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꿈꾸는 자들
나는 상암 미디어시티 노동자 중 한 명이다.
점심시간에는 누리꿈 스퀘어나 MBC MALL PARK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커피 한잔을 하는 것이 낙인, 평범한 미디어계 노동자. 카페 중 자주 찾는 곳은 MBC 건물에 붙어있는 스타벅스이다. 가깝기도 하고, 메뉴가 다양해 여럿이 가기에 가장 이견이 없다. 방송국 건물에 붙어있다 보니 가끔은 재미있는 광경을 보기도 한다. 뉴스에 나오던 근엄한 앵커들이 까르르 수다 떠는 모습도 볼 수 있고, <무한도전> 방영 당시 고정멤버 광희가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태연하게 음료를 주문했던 일도 있다. 붐비는 점심시간만 지나면 썰물이 된 듯 한적해져 일이 없을 때는 농땡이(?)를 치러 가는 곳이기도 하다.
한데, 여러모로 좋아하는 이곳에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화장실에 가면 앞의 사람이 실례(!)한 뒤 물을 내리지 않는 횟수가 매우 잦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레버가 고장이 났나 싶어 작동해보았는데, 고장이 아니었다. 한두 번은 그러려니 했는데, 오줌을 갈겨놓고 뒤처리는 나에게 고스란히 맡긴 채 슬그머니 사라지는 도둑 오줌을 연달아 당하니 화가 치밀었다.
어느 날은 화장실에 갔다 돌아와 동료에게 하소연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방송국씩이나 출입한다는 사람들이 아무리 바빠도 오줌 내릴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초지종을 듣더니 동료는 아마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 했다. 말인즉슨, 기가 좋고 터가 좋은 곳에 소변이나 일을 보면 그 길(吉)한 기운이 자신에게 온다는 미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한도전에서도 리쌍 멤버 길이 잘 나가지 않던 시절 유재석에게 자신의 소원이 유재석네 집에 가서 소변 한번 보는 것이라고 애원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마침내는 그 집에 가서 소변을 실제로 봤다고 한다.
“근데, 그러고 나서 진짜로 길 확 떴잖아!”
맞다. 길이 계속 예능 감각에서 갈피를 못 잡다 갑자기 확 대세가 됐었지.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며 동료의 말에 신빙성이 더해졌다. 조금 전까지 도둑 오줌에 분노하던 나까지 혹할 정도였다.
“아마 그래서 그럴 거야. 우리도 나름 방송국 들어가고 싶어서 용 좀 써봤잖아. 연기자나 가수 지망생들은 얼마나 더하겠어. 경쟁도 치열하고. 데뷔하고도 무명으로 잊히기도 하고.”
하긴 내게도 나만의 미신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바로 몇 년 전. 소위 ‘언론고시’라고 하는 방송국 입시를 준비할 때다. 방송사마다 일 년에 몇 명 겨우 채용하는 PD를 해보겠다고, 수년째 응시를 하면서 불안, 초조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나름으로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항상 수백 수천 지원자들보다 내가 선택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가슴이 조여왔다. 하나둘 주변 친구들이 취업할 때 비교적 늦은 나이에 방송사만 지원하고 있으니 부모님의 걱정 또한 깊을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기에 괜히 위축되어 주말에도 부모님 눈치를 보느라 편히 쉬지 못하고 괜히 도서관에 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 내게는 어느 순간 비밀스럽게 아껴 쓰는 ‘행운의 볼펜’이 생겼다. 필기시험에 붙었을 때 사용했던 볼펜이 좋은 기운이 있다고 생각해 그다음 시험에도 썼는데 또 합격이었다. 와! 이 볼펜 때문인가? 나는 책상 서랍 깊숙이 고이고이 보관했다가 다음 시험 때 펜을 또 사용했다. 이번에 또 떨어지면 어떡하지. 불안감에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책상 서랍을 열어 볼펜을 분리해, 심의 줄어든 길이를 가늠해 보곤 했다. 필기시험에서는 4000자 내외의 글과 서술형 약술 문제들을 써내야 한다. 어느새 훌쩍 줄어든 잉크를 보면, 나의 운도 다 한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두 번은 더 내게 기회가 있겠지….’
결국, 2015년 1 지망으로 생각했던 K 방송국 예능 PD 전형에선 실무면접에서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곧 채용이 있었던 지금의 회사에서 홈쇼핑 PD로 일하게 되었다. 지금은 일에 익숙해져 안락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어 행복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 역시, 꿈이 있어서 지금과 비교해도 기울지 않게 행복했다. 새벽 5시, 하루를 일찍 시작할 겸 1시간 동안 신문 리딩 스터디를 했는데 학생들이라 돈이 없어서 가끔은 메뉴를 1인당 전부 시키지 않아도 야박하게 눈총을 주지 않는 24시간 맥도널드나 버거킹에 둘러앉아 돌아가며 메뉴를 주문하며 아침 공부를 하기도 하고, 스터디가 끝나고 싼 치킨 브랜드 치킨집에 가서 치킨 한 마리와 감자튀김 여러 접시를 시켜서 맥주를 들이켜며 서로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지, 최근에 재미나게 본 콘텐츠가 무엇이었는지 수다 떨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직군 특성 때문일까. 취업을 위해 공부했던 그 시간들이, 순수하게 행복했다. 당시 PD 작문 시험을 위해 매일 쓰고 글을 다듬어 완성했던 근육이, 새로운 시사용어들을 공부하며 세계를 확장했던 기쁨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그랬구나…. 도둑 오줌이 아니라 누군가의 간절한 ‘행운의 펜’이었구나’
문득 내가 그토록 간절하게 바랐던 적이 언제인가 돌이켜본다. 부스스 눈을 비비며 나가면서도 손에 든 신문의 잉크 냄새를 맡으며 기어코 아침을 열고 말았던 그 뜨겁던 욕망과 간절함의 새벽. 누군가가 그렇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도 조금의 운이 부족해, 이곳에 찾아와 그의 흔적만 남기고 몰래 달아났을 것이다. 그녀는 어떤 아침을 맞을까, 점심은 잘 먹을까.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 못 드는 밤에는 무슨 생각을 할까. 가슴 뜨거운 누군가가 떠올라 갑자기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나도, 여전히 꿈꿀 것이 많은 사람이다.
얼마든지, 오줌을 또 싸도 좋다 그대여. 내가 몇 번이고 그 오줌을 내려주리다! 당신의 앞길이 길(吉)하기를, 내가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