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발자국
남편과 출발한 산책길엔 내내 구름이 낄 줄 알았는데 야속하게 하늘이 갰다. 이제는 정오의 햇빛에 잠깐만 스쳐도 따가움이 느껴진다. 놓고 온 양산이 그리워졌다. 비가 올 것 같았던 날씨답게 공기는 습기를 머금었다.
순식간에 심장이 가슴을 두들겨대고 눈앞이 흐려졌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늘이 다섯 발자국 남은 자리다. 다섯 발자국을 더 갈 수가 없어 남편에게 손짓을 했다.
‘그늘에 들어가.’
남편은 이내 해를 등지고 나를 향해 섰다. 작은 그늘 안에 내 그림자가 먹혔다. 손짓이 너무 작아 못 알아 들었나 싶지만 팔을 들 힘도 고개를 들 힘도 없다. 다섯 걸음만 가면 되는데. 다섯 걸음만.
담벼락엔 장미가 타오르듯 피었고 위잉 위잉 벌이 날아다닌다. 위잉 위잉. 서러운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