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 빌뇌브의 <듄>을 보고
2019년 즈음부터, 영화 업계의 중심은 서서히 넷플릭스 등의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추세였다. 디즈니는디즈니 플러스라는 본인들만의 OTT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준비하고 있었고, 워너 브라더스와 그 외 기타 등등의 할리우드 대형 영화 스튜디오, 거기다가 IT 업계의 공룡인 애플까지 하나 둘씩 스트리밍 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 선두주자였던 넷플릭스의 상승세는 놀라울 정도로, 2018~19년도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들인 <로마>, <아이리시맨>, <결혼 이야기> 등의 걸출한 영화들은 여러 비평가들에게 준수한 평가를 받았으며 각종 영화제에 노미네이트, 수상을 하기도 했다. 알폰소 쿠아론, 마틴 스콜세지, 노아 바움백 등의 영화계에서 손꼽히는 거장 감독들이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영화를 공개한다는 것부터가 화제였는데, 그들은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넷플릭스 아니면 만들지 못했을 작품'이라고들 말했다.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공개되고, 스트리밍 플랫폼의 영화가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될 수 있냐 없냐로 갑론을박이 벌어지던 게 불과 몇 년 전이었다. 당시 많은 영화인들은 '스트리밍 플랫폼이 극장에서의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앞서 언급한, 가장 시네마(cinema)에 가까운 세 영화(film)들은 스트리밍 플랫폼의 투자를 받고 나서야 완성될 수 있었다. 불과 2년 사이에, 영화 업계에서 스트리밍 플랫폼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된 것이다.
그러던 와중, 2020년 초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사람 간의 접촉으로 인해 감염이 되는 이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극장은 강제적으로 문을 닫게 되었고 수많은 영화들은 길게는 2년 가까이 개봉을 연기해야만 했다. 영화산업과 극장은 전례없을 정도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으며 산업의 기본 골조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영화사들은 살아남을 길을 모색해야 했고, 이미 제작된, 또는 제작할 영화들을 자신들의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극장과 동시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극장에 관객이 이전처럼 들지 못하니, 영화를 극장 개봉과 동시에 스트리밍 플랫폼에도 공개하여 스트리밍 서비스의 구독자를 늘리고 홍보도 겸하자는 묘안이었다. 수많은 영화인들이 반발했지만 그럼에도 이런 공개는 강행되었고, 마블 스튜디오의 <블랙 위도우>, 워너 브라더스의 <원더우먼 1984>, <고질라 vs 콩>,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등 많은 영화들이 이런 동시공개의 희생양이 되었다.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던 초반 예상과 달리, 이런 동시 공개 전략은 꽤 유의미한 가입자 수의 증가를 불러들여왔으며, 그와 동시에 관객들은 점점 극장보다 집에서 관람하는 경험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영화 <듄> 또한 어제(10월 20일) 극장에 개봉했지만 미국 시간으로 내일, 워너브라더스의 스트리밍 플랫폼인 HBO max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 영화의 감독인 드니 빌뇌브는 스트리밍 동시공개 전략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출하기도 했지만, 아마도 스튜디오와의 알력 다툼에서 진 것 같다. 미국이나 한국보다 한달 가량 일찍 개봉한 유럽에서 꽤 괜찮은 흥행 성적을 내고 있어서, 흥행에 대한 걱정은 한시름 덜어도 될 것 같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
그리고 나는 오늘 오전에 용산 CGV의 IMAX 상영관에서 <듄>을 관람했다. 내용은 평이했고(사실 대다수의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가 그렇다), 호흡은 감독의 전작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느렸다. 솔직히 말해서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처럼 긴박감 넘치고 흥미진진한 영화는 절대 아니다. 그러나 장면마다 고심해서 찍은 티가 역력하며, 극강의 비주얼과 미장센을 보여준다. 다른 영화였다면 평이하게 연출했을 씬을 다양한 구도로 담아내 회화적인 이미지로써 구현해낸다. 한스 짐머의 약간은 과하게 느껴지는 사운드와 겹쳐져, 1.33:1의 IMAX 비율이 펼쳐지는 씬에서는 화면에 압도되고 말았다. 단언컨대 영화에 압도되는 이런 감정은 극장이 아니라면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 몇년간의 극장 관람 중에 최고의 경험이었다.
<듄>의 제작비는 대략 1억 6000만불가량 들었다고 한다. 무척 큰 금액이지만 이 영화의 규모, 비주얼적인 성취와, 최근 할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들이 기본 2억불, 많으면 3억불 가량의 제작비가 든다는 것을 고려하면 터무니없지는 않다. 배우들의 캐스팅이나 기타 등등 부대비용이 많기는 하지만, 과연 <듄>보다 많은 제작비를 들인 수많은 블록버스터들이 비주얼적으로 이 영화보다 뛰어났는가? 완성도가 좋았는가? <듄>은 드니 빌뇌브가 지금의 할리우드에 '제작비는 이렇게 쓰는 거다'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본인 또한 최근 집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횟수가 부쩍 늘면서, 극장 관람에 대해 약간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게 됐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듄>은 나의 일탈을 반성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이런 영화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극장은 여전히 극장만이 가능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듄>을 집에서 TV로, 컴퓨터로, 아이패드로, 스마트폰으로 감상한다면 이 영화의 본연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것이다. 꼰대같은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드니 빌뇌브가 스트리밍 공개를 격렬하게 반대했던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얼마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마스터클래스 행사가 있었다. 한 관객분이 스트리밍 플랫폼과 극장 산업의 미래에 대해 질문을 하자,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극장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작은 사회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영화는 큰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만나야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동의하지만, 사실 모든 영화가 극장에서 감상한다고 더 크게 와닿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극장 산업이 쇠퇴해가는 시기에는 관객들에게 극장이라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줄 영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드니 빌뇌브는 그런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몇 안되는 감독일 것이다. <듄>은 처음부터 2부작으로 기획된 영화이지만, 아직 파트2의 제작이 확정된 상황은 아니라고 한다. 후속작 또한 극장에서 볼 수 있기를, 더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