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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수 Sep 01. 2021

폭력의 역사

넷플릭스 드라마 <D.P.>

 8월 27일에 넷플릭스에 공개된 6부작 드라마 <D.P.>는 군대 탈영병을 잡는 군무이탈 체포조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이다. 레진코믹스에서 2015년 경 연재되었던 웹툰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본 웹툰의 작가가 드라마의 극본 또한 집필했다.


 본인은 2016년 가을부터 2018년 여름까지 21개월의 군생활을 경험했다. 2014년 경 윤일병 사건 등 여러 사건들이 발생해 군내 부조리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있던 시기였고, 군 조직이 가장 발 빠르게 변화하고 있던 격동기였다. 그 때문에 흔히들 군 부조리라 하면 떠올리는 신체적, 언어적 폭력 등은 거의 경험하지 못했으며 그 전 군생활을 경험해왔던 사람들과 비교하면 매우 하찮은 경험으로 치부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배우의 생생한 연기 또한 몰입감을 높여주었다.

 작중에서 다뤄지는 군 부조리는 대부분 엄청난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성적 폭력들이 가감 없이 묘사되며 시청자에게 정신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을 정도이다. 폭력을 견디다 못해 탈영하는 병사들이 절대다수이고, 그런 탈영병들을 다시 잡아오는 게 본 드라마의 주요 내용이다. 폭력과 부조리에 강하게 반발하는 주인공 안준호를 중심으로, 어차피 탈영병을 잡아와 봤자 부조리는 근절되지 않고,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딜레마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군대에서 행해지는 폭력에서 중요한 요소는 조직 그 자체와 구성원들이다. 그리고 <D.P.>는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군대라는 조직이 사람들을 어떻게 망가트리고, 변화시키는지 집중해서 보여준다. 후임들에게 친절하게 잘 대해주고 부조리와 불합리를 없애자 말하던, 폭력과는 거리가 멀던 사람이 그 시스템에 물들어가며 후임들에게 폭력을 쓰고 자기 합리화를 일삼는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 더불어 폭력을 조장하고 불합리를 종용하는 구성원들, 이를 묵인하고 방조해오던 구성원들이 바로 지금의 군대를 만들었다며 이야기한다. 거기에 폐쇄된 생활환경, 외부와의 소통 단절, 상명하복과 철저한 계급 문화, 1년 내내 이어지는 단체생활, 고된 노동과 훈련, 간부들 사이의 알력 다툼까지, 이 부조리와 불합리를 조장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모든 요소들을 작중에 빠짐없이 녹여내고 외부의 시선에서 관조적으로 조명한다. 6화라는 비교적 짧은 화수만으로 이렇게 군대의 복합적인 요소들을 세심하게 녹여내며 장르적인 재미까지 챙기다니, 훌륭한 드라마임에는 틀림없다.


장교와 부사관의 모습마저 정말 현실적으로 표현했다.

 <D.P.>가 넷플릭스에 올라온 이후 근 며칠 동안, 온갖 커뮤니티에서는 군필 남성들의 경험담(무용담)이 줄을 이었다. 이렇게라도 군 내부의 폭력이 다시금 환기된다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현상이다. 글 중 몇 개를 찬찬히 읽어봤는데, 과연 과거의 폭력은 최근보다 훨씬 수위가 높고 직접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보면서 황당하고 우스웠던 지점은, 그러한 경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이 피해자였다며 이야기하는 것이다. 마치 피해자는 잔뜩 존재하는데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건 그들이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피해자였으며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2021년까지 병영 부조리와 폭력이 굳건히 유지되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자신이 당했던 폭력과 학대의 수위보다는 약했을지 몰라도(어쩌면 그보다 심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충분히 많이 봐왔다), 그들 또한 자신이 '짬'이 찬 뒤에는 후임들에게 그런 폭력과 학대, 부조리를 행해왔을 것이다. '나 때는 더 심했어, 이 정도는 후임이 감내해야지, 요즘 군대가 군대냐' 그 외 기타 등등 같잖은 자기 합리화를 내뱉으면서 말이다. 뭐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었다면, 최소한 방관자는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D.P.>는 바꾸어 나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시스템에 순응해버렸던 방관자들 또한 본질적으로는 가해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이 드라마는 군대라는 조직이 평범한 사람들을 괴물로 만들어서 사회에 방생시키는 그 과정을 세심하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남성 위주 조직 문화가 뿌리 깊게 스며들어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 그런 괴물들이 들어오면서, 군대의 끔찍하리만치 폭력적인 문화는 한국 사회 전체에 그대로 전염되고 있다.


 한 기사를 보니, 국방부에서는 이 드라마에 대한 열띤 반응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한다(출처: https://www.chosun.com/politics/diplomacy-defense/2021/08/30/FKA3PH2ULVHL5J2H3KTQLGIKOA/). 올해 들어서 여럿 터진 군 관련 부조리와 범죄들 때문에 군 조직 자체에 대한 불신과 회의감이 팽배해져 있는데, 이런 현실보다 과장된 드라마(얘네는 진짜 이게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굳게 믿고 있나 보다) 때문에 더 안 좋은 인식을 심어줄까 봐 두렵대나 뭐라나. 헛웃음밖에 안 나온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애청자들이나, 전 세계의 K-POP 팬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내 아이돌들이 저런 곳에 가는 거였다니' 라면서 충격을 먹고 세계적으로 공론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저런 곳에서 탄생한 괴물들이 휘어잡고 있고 제아무리 바뀌어야 한다 말해도 근본적인 변화는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 이미 사회 내부의 개혁만으로는 바뀌기 힘들다는 것이 오랜 기간 충분히 증명됐다. 이제는 완전한 외부자의 관점에서 비판이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그저 웃음뿐.

 최근의 군대는 작중에서 보이는 직접적인 신체적 폭력, 이유 없는 학대 등의 부조리와 범죄행위들은 거의 뿌리 뽑힌 상태라고 말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군대라는 조직이 본질적으로 변했다고 말할  있을까. 그리고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군대 문화가 사라졌다고 말할  있을까. <D.P.> 군대를 다룰 뿐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드라마이다. 복무 기간이 짧아지고, 봉급이 비약적으로 인상되고, 휴대폰 사용이 가능해졌다고 해서 폭력을 연쇄시키는 구조 자체가 변화한 것은 아니다.  드라마를 대하는 군필자들의 감상이야말로 한국 군대가 지금 이모양인 이유, 군대 내에서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적나라하게 전시하고 있다고 말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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