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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제트 Oct 09. 2023

가을에 불러보는 노래 4

가을이다. 노래하자

가을에 불러보는 노래 4


"깊어가는 가을밤에......"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출출해져 온다.

가을은 식탐의 계절인가? 글쎄...

그러면 깊어가는 계절들의 밤은 어떤 맛일까? 


10대 : 호들갑 떠는 여자들의 옷차림에 하루 종일 정신줄 놓아버렸던 두 눈알을 열심히 마사지하며 봄 소풍 준비에 여념이 없던 꽃향기 아싸한 깊어가는 봄밤의 달콤한 맛.  

20대 : 모닥불을 피워놓고 사라져 가는 낮과 젊음을 아쉬워하면서 청춘의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보내는 여름밤의  끈적끈적한 맛.

30대 : 직장 상사 눈치 보랴, 회식 후 늦게 들어가면서 마누라 눈치 보랴, 지치고 축 쳐진 몸뚱이로 맥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살포시 밟으며 걷다가 눈에 들어온 구멍가게에서 쭈뼛거리며 산 맥주를 단숨에 벌컥 들이켜면서 쏟아내는 '캬', 입가를 주르륵 흘러내리는 거품, 그리고 잠시 후 솟구쳐 나오는 거북하고 시원한 누런 트림 같은 맛. 

40대 이후 : 눈발만 날리는 심심한 겨울밤을 못견뎌하는 친구로부터의 전화를 받고 심심풀이 땅콩 같은 게 없을까 하는 호기심에 찾아간 친구네 집의 서늘한 거실에서, 장작불 앞에 둘러앉아 시려오는 등짝의 짜리함과 화끈거리는 가슴팍의 양면성을 인간의 두 가지 얼굴로 이해하며 연설을 하는 친구의 개똥철학이 김 빠진 맥주와 더불어 졸음을 부채질하는 겨울밤의 따끈 서늘 밋밋한 맛.

(하긴 이런 맛들도 나이 들면 계절 감각이 무뎌져서 그게 그거지만..... anyway)

  

어린 시절에 맛보았던 가을밤과 나이 들어서 느끼는 가을밤은 많이 다를 것이다.

또한 조선 땅에서 맛보는 가을밤과 캐나다에서 느끼는 가을밤은 바람 소리부터 틀리니 말해 무엇하리오.

가을밤이 나이와 장소 그리고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이민자들에게 느껴지는 맛은, 아니 느끼고 싶은 맛은 할머니의 맛이 아닐까 싶다.

할머니와 더불어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가을밤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손주에게만 주려고 몰래 가지고 오신 햇 군밤의 맛!

바로 그 맛이 가을밤의 맛이다.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 맛을 못 느낀 분들에게 가을밤은 조금 쌉쌀한 맛으로 입 안에 고여 오는데, 장에 가신 엄마를 기다리던 까만 밤은 외로움과 배고픔을 잊기 위해 찔레꽃을 씹으며 별을 헤다가 꿈나라로 갔던 아련한 찔레꽃 향기로 기억된다.

사실 70년대 이후로는 보리고개가 그리 흔하지 않았기에 그 이후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찔레꽃은 배 고플 때 따먹는 꽃은 아니었으나 그 이전 세대에게 찔레꽃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그런 의미가 아니라도 찔레꽃에는 한국인의 아픈 과거와 함께 그리움의 정서가 배어있다. 


고려 때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던 큰딸 찔레가 부모와 동생을 찾아 고려로 돌아와 떠돌다가 죽어 피었다는 슬픈 전설을 가진 찔레꽃의 꽃말이 '가족에 대한 사랑'이고 보면 가족 사랑 그중에서도 엄마에 대한 어릴 적 그리움이 줄줄이 스며 있는 찔레꽃이야말로 가을밤에 생각나는 꽃이 아닐까?

<찔레꽃>이란 제목의 노래는 이연실 이외에도 장사익, 은방울 자매의 노래가 있으나 이 가을밤에 찔레꽃 전설과 맛 물려 고국에 계신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깊어지면서 이연실의 노래가 듣고 싶어 진다. 


엄마에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 배고픈 날 하나씩 따먹었다오 /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 하얀 발목 아프게 내게 오시네 /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 꿈 / 산등성이 너머로 내려오시네 

가을밤 외로운 밤벌레 우는 밤 / 초가집 뒷산길 어두워질 때 /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찔레꽃’;이연실 작사, 박태준 작곡) 

이 노래 가사는 이원수의 <찔레꽃>이란 동시를 개사한 것이라고 한다.

그 시에는 누나로 표현되어 있으나 엄마로 바꾼 건 아무래도 이연실씨가 찔레꽃 전설을 알고 있던 건 아닐까?


전설은 전설이고 찔레꽃은 가을을 타게 하는 꽃인가 보다.

가을이 되면 가제트는 어디서건 기타 치면서 이 노래를 부르며 가을을 탔던 기억이 있다.

서클룸에서도 주막에서도 또 밤늦게까지 공부하다가도 흥얼거렸다. 

2023년 이 가을에 찔레꽃은 또 어떻게 가제트를 태울 것인가

노래를 들으며 가을과 나를 다시 태워보자.

고국에 계신 오마니가 몹시도 그리워지는 가을 밤이다.


https://youtu.be/2I-G5TKspLQ?si=ZykHV54x9WpAMLLI


              (커버이미지는 Pixabay로부터 입수된 yeondoo lee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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