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고백>, 그리고 <매그놀리아>
1.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는 영화를 정말 좋아하셨다. 아버지 말씀을 들어보면 고전 서부극 영화, 그중에서도 존 포드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영화들,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영화들을 좋아하셨다고 한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께서 TV로 서부극 영화를 보시던 게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다. 아무튼 영화를 좋아하시던 할아버지의 영향인지, 아버지 또한 영화를 정말 좋아하셨다. 어머니와 연애하실 적에도 매일같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게 필수 데이트 코스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셨을 그 시절에 극장에서 본 <이레이저 헤드> 같은 영화를 생각하면 지금도 손사래를 치신다. 아버지는 데이트 영화로 왜 그런 걸 고르셨던 건지.
어쨌든, 아버지 역시 영화를 좋아하셨고 그건 물론 현재 진행형이다. 어머니도 아버지와 오랜 기간 함께하시면서 자연스레 영화를 많이 관람하시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나와 형이 태어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고, 우리가 네 살쯤 되자 아버지께서는 주말마다 컴퓨터로 영화를 다운로드해서, 우리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같이 보고는 하셨다. 물론 개봉하는 영화가 있으면 당연히 극장에 가서 다 같이 보기도 했는데, 집에 차도 없던 시절에 주말 아침 7시에 일어나서 가족끼리 버스 타고 동네 백화점에 있는 영화관으로 가서 조조 영화를 관람했다. 별 상관없는 이야기이지만 그 백화점은 지금 다른 아울렛으로 바뀌었고, 당시 다니던 극장은 다행히 지금까지도 꾸준히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매일같이 다니던 영화관 옆 오락실은 아쉽게도 문을 닫았지만, 어쨌든 내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장소 중 하나이고 요즘도 자주 방문하고는 한다. 동네에 몇 없는 아트하우스 전용관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어쨌든 가족끼리 쉬는 날 영화를 보는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서, 금요일 밤이나 주말에 부모님과 다 같이 거실에서 맥주 한 캔 마시며 넷플릭스 보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극장 개봉 자체가 없었던 작년~올해 초를 제외하면, 한 달에 최소 2~3번 정도는 가족끼리 극장도 가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2. 내가 처음으로 부모님과 같이 본 영화로 기억하는 영화는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이다. 시리즈의 4편이자 제작 순서상으로는 맨 처음 작품, 지금의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들어 낸 기념비적인 영화다. 영화사에 끼친 영향이야 두말할 것도 없지만, 내 개인에게 끼친 영향 또한 지대하다.
아버지는 많은 영화를 좋아하셨지만 그중에서도 스타워즈 시리즈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아마 당신께서도 아직 꼬마이던 시절에 극장에서 보셨던 영화이기 때문 아닐까. 스타워즈 시리즈의 플롯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선과 악의 대립, 빛과 어둠의 이미지, 반란군과 제국군. 신화적인 구조이지만 그만큼 직관적이고 동심을 자극하는 면이 있어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온다. 어린 시절 접한 그 이야기들은 나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내가 루크 스카이워커 같은 제다이가 돼서 은하계를 구하는 것 같은 느낌. 선한 인간이 승리한다는 정의로운 서사의 고양감. 지금의 나 역시 ‘정의’라던가 ‘선함’ 같은 약간은 고루한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상기하면, 알게 모르게 영화의 이런 선악에 대한 관념이 내 기저 심리에서 꽤 많은 영향을 미쳤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3. 나와 형은 어린 시절 스타워즈 오리지널 트릴로지인 에피소드 4~6을 다 보고 나면, 처음부터 다시 보자고 계속 부모님을 졸랐다고 한다. 거의 열댓 번은 봤다고 하는데, 기억이 또렷할 만큼 나이를 먹은 뒤에도 수없이 다시 봐 온 덕분에 웬만한 대사와 장면들은 줄줄 꿰고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만들어졌던 에피소드 4~6 이후, 4살쯤 되던 1999년에 에피소드 1이 개봉했다. 당연히 우리 가족은 개봉일에 바로 극장에 갔고, 이건 에피소드 2와 3이 개봉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에피소드 3의 마지막, 아나킨이 다스 베이더가 되는 씬은 꽤 충격적이었고 아직도 선명히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영화의 개봉 시기와 맞물려 코엑스에서 스타워즈 전시회가 열렸었는데, 가족끼리 그 전시회에 가서 스톰 트루퍼 분장을 한 분들과 같이 사진을 찍은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하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스타워즈 시리즈는 당시에 6부작으로 마무리가 되었고, 그렇게 어린 시절의 추억의 한켠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2015년, 디즈니가 루카스필름을 인수하고 난 뒤, 스타워즈의 새로운 시리즈가 나왔다. 에피소드 7~9으로 이어지는 시퀄 시리즈는 중구난방이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가 천지였다(논외로 대다수의 골수팬들이 극렬하게 배척하는 에피소드 8-라스트 제다이는 내가 스타워즈 시리즈를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이다). 하지만 한 솔로와 츄바카가 다시 등장하는 장면, 밀레니엄 팔콘이 몇십 년 만에 비상하는 장면을 극장에서 봤을 때의 감정은 단순히 글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감흥이 있었다. 엉망이었던 에피소드 9의 완결 이후 앞으로 시리즈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외전 영화들과 애니메이션, 드라마로 계속 확장되는 세계관을 보며 여전히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은 계속되겠구나 위안을 삼게 된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영화를 보여주셨 듯이, 아버지가 나에게 영화를 보여주셨 듯이, 나 또한 내 다음 세대에게 이영화를 보여주고 싶다고, 이 감흥을 전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4. 부모님의 영향으로 영화를 끊임없이 봐오긴 했지만, 사실 중학생 때까지 내 영화 감상의 대다수는 순전히 ‘재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사실 대부분의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마블 영화 같은 류? 당연히 그런 영화들이, 그런 감상 방식이 나쁘다고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나 또한 장르 영화를 좋아하고(주로 호러, 스릴러 장르), 그런 감상을 즐기니까. 하지만 어쨌든 영화라는 매체의 근간은 예술이고 상업성만이 영화적 가치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흥미 위주의 감상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예술로서의 영화를 향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흥미, 재미 위주의 상업 영화를 즐기다가 예술로서의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전환점이 되는 계기가 존재한다. 나에게는 바로 그 계기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고백>이었다.
5. 이 영화를 처음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 되돌이켜 보면 조금 우습다. 고등학교 1학년쯤, 영화를 보고 싶은데 볼만한 게 마땅히 없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었다. 네이버 지식인의 한 글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명작 영화 추천’ 따위의 제목이었던 것 같다. 그 글에서는 영화 포스터와 간략한 시놉시스를 소개해 주고 있었다. 다른 영화들은 당시에 이미 내가 본 지 오래인 유명한 명작 영화들-아마도 터미널, 쇼생크 탈출, 포레스트 검프 같은 뻔한 영화들-이었다. 그 글의 추천 영화 목록 중에서 유일하게 처음 접한 영화가 이 <고백>이었다. 여성의 얼굴이 꽉 차 있는 포스터도 인상적이었지만, 중학교 교사가 방학 시작 전 마지막 종례 시간에, 아이들에게 ‘너희가 오늘 먹은 우유 속에 에이즈 바이러스가 들어있다’고 고백한다는 시놉시스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내용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고 바로 찾아서 감상했다.
6. 여러 인물들의 관점에서 다양하게 전개되는 플롯과 내용도 자극적이었지만 그보다도 영화 자체의 스타일과 연출적인 톤이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영화에서 죄책감에 고통받던 아들이 어머니를 죽이는 장면이 있다. 나는 그 장면의 흰색 벽지에 새빨간 피가 선명히 튀는 강렬한 이미지에 매료되었다. 분명 잔인하고 보기 힘든 장면인데, 영상은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주인공 혼자의 독백과 반 아이들의 반응으로만 진행되는 초반 30분의 전개와 담담한 연출, 정신없고 산만한 편집과 그와 어우러지는 감각적인 색채, 그 속에 녹여낸 자극적인 이미지들까지. 보면서 ‘이 영화는 어떻게 찍었을까? 왜 이렇게 연출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는 태어나서 <고백>이 처음이었다. 다 보고 나자 이 감독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바로 감독의 전작인 <불량공주 모모코>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찾아 감상했다. <고백>의 원작 소설도 찾아 읽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서 영화라는 매체의 구조가 궁금해졌고, 감독이 뭐하는 사람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그전까지 나에게 영화는 단순히 재미와 흥미를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면, <고백> 이후로 나에게 영화는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되었고 지적 욕구를 자극해주었다. 이후로 데이비드 핀처나 마틴 스콜세지, 알폰소 쿠아론, 드니 빌뇌브 같은 훌륭한 감독들의 좋은 작품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영화가 마음에 들면 감독의 모든 필모그래피를 처음부터 정주행 하고는 했다. 그렇게 영화를 조금씩 찾아보고 탐구하기 시작하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2016년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내한해서 GV와 마스터 클래스 프로그램이 개최되었는데, 당시 감독의 싸인을 받은 <고백> 블루레이는 지금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이 영화는 내 영화적 여정의 가장 큰 전환점이자, 이정표와도 같다.
7. 예술로서의 영화에 빠지게 되고, 본격적으로 영화를 사랑하게 된 뒤로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중에서 특히 애정 하던 작품들, 이를테면 소노 시온의 <러브 익스포저>,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마렌 아데의 <토니 에드만>, 위쇼스키 자매와 톰 티크베어의 <클라우드 아틀라스>, 루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같은 영화들을 당연히도 사랑했고 몇 번씩 돌려보곤 했다. 하지만 그 영화들은 내 취향에 맞거나, 깊은 울림을 주거나, 완성도가 걸출한 영화들일뿐이었지 내 개인적인 영역에까지 들어오지는 못했다. 개인적 영역에 침범하려면 단순히 좋은 영화일 뿐만 아니라 감상할 당시의 내 상황, 감정, 기타 등등의 요소들이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건 당연하게도 완성도와는 별개의 영역이다.
그런 면에서 올해 초 감상한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는 나에게 남다른 영화였다. 사실 이 영화는 감상을 아껴 두던 영화 중 하나였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적 역량은 영화 애호가들 사이에서 두말할 것이 없는 객관적 사실이었지만, 내가 <마스터>나 <데어 윌 비 블러드> 같은 걸작들을 고등학교 시절에, 영화에 대한 감각이 별달리 없던 시절에 보아서 그다지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었고(지금 보면 감상이 변할 것 같다), 어려운 영화 찍는 감독이라는 인상만 남아있었기 때문에 은근히 꺼려하고 있었다. 당시 무슨 심정의 변화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는 그 영화를 지인 분에게 추천을 받자마자 바로 감상을 시작했다.
8. <매그놀리아>는 정말 독보적인 영화였다. 유명한 OST인 ‘Save me’가 흘러나오며 시작하는 약 7분가량의 오프닝 시퀀스부터 압도당했다. 몽타주 이미지가 훌륭했고 감각적인 편집과 촬영은 두말할 것 없었다. 영화를 틀자마자 바로 빠져들기 시작했고 3시간의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영화에는 서로 간의 연관성이 모호한 9명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다중 플롯으로 이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들 모두는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거나, 과거의 아픔 또는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계기로 인해 그들은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9. 나는 그 당시, 작년에 소중했던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자책감에 빠져 있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몇 개월이 걸렸고 금방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죄악감, 자괴감은 생각보다 나 스스로를 옥죄여오고 있었다.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탓하며 자기 합리화가 가능했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화살이 오롯이 나 자신만을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빠져나올 길은 요원해 보였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혐오감이 들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극단적인 생각마저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일 년 가까이 죄악감에 빠져있던 그런 시기에, 나는 이 영화를 접했다. 그리고 영화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소중한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던 사람 또한 나 자신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건 내가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죄악감과 미안함을 평생 안고 가는 거랑은 별개다. 다만 과거를 똑바로 마주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이전과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매그놀리아> 또한 과거를 마주하며 역설적으로 미래를 이야기하는 영화였다. 내 부족함과 미련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나자 그제야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변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용기를 얻었다. 최소한 이전과 같은 잘못은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할 수 있게 됐다. <매그놀리아>의 개구리 비처럼, 변화의 계기는 느닷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매그놀리아>야말로 나에게 단비 같은 영화였다.
10. 원래는 이런 글을 쓰려던 건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글이, 영화가 나를 이렇게 이끌었다. 나도 여전히 내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렇게 영화들을 나열해 보니 약간은 알 것 같기도 하고. 단순히 좋아하는 '인생 영화'가 아니라, 내 인생 자체에 큰 영향을 끼칠 그런 영화들의 리스트를 앞으로도 계속 채워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