진 밤. 별빛 가득한 하늘. 조용한 모래바람소리. 

이 모든 걸 깨어버리는 일행의 코골이 소리.

역시 100%란 없다. 하지만 쿠리 사막은 아무 잘못이 없다.







우다이푸르


 아직은 이른 새벽 우리는 우다이푸르에 도착했다. 예약해둔 호스텔에 들어갔더니 스태프들도 다 잠들어있다. 호스텔 로비에 짐을 내려두고, 이른 아침의 우다이푸르를 산책했다.

 호수가 있는 도시이다 보니 이전의 다른 인도 도시들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 아기자기 예쁜 동네랄까. 그리고 다른 도시보다 악취와 소음이 덜해서, 다른 인도 도시들보다는 편하겠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첫인상이 맞았다.

 우다이푸르는 유유자적하기 좋은 도시였다. 세밀화도 배우고, 헤나도 받고, 호숫가 카페를 돌아다니는 게 다였다. 해 질 녘에는 호숫가 가트에 앉아 일몰을 구경하다, 밤이 되어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하면 뷰가 좋은 레스토랑을 찾아 저녁식사를 했다. 신혼여행의 도시라더니, 왜 그런지 알겠다 싶었다.

 인도 여행에 지친 그대라면 우다이푸르를 추천한다. 물 멍과 함께 지친 심신을 쉬어주기 딱 좋은 도시다.





Very smart, Very intelligent


 우다이푸르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자니, 여행자로서의 본분을 잊어선 안 되겠다 싶었다. 우다이푸르에 머무는 동안 다녀오면 좋다는 쿰발가르와 라낙푸르 투어를 다녀오기로 했다. 그룹 투어를 예약했는데, 우리 부부와 북유럽에서 온 아저씨 한분 이렇게 3명이 다였다. 아주 프라이빗한 분위기에서 화기애애한 일일투어가 시작되었다. 아저씨는 아무 톤이 없는 로봇 같이 딱딱한 목소리의 소유자였는데, 그런 목소리와는 달리 농담을 좋아하는 유쾌한 분이셨다.

  쿰발가르 성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 바로 앞차가 좁은 길을 가로막고 있는 바람에 우리를 비롯한 뒤의 모든 차들이 막혀버렸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느낀 건데, 몇몇 인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누구한테 폐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걸 한다. 새치기도 빈번하고...

아저씨도 그런 모습에 지치셨던 건지, 예의 그 기계음 같이 차가운 톤으로 한마디 하신다.


'베리 스마트, 베리 인텔리전트!'


조서방과 나는 정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저 해학이라니.


그 뒤로 제멋대로 구는 인도인들을 볼 때면 조서방과 나는 눈을 마주치며 외쳤다.

'베리 스마트, 베리 인텔리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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