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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수 Dec 31. 2021

2021년 영화 결산

올해의 영화 BEST 10, 영화제 감상작, 그 외 주목할만한 영화들


올해의 영화 10편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어 극장 개봉한 작품 기준.


1. 드라이브 마이 카(Drive My Car, 2021) - 하마구치 류스케

2. 그린 나이트(The Green Knight, 2021) - 데이빗 로워리

3. 해피 아워(Happy Hour, 2015) - 하마구치 류스케

4. 파워 오브 도그(The Power of the Dog, 2021) - 제인 캠피온

5. 퍼스트 카우(First Cow, 2019) - 켈리 라이카트

6. 스파이의 아내(スパイの妻, 2020) - 구로사와 기요시

7.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2019) - 래지 리

8. 프렌치 디스패치(The French Dispatch of the Liberty, Kansas Evening Sun, 2021) - 웨스 앤더슨

9.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The Last Duel, 2021) - 리들리 스콧

10. 돈 룩 업(Don't Look Up, 2021) - 애덤 맥케이


<드라이브 마이 카>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본 순간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연코 올해의 영화라 할 수 있을 듯.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 그러나 결국에는 말로 전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동시에 영화언어에 대한 찬사이자 우리가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준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조만간 따로 글을 발제해서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다.


<그린 나이트> 마초성과 영웅 서사의 해체를 통해 고전 신화를 훌륭하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영화 곳곳에서 묻어 나오는 점이 인상적. <고스트 스토리>에 이어서 다시 한번 데이빗 로워리의 영화에 매료되었다. 지금 시대에도 이런 영화를 찍는 작가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


<해피 아워> 사실 이 영화부터 하마구치 류스케는 충분히 거장이라 부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320분가량의 러닝타임을 별다른 서스펜스 없이도 흥미롭게 이끌어나가는 각본, 그중에서도 대사의 촘촘함이 탁월하다. 출연자들 전부가 전문 배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연기를 끌어내는 디렉팅 또한 훌륭하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이후 영화들에도 꾸준히 이어지는 관계와 소통에 대한 고찰은 이 영화에서도 이미 어느 지점에 도달했다 할 수 있겠다. 마치 인터뷰하듯이 인물을 정면에서 마주 보는 카메라가 인상적.


<파워 오브 도그> 서부극의 주요 테마를 견지하면서 감독의 시선과 현대에 맞게 적절히 변주했다. 영화의 모든 쇼트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베네딕트 컴퍼배치의 연기가 특히 훌륭하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는 이게 처음이었는데, 그의 다른 영화들도 궁금해진다.


<퍼스트 카우> 4:3 화면비의 프레임 속에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답답하게 가두고, 동시에 자연과 생명에 대한 존중, 그리고 두 남자의 우정을 황홀하게 담았다. 같은 카메라로 담았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대비가 강렬하다. 서부 시대를 통해 지금의 시대를 조명하는 시선이 탁월하다.


<스파이의 아내> 고전 일본 영화의 톤을 견지하면서, 탁월한 촬영과 연기, 조명의 활용을 통해 기술적인 면에서 정점에 이른 영화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더 나아가서 우리가 외면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기록영화에서부터 시작된 영화예술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있다. 전쟁범죄를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가 지금 시대의 일본에서 이렇게 제작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 이 영화 또한 조만간 따로 글을 발제해서 풀어낼 예정.


<레 미제라블> 역동적이며, 선동적이고 그렇기에 지금 시대에 걸맞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영화이다. 두말할 것 없는 완성도에, 의외의 서스펜스와 재미까지 겸비했다. 결말이 인상적이며 참으로 탁월한 제목이라고 생각.


<프렌치 디스패치> 활자매체, 저항정신, 예술, 음식, 유머, 그 외 수많은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이다. 웨스 앤더슨 특유의 회화적이고 아름다운 화면이 보는 내내 관객을 사로잡으며, 이 모든 요소를 하나의 잡지 속에 버무려 영상으로 구현함으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감정선을 자극한다. 두 번 보면 더 아름답고 좋은 영화. 개인적으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보다 좋아한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기사도 정신이 유효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마초성을 무너뜨리고 거기에 여성의 시선을 첨가한다. 같은 이야기를 세 번 반복함에도 볼 때마다 새롭고 지루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 각자의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시선들을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배우들의 호연에 더불어 이미 거장의 반열에 들어선 리들리 스콧의 역량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돈 룩 업> 분명 웃으라고 만든 영화인데, 우리는 이미 현실이 영화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편히 웃을 수가 없다. 미국 대통령이 표백제 마시면 몸속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죽는다고 말한 게 불과 작년이다. 기후 위기, 환경오염, 코로나 판데믹, 그 외 기타 모든 지금 현대 사회, 자본주의 구조의 병폐를 버무려 비웃고 조롱한다. '우리 다 X되게 생겼으니까 제발 과학자들 말좀 쳐 들으라'는 영화 속 노래 가사에 심히 공감.



영화제 감상작

BEST 10의 영화들과 견줄 정도로 좋았지만, 아직 국내에 개봉하지 않았거나 수입되지 않은 작품들.


1. 배드 럭 뱅잉(Bad Luck Banging or Loony Porn, 2021) - 라드 주드

2. 히어로(A Hero, 2021) - 아쉬가르 파르하디

3. 소용돌이(Vortex, 2021) - 가스파 노에

4. 괜찮아, 잘 될 거야(Tout s'est bien passé, 2021) - 프랑수아 오종

5. 우연과 상상(偶然と想像, 2021) - 하마구치 류스케

6.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ドロステのはてで僕ら, 2020) - 야마구치 준타


<배드 럭 뱅잉>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영화라 하면 단연 이걸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교사인 주인공이 남편과의 섹스 비디오가 유출된다는 플롯부터, 실제 그 비디오를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영화의 시작, 몽타주와 내레이션으로 루마니아, 더 나아가서 전 세계의 사회적인 모순과 역사, 코로나 판데믹 등을 싸잡아서 조롱하는 영화의 2막, 학부모 청문회가 열리는 3막, 충격적인 결말까지. 영화의 모든 요소가 파격적이었고 그 냉소적인 시선과 유머 코드가 제대로 취향 저격이었다. 영화의 수위 때문에 정식 수입이 불가능한 영화라는 게 못내 아쉬울 뿐. 한국영상자료원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에서라도 틀어주길 기원한다.


<히어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명성을 얻은 아쉬가르 파르하디의 신작. 감독의 전작들에서 이어지는 현대 이란 사회를 조명하는 날카로운 시선은 여전하다. 대중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며, 당사자들에게 한없이 폭력적이게 다가오는 현대 미디어의 가학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영화.


<소용돌이> <돌이킬 수 없는>, <클라이맥스> 등의 잔혹하고 파격적인 영화로 유명한 가스파 노에의 신작이지만, 이 영화는 자극적인 연출과 플롯 대신 치매 노인 부부의 담담한 이야기를 그린다. 화면을 양쪽으로 분할해 한쪽은 치매에 걸린 아내를, 다른 한쪽은 남편을 동시에 조명하며 이를 통해 치매에 걸린 노인들이 겪는 고독과 아픔을 더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참신한 연출 방식도 인상적이지만, 남편 역에 이탈리아 지알로 장르의 거장 감독인 다리오 아르젠토가 분하며 사멸해가는 장르, 그리고 영화예술에 대한 안타까움도 묻어난다.


<괜찮아, 잘 될 거야> 안락사를 원하는 아버지와 그를 대하는 딸들의 이야기. 죽음 앞에서 각자가 이기적이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통해, 상처 없는 이별이라는 허상을 그려낸다. 여러 가지 고민할 화두를 던져 주면서도, 무겁게만 다루지 않고 소소한 유머도 담겨 있어 보기 편하다.


<우연과 상상> 에릭 로메르의 스타일을 이어받아, 제목 그대로 '우연'에 의한 3개의 소소한 단편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영화적인 순간들을 그려낸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특유의 맛깔난 대사와 각본의 힘이 있고 의외의 유머가 녹아 있다.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 유독 '건질 만한' 작품이 없던 올해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영화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비슷하게 참신한 아이디어를 아기자기한 규모로 구현한 영화. 일본 영화 특유의 따뜻한 정서가 녹아 있어 좋다. 정식 수입 기원.



취향저격 장르영화

이건 오롯이 내 취향대로 골랐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정말 재밌게 감상했던 영화들. 이 리스트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듄(Dune, 2021) - 드니 빌뇌브

할로윈 킬즈(Halloween Kills, 2021) - 데이비드 고든 그린

고질라 VS. 콩(Godzilla vs. Kong, 2021) - 애덤 윈가드

말리그넌트(Malignant, 2021) - 제임스 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Spider-Man: No Way Home, 2021) - 존 왓츠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Zack Snyder's Justice League, 2021) - 잭 스나이더

라스트 나잇 인 소호(Last Night in Soho, 2021) - 에드가 라이트

피어 스트리트 3부작(Fear Street, 2021) - 리 자니악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Evangelion: 3.0+1.0 Thrice Upon a Time, 2021) - 안노 히데아키


<듄> 나는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정말 좋아한다. 그 영화의 압도적인 비주얼에 매료되었었고, 그런 시청각적인 측면에서 <듄> 또한 더없이 훌륭했다. 집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화를 시청하는 게 당연해진 지금 시대에, 그래도 극장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만 같은 영화다.


<할로윈 킬즈> 슬래셔 호러 장르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할로윈 시리즈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수많은 시리즈의 망작들이 있었지만  카펜터의 원작을 계승한 전작 <할로윈>(2018) 고전 슬래셔 장르를 현대적인 여성 서사로 재창조한 훌륭한 장르 영화였다. 그리고  후속작인  영화는 전작과 결이 많이 다르지만, 지금까지의 시리즈 통틀어서 가장 고어하고 마이클 마이어스의 포스 또한 최고다. 장르적인 재미는 두말할  없고, 거기에 더해서 지금의 미국 사회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 또한 약간 과하게 느껴지지만 이게 또 나름대로 좋다. 지금의 할로윈 시리즈는 슬래셔 장르가 2020년대에 어떻게 계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고질라 VS. 콩> 일본 고전 고지라 시리즈를 정말 좋아하지만, 사실 할리우드의 고질라 시리즈는 조금 미묘한 구석이 있었다. 이 시리즈의 정체성이 사라진 듯한 느낌? 뭐 그래도 나름대로 블록버스터로서의 재미는 있어서 좋아한다. 전작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는 불필요하게 긴 인간 파트로 관객들의 짜증을 유발했는데, 이번 영화는 그 피드백을 확실히 받아서 러닝타임 내내 관객이 원하는 모든 요소들을 빠짐없이 보여준다. 고전 시리즈와 수많은 애니메이션, 특촬 장르에 대한 오마주까지 넘쳐흘러 감독의 이 장르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고 같은 팬으로서 영화 내내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올해 극장에서 제일 재밌게 즐긴 영화 중 하나.


<말리그넌트>  영화는 정말 영리한 영화다. 기본 바탕은 이탈리아 고전 지알로 영화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초반부는 호러, 중반부는 수사 스릴러, 후반부는 액션 탈바꿈하며 장르를 자유자재로 변주한다. 이미 장르 영화계에서는 일정 반열에 오른 제임스  감독이 본인이 하고 싶던 모든 것들을 전부 버무린 영화라   있겠다. 보는 내내 감탄을 금하지 않을  없었던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MCU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끔찍이도 싫어하던 나였지만 지금까지 나온 스파이더맨 영화 중 가장 감정적인 울림을 준 영화였다. 이전 시리즈의 빌런들이 다 같이 출연한다는 이벤트성 기획 이외에도,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본질을 담아낸 영리한 각본이 빛을 발했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잭 스나이더의 DC 유니버스 히어로 영화들을 좋아했고 <배트맨 v 슈퍼맨>마저 좋아하던 나였지만, <저스티스 리그>(2017)은 도저히 눈 뜨고 봐줄 만한 영화가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영화에 외부적 요소의 개입이 많았다는 확신이 들었고, 감독의 온전한 비전을 볼 수 있길 기원했다. 기적적으로 '스나이더 컷' 이벤트가 성사되어 이 영화가 공개되었고,  분명 전체 플롯은 똑같은데도 이렇게까지 영화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자고로 영웅 서사는 이런 방식으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


<라스트 나잇  소호> 에드가 라이트가 본인이 잘하던 장르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했다. 감독의 스타일을 애정하고 호러 장르를 좋아하기에 기대가 많았고 사실  영화가 그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감각적인 연출과 비주얼은 여전하다. 당시 시대와 지역에 대한 애정도 녹아 있으며, 강간 문화 속에서 여성들이 겪게 되는 공포를 시청각적으로 호러 요소로 구현한 점이 인상적. 당연히 장르적인 재미 또한 충분.


<피어 스트리트 3부작> 슬래셔 호러, 킬링 캠프, 마녀 사냥 이렇게 3개의 장르를 각각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세 편에 담아, 종국에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 짓는 구성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 딱이었다. 소수자들이 받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메인 플롯이고 장르적인 재미도 충분하지만, 의외로 고어한 장면들이 꽤 있으니 시청 시 주의가 필요.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어린 시절 TV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사랑하던 팬으로서 이 영화는 내 어린 시절에 대한 헌사와 작별인사와도 같았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 더 나아가서 팬들 개개인에 따라서 영화가 다가오는 지점의 간극이 매우 클 정도로 개인적인 영화이지만, 그 속에 녹아 있는 감독의 세계관 변화, 지금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성장에 대한 이야기는 내 심금을 울렸다. 앞으로도 영화 보면서 이렇게까지 눈물 쏟을 일은 드물듯. 원래대로라면 BEST 10에 들어갈 영화였지만 국내에는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로만 공개되었기에 제외했다.



그 외 주목할만한 영화들

아미 오브 더 데드(Army of the Dead, 2021) - 잭 스나이더

콰이어트 플레이스 2(A Quiet Place: Part II, 2021) - 존 크래신스키

아네트(Annette, 2021) - 레오스 카락스

크루엘라(Cruella, 2021) - 크레이그 길레스피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The Suicide Squad, 2021) - 제임스 건

올드(Old, 2021) - M. 나이트 샤말란

뉴 오더(Nuevo orden, 2020) - 미셸 프랑코

연애 빠진 로맨스(2021) - 정가영

모가디슈(2021) - 류승완


<아미 오브  데드> 누가 봐도  만든 영화는 아니다. 오프닝 시퀀스만 인상적이고 영화적인 완성도는 솔직히 별로다. 그래도 좀비 장르와 케이퍼 장르를 흥미롭게 결합했다는 점에서 볼만했다. 그냥 내가  장르를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고. 어쨌든 필요 이상으로 저평가받은 영화라는 소견.


<콰이어트 플레이스 2> 세계관을 매력적으로 확장하고, 전편보다   막히는 서스펜스를 배가하며 매력적인 시리즈로 거듭났다. 사운드 디자인 때문에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 상영 내내 숨도  쉬고 봤다. 다음 편도 벌써부터 기대 .


<아네트>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전작들을 좋아하지만, 솔직히 이 영화는 아직도 나에겐 잘 모르겠다. 감독의 전작들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거나, 아니면 감독이 삶에서 겪어왔던 인상적인 이미지를 영화 언어로 구현하는 등의 목적이 보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감독이 우리에게 뭘 보여주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뭐, 그냥 내가 영알못이라서 그럴 수도. 그리고 뮤지컬 장르인데 노래가 취향이 아니었던 것도 마이너스 요소. 그래도 어쨌든 비범한 시도였고 레오스 카락스 아니면 만들 수 없던 영화다.


<크루엘라>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고 엠마 스톤과 엠마 톰슨의 강렬한 연기는 인상에 남아있다. 이 영화는 음악이, 배우가 어디까지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이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이 영화에서 폭력을 다루는 표현 방식은 솔직히 많이 불편하고 불쾌하다. 그럼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은, 제임스 건이 이 영화에 적임자였다는 것이고 팬들이 요구하는 바를 멋지게 구현해냈다는 것이다. 최소한 전작보다는 훨씬 낫다.


<올드> 대다수의 영화 팬들에게 M. 나이트 샤말란은 이미 조롱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인 것 같지만, 나는 <애프터 어스>와 <라스트 에어벤더>를 제외한 그의 모든 영화들을 좋아한다. 이 영화는 참신한 소재로, 약간은 뻔한 반전을 곁들여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구현해냈다. <올드> 정도면 그래도 객관적으로 봐도 재밌는 영화지 않나? 이제 샤말란 그만 좀 까자.


< 오더> 마케팅을 기생충에 버금가는  그런 식으로 했던데,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자본계급과 사회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가 들어가 있지만,  영화는 <기생충>보다는   전복적인 서사에 가깝지 않나? <기생충> 의외로 자본계급 친화적인 영화였고. 어쨌든 뻔한 이야기를  파격적인 묘사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최소한 결말은 인상에 깊게 남았다.


<연애 빠진 로맨스> 정가영 감독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직접 접해본 적은 없었는데, 사실 이 정도로까지 노골적일 줄은 몰랐다. 뭐 까놓고 말해서 저속하고 내 가치관이랑은 억만 년쯤 떨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공감은 안되는데, 그런 정반대의 사람들마저 웃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대사가 찰지고 각본이 매력적이다. 뻔한 상업영화로 흘러가는 후반부는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기대 이상으로 재밌게 봤다. 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궁금해졌다.


<모가디슈> 전작 <군함도>로 온갖 욕을 다 먹었던 류승완 감독이, 대중적으로 어필할 만한 소재로 다시 돌아왔다. 감독의 역량을 한계까지 드러낸(그래서 이 이상으로 더 나아가지는 못하는) 무난한 완성도에, 깔끔한 각본으로 군더더기 없는 영화가 탄생했다. 그리고 충분히 감정 과잉으로 흘러갈 수 있던 결말부에서 톤을 절제한 부분은 정말 좋았다.



올해 미처 감상하지 못한 영화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왜 이 영화들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건지 의아했을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한데, 내가 아직 못 봐서 그렇다. 아래는 꼭 봐야지 하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영화들이다. 내년에는 꼭 볼 거다.


자마(Zama, 2017) - 루크레시아 마르텔

피닉스(Phoenix, 2014) - 크리스티안 페촐트

소울(Soul, 2020) - 피트 닥터

쁘띠 마망(Petite Maman, 2021) - 셀린 시아마

자산어보(2021) - 이준익



마무리

 올 한 해도 다 갔다. 왓챠피디아를 보니, 재감상 포함해서 일 년 동안 본 영화가 정확히 150편이다.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정말 많이 봤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의외로 적어서 놀랐다. 못해도 200편은 봤을 줄 알았는데. 아마도 드라마 본 시간이 많아서 그런 거 같다.

 내년 되면 대학원 생활도 시작이고, 여러 가지 큰 변화가 있을 거 같다. 올해도 영화 좋아하는 많은 분들을 만났고(SNS 클럽하우스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여러 일들이 있었다. 시간이 너무 빨라서 이대로만 가면 서른도 금방이겠다는 느낌인데, 뭐 아무렴 어떤가. 내년에도 올해만큼 영화를 볼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래도 이미 영화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지 오래라, 이 취미는 죽을 때까지 가져갈 거라는 확신이 있다. 내년에도 좋은 영화들과 많이 만나길 바래본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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