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점에서 벗어나면 어부바 자세를 취해야 한다
"나 좀 업어줄 수 있어?"
대학교 때 만났던 여자 친구의 말에, 과감하게 등을 내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뒤에서 꼭 안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을 작은 내가 지탱하고 있다는 것. 내가 경험한 어부바 중에 가장 설레던 것이었다. 그녀의 심장이 내 등에 닿아 콩닥 소리가 더 잘 들렸고, 등에 청진기가 있다면 그 소리를 더 크게 듣고 싶을 만큼 자극적이었다. 그때 나는 헐크가 되었다는 상상으로 어부바를 하고 엄청나게 많은 걸음을 걷고 싶었으나, 나는 헐크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자각하고, 그녀를 편안한 자리에 안착시켜주었다.
"너 얼굴 보고 걷고 싶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말이었으나, 그녀의 표정으로 봤을 때 아마 내 말이 '찌질이 같았다'라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쓸데없이 눈치가 빨라 타격도 잘 받는 편이었으므로, 얼른 힘을 길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뒤 나는 밤마다 헐크가 되기 위해 푸시업을 100개씩은 했다. 지금은 특별한 필(Feel)이 올 때 푸시업을 50개씩은 한다. 목표량을 줄이고 빠른 성취감을 느끼는 방법은 자아도취를 금방 하는 것이다.
'너 방금 굉장히 어려운 자세로 푸시업 했어. 50개면 대단한 거다.'
그리고 남은 50개의 할당량은 마음속 쓰레기통에 집어던지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너 아까 전에 엄청 뜨거운 남자였어'라며 금방 자아도취를 시키는 것이다.
'아, 아름다운 밤이구나.'
우리는 누구나 어부바를 하며 살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어부바를 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 학생 때는 성적을 받기 위해, 사회인이 되면 돈을 벌기 위해 어부자 자세를 취한다. 각자의 등에 얹힌 무게는 본인이 가장 잘 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나 자신의 기대와 역할을 우리의 등에 얹힌다. 어부바 자세를 내리면 혼자 걸어가야 하는데, 외롭게 혼자 살아갈 인간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인간은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할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간은 힘들어도 어부바를 한 채 살아가고, 자세가 어긋나 삐끗하면 몸과 마음이 아파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기본적으로 스트레스를 달고 산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는 만병통치약처럼 불금만 되면 여러 방언과 뒷담화로 아주 잠시 해소가 된다. 필수품은 이슬이 가득 담긴 초록색 병이다. "짠"이라는 신호와 함께 모두가 금세 행복해지니 참으로 행복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불금의 행복감은 월요병을 달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피로감을 준다. 매번 어부바를 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어부바 자세를 취하고 싶지 않게 할 만큼 불금은 잘못 즐기면 마약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어부바를 잘할까'이다. 우리는 일을 하며,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으며, 사랑하는 이와 평생을 약속하며 어부바를 한다. 때론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 새로운 사랑을 만나 또다시 어부바 자세를 취한다. 살면서 수많은 시작점 앞에 서서 무게를 등에 얹히고 걸음을 떼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내가 강의를 하고, 글을 쓰고, 교육사업을 하며, 책모임을 운영하는 일은 매년 도전에 가깝다. 그리고 그 도전에는 책임이 동반된다. 아무래도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는 나 스스로 짊어져야 할 무게가 많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참 잘하고, 내가 생각한 이상들을 끊임없이 믿어준다. 주변 사람에게 이상이란 아직 나타나지 않은 현실이기에 말로써 전달하면 허공에 빙빙 돌지만, 내게 이상은 곧 나타나는 현실이다. 그렇게 내가 믿음을 가지면 시작점 앞에서도 어부바를 한 채로 금세 출발할 수 있다. 물론 어부바를 잘하기 위해 푸시업도 하고, 마라톤도 하고, 책도 읽고, 사색에 빠지는 등의 여러 훈련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