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네, 노래를 부르고 싶네
산울림.
팝송에 비해 깔보고 있던 한국의 대중음악에 대한 나의 생각을 뒤집기로 한판승을 거둔 세 명의 김씨 가수.
그래서 세계는 넓고 내가 아는 것은 좁쌀만큼도 안된다는 걸 산을 아름답게 울려서 알게 한 고마운 사람들.
가을에 불러 보는 노래에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를 굳이 집어넣은 이유는 산울림을 말하기 위함이다.
가을과 관련된 산울림의 노래가 있기는 있다.
'소슬바람 가을에 그댈 만났지..'로 시작되는 <가을에 오시나요>가 그것이지만 난 산울림을 만난 그 해 겨울을 말하고 싶다.
1978년 초로 기억되는데, 내 동생이 사 온 한 장의 음반, <산울림 1집>.
중학생 시절부터 즐겨 부르던 <트윈 폴리오>나 <양희은>류의 통기타 음악 혹은 서투르고 여린 고등학생의 감성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감미로운 팝송에 빠져 있던 내 음악 세계를 뒤집으며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듯 영혼을 빠개버린 한 장의 앨범.
그 속에 나란히 있던 노래 <아니 벌써>와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는 기존의 음악과 전혀 다를뿐더러 새로운 것을 찾던 우리 형제에게는 개벽 같은 노래였다.
이별, 편지, 사랑 등의 노래 제목에 익숙한 우리 세대에게 '늦은 여름'도 특이한 제목이지만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라니? 정말 독특한 그들만의 언어와 음악이었다.
산울림의 음악 세계에 빠진 우리 형제는 7집까지 돈만 생기면 사 들였고(주로 동생이었음을 고백하며,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한다) 하루종일 그들의 음악을 들었다.
거의 모든 종류의 기타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동생은 애드리브 및 코드를 따기 위해, 난 그들의 음악 속에서 마음껏 허우적대기 위해......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 깊이 '산울림'에 빠져 있었던 건 그들 노래에 따뜻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울림은 음악평론가들이 뽑는 전설 중의 하나로 꼽히며 나 또한 이의가 없지만 내가 다른 전설들과 다르게 부여하는 또 하나의 의미는 바로 그들 음악의 따뜻함이다.
그 어느 대중가수가 동요집을 그것도 4장이나 발표했던가?
'산할아버지', '개구쟁이', '꼬마야', '고등어' 등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그들의 동요는 가을에도 눈이 다반사로 오는 캘거리에 사는 우리들에게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노래들이다.
얼마 전 우연히 EBS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보게 된 김창완-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그의 미소는 매력적이다-이 기타 치고 세션맨들이 반주하며 부른 '아마 늦은...'을 들으며 지금도 그들에 대한 나의 충성(?)에는 변함이 없음을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도 산울림이 발표한 거의 대부분의 노래 가사를 외우고 있다면 믿어지겠는가?
꼭 그렇진 않았지만/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
나무 사이 그녀 눈동자/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네
잎새 끝에 매달린 햇살/꿈꾸는 듯 아련했어.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우리들은 호숫가에 앉았지
나무처럼 싱그런 그날은/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꼭 그렇진 않았지만/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
나무 사이 그녀 눈동자/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네
잎새 끝에 매달린 햇살/간지런 바람에 흩어져
뽀오얀 우윳빛 숲 속은/꿈꾸는 듯 아련했어.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우리들은 호숫가에 앉았지
나무처럼 싱그런 그날은/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늦은 여름마저도 꽤 지났지만 그렇다고 이 가을에 불러보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늦은 여름으로 연상되는 나른하고 몽환적인 느낌을 다시 한번 맛보려면
이 노래를 들으며 와인 한 잔 곁들이는 것도 가을날의 한 정취가 아닐까?
중간에 기타 독주를 포함해서 길이가 6분이 넘으므로 처음 들으면 지루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 앨범을 통해서 듣기는 거의 불가능하므로 인터넷 방송을 통하여 한 번 들어보면 어떨까....
2008년에 셋째인 김창익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떴지만 그들의 음악은 영원히 남아 있으리라.
산울림이 내 음악 세계를 뒤흔들었다면 송창식은 내 음악의 자양분 같은 사람이다.
단 한 장의 음반만 내고 해체해 버려 아쉬움을 더하는 트윈폴리오 시절부터 지금까지 따라 부르는 노래들,
된장국 같은 음색을 호빵처럼 부풀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목소리,
어느 누구의 목소리라도 강물처럼 깊게 그러나 튀지 않게 받쳐주는 화음,
웃으면 따라 웃게 만들어 버리는 하회탈 같은 미소,
아직도 꾸부정한 자세 그리고 나처럼 아직까지도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60대 팬들까지....
송창식에 대한 모든 것은 생각하기만 해도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그런 송창식의 노래 중 이 가을에 불러 보고 싶은 노래 역시 가을을 약간 비껴간 <철 지난 바닷가(송창식 골든 제1집)>이다.
철 지난 바닷가를 혼자 걷는다
달빛은 모래 위에 가득하고
불어오는 바람은 싱그러운데
어깨 위에 쌓이는 당신의 손길
그것은 소리 없는 사랑의 노래
옛일을 생각하며 혼자 듣는다
아 기나긴 길 혼자 걸으며
무척 이도 당신을 그리곤 했지
아 소리 죽여 우는 파도와 같이
당신은 흐느끼며 뒤돌아 봤지
철 지난 바닷가를 혼자 걷는다
옛일을 생각하며 혼자 웃는다
이 앨범에는 <한 번쯤, 피리 부는 사나이, 맨 처음 고백, 사랑이야, 애인, 상아의 노래>등 송창식 하면 떠오르는 최고의 애창곡들이 담겨 있어서 오히려 '철 지난 바닷가'는 정말 제 철이 아닌 기분이 들지만 바다가 없는 이곳 캘거리에 살다 보면 철 지난 바다가 더 그리워지는 법!
발을 바닷물에 살짝 담그는 기분으로 부르다 보면......
그때 썰렁한 바닷가를 같이 걸었던, 지금은 어느 누군가(그게 나일 수도 있고...)의 아내가 되었을 그 녀의 어깨 위로 조심스럽게 올렸던 왼 팔이 조금씩 들썩거리며 백사장을 수놓았던 발자국들이 잔잔히 떠오르지 않을까?
그런 기억이 없다고?
자, 그럼 Sylvan lake에 가서 바닷가라고 생각하고 아내와 함께 걷다 오면 어떨까?
추억은 만드기 나름이니까.
가을에 부르고 싶은 노래 계속.....
<주> Sylvan Lake:캘거리에서 북쪽으로 1시간 반정도 거리에 있는 호수.
약간의 백사장 모래가 있어 여름이면 인간들로 바글바글 댄다.
https://youtu.be/fuKoZfdHegc?si=ilIC7awB5LoxUl5p
처음엔 1집 앨범 그대로 재생된 영상을 올리려 했으나 아무래도 소리만 나오는 영상보다는 이렇게 창완이 형을 이 기회에 한번 더 보는 게 좋을 듯해서 위 영상으로 대체
https://youtu.be/g_bCLI5Ykeo?si=6LDqUsBNv9vihNmb
창식이 형은 갈수록 관록이 붙어 예전보다 더 보기도 좋고 듣기도 좋다.
미사리 쏭아카페에서 함춘호와 같이 노래하는 영상도 있지만 웬지 위 영상이 더 포근하다.
사실 이 영상도 꽤 오래 전(1991년)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