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을 하는 것에 대하여

시작점에서 간격이 벌어지면 헛발질을 한다

by 김지훈

오목의 첫수를 잘 두는 편이다. 내가 둔 수에 따라 상대방이 둔 수를 보고, 여러 갈래의 길을 미리 계산한다. 신기하게도 하나의 수를 두면서 여러 갈래의 길이 금방 보인다. 그래서 그런가. 한 번뿐인 인생을 살면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많은 일들을 병행한다. 강의를 하면서 글을 쓰고, 글을 쓰면서 교육 사업을 하고, 교육 사업을 하면서 책모임을 운영한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나를 두고 '넌 참 용기가 있다'라고 말한다.


나를 두고 용기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뭐든 시작을 잘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시작을 한다는 것은 애초의 시작점으로부터 한 발자국 벗어난 일이기도 하다. 시작점을 벗어났다는 것은 이미 책임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반증이다. 시작을 기획하는 일은 재밌으나 시작점에서 벗어나 시작을 벗어던지면, 책임 회피가 돼버려 본인에게나 주변 사람에게 실망을 안겨준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 한다. 중도포기를 선언하면, 비난의 화살이 내게 꽂히고 화살을 맞은 나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짝꿍처럼 내 옆에 붙어서 함께 인생을 걸어가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시작을 경험한다. 그리고 시작점에서 간격이 벌어져 목적지가 갑자기 눈에 띄면, 설렘이 증폭되어 헛발질을 하고 미끄러지는 경험을 수 없이 하고 산다. 나는 내 자아랑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 하루에 한 번씩은 "이만 미끄러지면 되었지" 하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물론, 그 행위와 관계없이 목표 앞에서 여전히 미끄러지고, 오늘도 미끄러졌다.


내가 목표 앞에서 미끄러져 아픔을 경험한 첫 시기는 중학교 1학년 때이다. 중학교 1학년의 시기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넘을랑 말랑 하는 사이라고 보는 게 좋겠다. 그래서 14살의 많은 어른 아이(?)들은 선택을 한다. 대부분 어른이 더 힘이 세고 멋지다고 여기기에 어른을 선택하고, 어른처럼 행동하려 부단히 애를 쓴다. 하지만 삶을 많이 경험할수록 안다. 어른보다는 삶을 순수하게 볼 줄 아는 아이가 더 멋지다는 것을.


아무튼 중학교 1학년이 되면, 내가 어른이기에 할 수 있는 게 참 많을 것 같고, 실제로 해야 할 게 엄청 많이 주어진다. 과제, 시험, 대회까지 줄줄이 사탕처럼 줄을 선다. 그만큼 바라는 건 아니었는데 삶은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에게 너무 많은 걸 바란다. 그리고 그 많은 것들을 수많은 어른 아이들은 미안하게도 해내고 있다. 나 역시 많은 것들을 그 시절에 해내고 싶었다.


한 번은 영어 말하기 교외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교내 대회 예선에 나간 적이 있었다. 당시 집안이 많이 가난했는데, 교외 대회에 나가 상을 타면 집안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예선 통과가 간절했다. 그런데, 예선에서 영어로 입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냥 교실 밖으로 나가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내 인생 처음으로 탈락의 아픔을 마주했다. 인생 전체가 날아간 건 아니었겠으나 인생 전체가 날아간 기분이었다. 그때 동네 골목의 어느 집 문 앞에 앉아 한참을 고개 숙이고 얼마 안 되는 삶을 돌아봤다. 아마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내가 내 등에 무언가를 '어부바' 하고 있다는 것을. 그게 이른 나이부터 참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