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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훈 Oct 02. 2020

예전의 우리는 될 수 없는 것이다

"미안해요..."

'미안해요'라는 말이 나오면, 뒷말이 필요가 없어진다. 상대방의 표정과 목소리, 그리고 내 가슴에 이미 전해진 통증으로 인해 그 의미를 매우 잘 알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을 하고 싶은 순간, 내 일을 확장하고 싶은 순간, 새로운 사업을 수주하고 싶을 때 들리는 '미안하다'라는 말은 잠시 사람을 절망에 빠트리기도 한다. 

 내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고, 한 해의 내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바랄 때 '미안하다'라는 말보다는 '고맙다'는 말이 먼저 들리길 바라는지도 모른다. 

 '당신이어서 고마워요.'

 '이 일을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인간은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때 자존감이 높아지고, 지금보다 좀 더 제대로 살아야 할 가치를 느낀다. 자존감이 높아지는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믿어줄 때, 그리고 내 분야에서 내가 인정을 받을 때 나타난다. 자존감은 무리 지어 있을 때 나타나기도 한다. 같은 소속으로서 나와 동일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고, 친하다는 믿음이 존재한다면 행동에 거리낌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 무리가 만드는 문화가 있고, 그 문화는 내 주변을 감싸는 방어벽이 될 수도 있다. 그 방어벽은 내게 좋을 수도,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잠시 독립적으로 떨어져 보는 순간이 없다면, 오랜 시간 한 무리에 소속되어 같은 행동을 반복할 수도 있다. 



 대학교 2학년 때 나는 한 무리에 깊게 소속되어 있었다. 

 "야. 뭐하냐. 술이나 마시러 가자."

 "아. 왜 공부해야 돼."

 "홍당무 지금 헤어져서 공부 안된대. 우리 찾으려고 도서관 엄청 어슬렁거리고 있어."

 "아 진짜 걔는 왜 시험기간에 차이고 있어."

 나는 주섬주섬 짐을 싸고 있었다. 홍당무를 위해서 어차피 짐을 쌀 거였지만, 투덜거리면서 나왔다. 늘 그랬듯이 도서관 밖에는 다섯 명의 친구들이 모였다. 시험 기간에 도서관을 박차고 나온 게 좋은 건지, 날이 추워서 다들 뇌가 이상해진 건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지훈이형, 왜 이렇게 늦게 나와! 동생 헤어졌다는데 공부가 돼 지금?"

 " 너는 왜 바보 같이 지금 헤어지고 난리야. 술은 너 혼자 마시면 될 거 아냐!"

 나는 조금은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의지로 도서관 입구에 붙어서 홍당무에게 조금은 따져 보았다. 물론, 우리 무리로 봤을 때 나를 도서관에 두고 본인들끼리 술을 마시고 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 친구들은 본인들만 시험을 망칠 행위는 절대 하지 않을 아주 웃긴 위인들이었다.  

 "아 몰라. 내 인생 망쳤으니까, 다 같이 시험 망쳐야 돼. 아니. 여자친구가 시험기간인데 문자 5분에 한 번씩 안 한다고 뭐라 하는데 어떡해 그럼!"

 늘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보다 술을 마셔야 할 이유가 더 강했다. 인생 사 쓰지 않은 경험은 없지만, 5분에 한 번씩 문자 안 한다고 이별을 겪는 사연도 쓰라리긴 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겨?"

 "너 잘못한 것 없어. 술이나 마셔..."

 "오늘 다 같이 밤새는 겨. 지훈이형 중간에 자면 복도로 던져버릴 테니까 그런 줄 알아."


 2학년 때 학과 생활을 하면서 선후배 격식 없이 친해진 무리여서 그런지, 격의도 없고 예의도 없었다. 그래도 선이 없을 때 들어오는 진한 우정이 느껴져 좋았다. 내가 아플 때 악을 써도 받아주는 친구가 있고, 때로 그 친구의 잘못이 아닌데 그 친구의 잘못인 양 떠넘기며 장난치는 경우도 많았다. 누군가 힘들고 좋은 일이 있을 때면 귀신 같이 알아내 삼삼오오 모였다. 평생을 만날 것 같은 친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때로 공부를 놓아도 더 좋은 시간을 얻는 것만 같았다. 어제 본 얼굴인데 학교에서 만나면 또 반가울 정도로 내게는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그렇게 늘 가족일 것만 같던 우리인데, 늘 좋지만은 않았다. 정확히 표현하면 나쁜 상황이 내게 왔다. 늘 내편에서 귀를 기울이고, 내 입장에서 싸웠던 친구가 본인이 원하는 것이 눈 앞에 있을 때 나를 놓은 일은 내게 충격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정이 많은 나였지만, 내 친구들이 본인들이 유리한 순간에 행했던 본능적인 선택과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쌓았던 방어막 앞에 여러 번 실망도 했다. 

 '친구가 내가 생각하는 친구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친구가 친구이기 이전에 자신의 것을 먼저 챙기는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부터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친구에게 친구 다움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대신, 내가 좀 더 정서적으로 강하고 좋은 사람일 때 주변도 좋은 사람이 함께 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지금도 내 몸과 마음에 정성을 기울이는 습관에 좀 더 시간을 들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중한 사람이 함께 하는 것에 대하여 고마움을 느끼고 표현은 하지만, 의무적으로 일정을 잡아서 누군가를 보는 행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시간이 될 때 보고, 시간이 되지 않으면 다음에 자연스럽게 만난다.

  물론, 사회 초반에는 대학교 친구들을 만나 예전처럼 장난도 치고, 대화도 이어나갔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불편함은 내게 찝찝함으로 남았다. 가고 있는 분야가 달라 대화의 소재가 다르기도 했고, 또다시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믿음을 형성하는 과정을 걷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과 갖고 있는 소중한 추억이 많아 나름의 노력도 했지만, 좋은 추억은 그저 좋은 추억으로 머무를 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거쳤던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필요가 있을까...'

 어느 순간,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답게, 지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애써 가면을 쓰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의 나도 나지만, 지금의 나는 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나이기에 가면을 벗기로 했다. 애써 연을 이었던, 나는 별로 말이 없었던 그룹 카톡에서도 나왔다. 지금은 예전의 나도 아니고 예전처럼 행동할 수 있는 우리도 아니기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일부러 얽매일 필요는 없다. 

 미안하지만, 예전의 우리는 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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