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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제트 Oct 01. 2023

가을에 불러보는 노래 3

가을이 왔네, 노래를 불러보자

가을에 불러보는 노래 3


추억은 잘 말리면 얼큰한 찌개가 된다.

대충 말려도 먹는데 지장이 없지만 깊은 국물맛은 우러나지 않는다.

개인의 사사로운 지나간 흔적에 불과한 영상들을 맛깔나게 우려내기 위해선 그리고 추억이란 그물로 낚아내기  위해선, 먹음직스러운 곶감이 탄생하기 위해 적당한 햇빛과 바람과 정성이 필요하듯, 몇 가지 각색들이 필요하다.

옛날의 뛰놀던 금잔디라는 동요를 부르면서 '예전에 금잔디가 어디 있었나, 그냥 잡초밭이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뚜껑을 열어버린 콩나물 국처럼 추억은 비릿해진다.

수십 번도 더 불러본 나훈아의 노래 가사처럼 고향의 물레방아는 아직도 돌고 있다고 생각해야 군침이 도는데, 이끼만 잔뜩 낀 아랫동네 김씨네 방아갓을 생각한다면 일찌감치 밥숟가락 놓는 게 상책이다.

 

학창 시절로 채널을 돌려도 맛을 내기 위해선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운동장을 오리걸음으로 돈 기억밖에 안 난다고 아직까지 깡패-대체로 그런 오리걸음을 시킨 선생의 별명은 깡패 아니면 미친개 정도이다-를 웬수로 가슴에 묻고 다닌다면 잘 말리기는커녕 추억을 곰팡내 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렇게 추억을 잘 말리기 위한 정성의 한 가지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다.

다른 하나는 내 주위를 지나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다.

그런 자연산 첨가물이 들어가면 추억은 파가 송송 들어가서 보글보글거리고 두부가 모락모락 땀방울 내는 얼큰한 김치찌개가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추억을 사랑과 따뜻한 마음으로 말리면 기막힌 맛을 내는 김치찌개가 된다.  


그런 김치찌개 중에서 오늘 권하고 싶은 장르는 고삐리-요새는 뭐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겠고 우리 딸들이 high school에 다닐 때는 고딩이라고 불렀고 70,80년대에는 고삐리라고 불렸다. 무서운 고삐리들이라고....- 김치찌개이다.

고삐리 김치찌개 중에서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마지막 교정>이란 요리며, 김의철이란 요리사가 고삐리 시절에 처음 선보인 요리인데 요즈음은 극히 일부의 마니아만 이 요리를 하고 있다. 

김의철이란 요리사(가수)에 대해 여기서 다 얘기할 순 없지만 줄여서 간단히 말하면 70년대 통기타계의 언더 그라운드 가수 겸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라고 보면 된다.  

통기타계라는 별칭은 70년대 대중 음악계에서 방송보다 '세시봉', '르시랑스'등 무대 출신이기에 언더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언더'  중에 '언더'면 어떨지 상상해 보시라.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양희은은 ‘살면서 만난 음악 스승 중 으뜸’이라고 김의철을 평가한다.


이 노래에 대한 사연을 들어보자.

1973년 1월 10일 보성고 졸업식날, 친구들로부터 졸업을 하면 들을 수 없는 의철이의 노래 한곡을 방송을 통해 듣기로 청함을 받은 김의철은 담장을 넘어 친구집에서 기타를 가져와서는 졸업식 이틀 전부터 왠지 쓸쓸하고 정든 사람 정든 장소에 내한 미련을 부르고자 했던 그 마음을 담아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가 교내방송 스피커를 타고 온 교정에 울려 퍼졌다.

"마지막 교정"의 탄생 순간이었다.

부모님께서 사업차 베트남으로 떠나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해 마음이 아팠던 그는 늘 자신을 이해해 주신 박종렬 담임선생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른 이 노래는 말 그대로 학창 시절의 추억과 아픔을 담고 있는 명곡이었다.

김의철은 "그때 단 한번 부르고 버릴 생각으로 노래했던 곡이 " 마지막 교정"이다 고 밝혔다.

이후 음반 발표이전 명동의 "르시랑스"에서 이 노래를 불러 보았다.

노래를 들은 한 평론가는 "멜로디는 너무 아름다운데 가사 내용이 국민학교 학생 수준으로 유치하다"라고 평했다. 자존심을 건드린 평을 들은 그는 "일시적으로 만든 노래라 세상에 내놓지 않으려 했는데 왜 세상에 이 노래를 내놓아 이런 수모를 받는가"생각했다. 하지만 주변의 친구들이 너무 좋아해 계속 청해와 살아남은 곡 "이라고 했다. <출처: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어쩠던 지금은 희귀 음반에 속하는 <김의철 노래모음 (1974, 2003)>에는 <마지막 교정> 외에 <섬아이>, <저 하늘에 구름 따라>등 통기타 가수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들이 많이 들어 있다. 

자, <마지막 교정>을 들어보자.

왜 이 가을에 잘 어울리는 김치찌개인지.... 


마지막 밟는 이 교정에 남길 이 노래는/모든 선생님과 아우들께 띄우리니
내 항상 언제 어디서나 이 노래를 즐겨 부르리니/그리곤 내 이 노래를 항상 기억하리
교정 뒤안에서의 생각나는 이 일 저 일/이제 모두 제각기 갈길 찾아 돌아보리
라- 라라라 라- 라라라

우리 선생님의 지혜로움 내 언제 곤 배우리/언제 곤 나를 잊으셔도 나는 배우리
그리곤 내 이 노래를 항상 즐겨 부르리니/내 항상 언제 어디서나 이 노래를 즐겨 부르리
교정 뒤안에서의 생각나는 이 일 저 일/이제 모두 제각기 갈길 찾아 돌아보리
라- 라라라 라- 라라라  


졸업 시즌도 아닌 이 가을에 이 노래가 생각나는 이유는 빠르게 왔다 쏜살같이 달아나는 캐나다의 가을이 한 원인이다.

예전에 살았던 캘거리를 예로 들면, 제대로 된 낙엽을 감상함과 동시에 눈에 덮인 낙엽을 치우는 도시인데, 요즘 밴쿠버의 우거진 나무에서 우수수 떨어져 뒹구는 낙엽들을 보면서 그 낙엽과 함께 했던 친구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대입 준비와 얼마 남지 않은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하기도 바쁘지만 밤늦게 도서관에서 나와 집에 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 나눴던 개똥철학 얘기들...

우리가 즐겨 쓰던 은어인 꼰데에게 맞은 얘기들..

그러한 모든 것들이 그 당시 우리를 비췄던 별빛과 함께 내 기억 속 한 장을 채우고 있다가 낙엽을 보기만 하면 이렇게 되살아 나와 꺼진 촛대에 슬며시 불을 밝히며 가슴을 촉촉하게 한다.

교정 뒤, 안에서의 이 일 저 일들..

더구나 떨어질 때로 떨어진 아니, 마구 짓밟힌 교권을 생각하면 더 가슴이 아픈 것이 두들겨 패도 시원찮았던 우리들의 반항을 쓰다듬어 주시던 그 지혜로움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친구와 꼰데로 기억되는 고등학교 시절이 캐나다의 낙엽과 함께 되살아나고 있는데, 어찌 <마지막 교정>이란 김치찌개 없이 이 가을의 밥상에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으리...... 


대학교 강의가 없는 날에는 써클에서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곧잘 흥얼거리곤 했다. 그때 불렀던 그리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가사와 앨범에 적혀있는 가사가 조금 다른 것은 아마 구전되면서 조금씩 변형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자, 여기 김의철이 부른 <마지막 교정>을 이 가을에 들어보자


https://youtu.be/6kczsu1U3Kk?si=BhsWA-FEZ9-Kl4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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