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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규영 Sep 29. 2019

작가는 어떻게 주제를 녹여낼까

주제란 어떻게 다루어야하는가

    다른 작가들은 주제를 어떻게 녹여낼까. 예시를 들지 말고 우리가 직접 해보자. 온 우주에 '주제'가 가득한 세상으로!


    1. 무엇에 대해서 쓸까.

    나는 요즘 감정 노동1)에 관심이 많다. 인간대 인간은 무엇으로 격이 나누어졌고, 그 격이 무어라고 사람을 상처 주는가. 배려가 몸에 배지 않은 인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갑과 을, 폭언, 갑질, 꼰대. 많은 어휘들이 떠오른다.

    일차원적으로 쉽게, 그 당사자들을 모셔놓을 수 있다. 주인공을 갑질 하는 사람, 갑질 당하는 사람으로 둘까. 너무 단순한 주인공일까. 그런 사람을 두면, 나는 글 쓰는 내내 징징거리다 끝날 것이다. 무엇으로 할까. 감정노동이라는 단어를 포갤 수 있는 최적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상처는 입기 쉽고, 입히기도 쉽다. 그런 관계일 것이다. 피의자의 약간 짜증이, 피해자에게는 그 날의 컨디션을 망가뜨리는 요소가 될 것이다. 약간의 짜증, 그 역린. 당하는 사람은 어떨까. 먹고살아야 하니까 맞설 수 없다. 맞설 수가 없다. 맞선 대도 승산이 없다. 참는다. 묵묵하게. 또 참는다. 그러면 그게 필요하다. 위안, 위로, 술. 힐링. 그 치유가 없이는 버텨낼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그게 곧 주인공이 될 테다.


    2. 어떤 세계여야 하나?

    실제 세계여야 한다. 그냥 당신 옆의 누군가처럼 상상하라. 노력만큼 얻어야 하고, 위로해주는 사람도 있을 거고, 막 대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러나 '나'는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주인공은 이 세계가 갑과 을로 나누어진 척박한 곳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 만큼 간절한 을의 태도를 취해야 한다. 당신이 나를 죽이고 물어뜯어도 저는 저항할 수 없어요. 그런 표정이다. 판정패를 확신한 복서처럼. 주먹에 힘조차 넣기 힘든 일그러진 표정. 벅찬 표정. 그런 '내'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친구를 만나고, 일을 한다.

    주인공이 아니라 내 자신이 떨어지더라도 같은 표정이 될 것 같은 세계.


    3. 왜 그런 세계를 맞이했나?
    왜 주인공은 그렇게 되었을까, 어째서 세상이 주는 불쾌함을 묵묵히 참고, 그것만으로 버거운 걸까. 영웅처럼 개의치 않고 거사를 도모해도 되지 않을까? 무엇이 그를 그런 성격으로 만든 걸까.

    현재의 내가 절망스럽다면, 미래를 꿈꿀 수 없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꿈이 있는 사람인데 그걸 이루어내기엔 지금이 너무 벅찬 느낌이어야 할 거다. 뭐로 할까. 구체적이지만 허망한 꿈. 가수? 밴드, 기타? 드러머? 보컬리스트가 꿈인  안규영이 주인공이라 치자. 꿈이지만, '갑'들이 보기에는 허황된 꿈. 너무 좋다. 열심히 달려가더라도 스펙으로 남지도 않고, 가수처럼 막 잘하는 것도 아닌, 그런 것.

    가수를 꿈꾸는 안규영은, 이미 어떤 것이든 직업을 가졌던 '기성세대'의 감정 폭력을 당한다. 그들에게 나는 허황되고, 멍청하고, 세상 물정 모르고, 애고, '남들은 취업 하'고.

    그런 말은 않을 수 있다. 그저 같잖으니까, 폭언이 제멋대로 튀어나올 뿐이다. 뇌의 모든 기재가 규영을 하대하라고 명령할 수도 있다. 무시하고, 반말하고. 그게 몸에 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4. 첫 문장으로 세계 열기

    (나는 쓰면서 내용이 구체화되는 체질이라 여기서 바로 넘어가지만, 여러분들 중 '더 완벽한 계획'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인물마다 '전사前史2)'를 써보길 바란다. 그래도 안 된다면 주제와 관련된 큰 뉴스거리가 있나 확인해볼 것. 그것마저도 안 된다면 오랜 기간을 걸쳐 떠오르는 장면들을 문장으로 만들어서 짜깁기하듯 이야기를 이어볼 것.) 첫 문장을 써보자. 어떤 목소리가 들려야 할까? 영화라고 생각해도 좋다. 새까만 배경에서 어떻게 스크린을 열 건가. 말로? 풍경으로? 이 경우는 풍경이 좋겠다. 글 내내 우울할 거라서 말로 갑자기 시작할 필요가 약한 것 같다.


    노래방 가기를 좋아하는 안규영은 코인 노래방에 갔다. 처음엔 마이크와 동전 정도를 보여주고, 알바 가는 안규영을 보여주면 좋은 것 같다. 지금은 글 쓰기 느낌이 안 와서 잘 못 쓰겠는데---.


    "반 평 남짓한 방에 규영이 들어선다. 좁다. 용은 개천에서 나야 멋이 있으므로, 좋다. 다만, 용이 아니라서 개천에 있는 줄은 그도 모른다."


    무슨 강점기 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나름 읽을만한, 의미가 스며든 문장이긴 하다. 좀 다듬어서 현대에 맞게 바꾸어보자.


    "반 평 남짓한 청소년실, 코인 노래방에 규영이 있다."


    의미를 많이 빼고 장면만 넣었다. 무슨 각본의 서술 같다. 그러나 장면을 떠올리기 괜찮아졌다. 여기에 목소리(말투)를 넣으면,


    "노래방 방음부스의 문이 닫힌다. 반 평. 좋다, 좁다. 규영만 좋았다."


    서술자의 색이 짙어졌다. 서술자란, 주제를 자기의 욕구대로 보여주는 인격이다. 즉, 주제가 짙어진 것이다. 첫 문장으로는 그닥일 수 있겠다만, 주제를 삽입했다는 점을 유의해주길 바란다. 그럴듯한 서술자가 있다면, 주제는 절로 따라온다. 이 경우는 가련하고, 덤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좋다'라는 단어가 문체의 목소리를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현실이 어떻든.


    이런 목소리와 세계를 유지하고, 키워드를 떠올리며 글을 쓰면 대체로 주제 자체는 문제가 없다. 주제에 맞는 결말이 나야 하는 것도 있겠지만3), 개연성에 의존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샛길로 나갈 틈이 없을 것이다.


1)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자신의 감정을 숨겨야 하는 직종. 이라고 되어는 있던 것 같으나, 대개 언어폭력에 시달리며 감정에 상처를 받는 경우를 말한다. 그 언어폭력이 폭력인 줄 모르는 세대의 사람들이 있으니, 딱히 누가 잘못도 잘한 것도 없다고 봐야 하겠다. 우리는 작가니까.


2) '소설로 쓰이기 이전의 이야기'라고 이해하자. 우리가 흔히 아는 '흥부와 놀부'에서, 흥부가 자식 여럿을 낳고 난 뒤가 '이야기 시작'이라면, 흥부와 놀부가 형제로서 같이 살던 때가 전사다.


3) 주제와 이야기는 어느 정도 동거 동락하는 바가 있다.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것이 '상징'으로 가득 채운 '풍자'다. 행복해 보이는 동물들의 귀여운 모습을 그리던 것이, 갑자기 슬프거나 잔혹하게 변한다면, 분명 그곳엔 우울한 키워드가 있었을 것이다.4)


4) 그렇게 좋은 방법은 아니다. 숨겨두는 것은, 숨겨서 못 찾았을 때의 탈출구(상징을 몰라도 이해 가능한)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경우 서사의 파괴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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