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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제트 Sep 09. 2023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 <웹과 책과 카피라이트> 중에서

뾰족하게 독해하기 위하여

웹과 책과 카피라이트


집에 돌아와서 『생각하는 사람』의 '인터넷과 출판과 저작권에 관한 앙케트에 회답을 보낸다. 늘 생각하던 내용을 썼다.

질문 중에 여태껏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 하나는 인터넷을 '읽는 매체'로 사용할 수 있는가.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개인적 취향을 말하자면 소설과 철학서를 전철 안에서 모바일 기기로 읽을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습니다. 문고본 형태로 세로 읽기로 읽을 수 있는 독서전용 모바일 기기가 생기면 일단 사기는 할 겁니다.”


신문은 장래에 사라질 것인지 전망을 묻는 질문.

“웹과 신문의 가장 큰 차이는 신문에는 '읽을 마음이 없는데 눈에 들어오는' 정보가 있지만 인터넷 정보 검색에서는 '읽을 마음이 있는 정보’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재미없는 광고’라든지 제목만 보고 건너뛰는 '재미없는 기사'는 신문에서만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신문은 '이렇게 재미없는 정보에도 수요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중요한 정보원입니다."


누구든지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작가의 질이 바뀌었는가?

“누구든지 작가로서 전 세계에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때문에 기존 출판문화에서 배제되던 유형의 작가와 문체가 등장한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진짜 창의적인 작가는 '참가 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에 쓰기 시작한 유형의 작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쓰고 싶은 사람은 쓰지 말라고 해도 씁니다."


프로 작가와 아마추어 작가의 차이는 글이 책으로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밖에 없다는 관점이 있는데, 책이라는 매체도 언젠가 소멸할까?

'프로 작가'와 '아마추어 작가의 차이에 객관적 기준 은 없습니다. 본인이 '나는 프로다'라고 말하면 그것으로 프로입니다. 저는 스스로 ‘아마추어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단행본 유무하고는 관계없습니다. '저작물로 생계를 꾸리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출판사로부터 '당신 책을 더 내지 않겠다'는 말을 들으면 ‘그래요? 괜찮습니다. 자비로 낼 거니까요'라고 대꾸할 겁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에 쓰는 사람으로 그만두라는 말을 들어도 쓰고 싶은 건 쓸 겁니다. 돈을 주니까 쓰고 돈을 주지 않으니까 쓰지 않는다는 기준으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되지 않는다면 쓰지 않겠다'라고 단호히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프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로 말하면 지금 일본 언론에서 글을 쓰는 사람 중에 프로 작가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겠지요.”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저작권 논의에 회의적이다.

글을 '상품'이라고 생각한다면 저작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글은 본디 '상품'이 아니다.

상품성을 지니려면 ‘상품으로 다루는 편이 많은 사람에 게 읽힐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 성립해야 한다. 상품 취급을 하면 질의 좋고 나쁨에 매우 엄격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양질의 상품으로 간주되면 계속적이고 광범위하게 공급된다. 양질의 상품을 제공하는 작가에게는 '다른 일을 그만두고 글 쓰는 일에 전념해도 괜찮을 정도의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있다.

 그러한 조건이 충족되면 글은 상품으로 다루는 것이 허용된다. 거꾸로 말하면 상품 취급을 안 해도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일부러 시장에 내놓을 필요가 없다.


현재의 저작권 논의의 문제는 글쓴이의 생계를 어떻게 지원할까, 상품 매상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경제 문제만 논의하고, '한 명이라도 많은 독자가 내가 쓴 것을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기본 욕구를 경시(거의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앞에서 말했듯 ‘독서’와 ‘책 구입'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이전에 미국의 한 회사에서 '감자 껍질 벗기는 도구’를 상품화했다. 사용하기 편리하고 견고한 상품이었기 때문에 잘 팔렸다. 그러나 유행을 타는 제품도 아니고 잘 고장 나는 것도 아니라서 일단 한번 퍼지고 나니까 별로 팔리지 않게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사원이 계책을 마련했다. 감자 껍질 벗기는 도구의 색깔을 '갈색'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자 매상이 순식간에 올라갔다. 사람들이 감자 껍질과 함께 그 도구도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아이디어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자기 제품을 아직 사용할 수 있는데도 계속 버려서 매상이 늘어났다면 과연 만든 사람은 기뻐할 것인가? 별로 기쁘지 않을 것이다.

저작권론자가 말하는 것은 '감자 껍질 벗기는 도구’의 영업 사원과 비슷하다. 책의 상품성을 강조하면 사지 않지만 읽는 독자보다도 '읽지는 않지만 사는' 구입자를 우선하게 된다. 책이 상품이라면 "네가 낸 책은 전부 사 줄게. 그대로 읽지 않고 태워 버리겠지만” 하고 말하는 고객에게도 “늘 고맙습니다”라고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일 것이다.

나는 책은 '상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글을 읽는 사람에게만 볼일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틀린 것일까?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프로 작가'는 놀라울 만큼 적다.

{ 2009.9.14}


 우치다 다쓰루 저자(글) · 박동섭 번역

<5, 저작권 서재> 중 <웹과 책과 카피라이트> 전문을 실었다.

처음 부분을 뺄까 하다가 어차피 저작권 얘기를 다루는 것이니 만큼 전문을 싣는 게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우치다 선생을 잘 모르시는 독자를 위하여 인터넷 교보문고에 있는 저자 소개를 첨부한다.

(그다지 중요한 정보는 아니지만)

우치다 다쓰루(內田樹) : 일본의 사상가이자 무도가.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도쿄도립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박사과정 중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곤란한 자유』를 읽고 감명받아 평생의 스승으로 삼고 레비나스 철학 및 반유대인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블로그 '우치다 다쓰루의 연구실'을 운영하며 문학, 철학, 정치, 교육, 영화, 무도 등 다양한 주제로 거침없이 뻗어 나가는 글을 써 왔다. 2011년 첫 저서 『망설임의 윤리학』을 출간한 이래 지금까지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하류지향』, 『스승은 있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거리의 현대사상』,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곤란한 성숙』,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 『반지성주의를 말하다』, 『일본변경론』, 『완벽하지 않을 용기』 등 50여 권의 단독 저서와 60여 권의 공저·대담집 등을 펴냈다.



가제트는 저작권에 대해 회의적이다.

물론 타인의 사진이나 작품 출처에 대해서는 철저하리만큼 밝히지만 내가 작품으로 출판한 글 혹은 블로그에 쓴 글에 대해서는 아무 제한 없이 가져다 쓰라는 주의이다.


이런 사고방식에 대해서는 예전에 처음 프로그램 배울 때 싸부(?)의 가르침을 따랐다고 볼 수 있다.

가제트는 고시한다고 3년간 몸부림치다가 보기 좋게 낙방하고 바로 이어진 대기업 시험도 면접에서 대답을 면접관의 관점에 맞지 않게 했다는 죄목으로 떨어지고 나서 바로 컴퓨터 학원에 등록해서 프로그램을 배웠다.

당시는 386 PC가 주류이던 시절. MS DOS의 기본을 배우고 코볼(COBOL)이라는 지금으로 치면 프로그램의 원시 시대 언어를 배웠다.

사실 배우면서도 그다지 어려운지 모르고 배웠지만 문제는 실전이었다. 어찌어찌 들어간 회사는 프로그램 외주  개발 업체인데 대부분 전문대학에서 프로그램만 2년 동안 배운 사람들이라 나보다 어리지만 실전 감각은 뛰어난 친구들이었다.

문제는 자신만 아는 프로그램 소스는 나와는 공유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다.

나보고 알아서 코드를 짜라는 것이었으며, 오류가 난 프로그램 소소조차 사정없이 분쇄를 해버리는 바람에 소스 코드 공유는 생각지도 못한 채 나 혼자 끙끙대기 일쑤였다.

그때 주로 하던 프로그램이 인사관리, 생산관리, 회계관리등을 포괄적으로 진행하던 거라 소스 공유가 절대적이었지만 나는 이른바 낙하산에 출신 성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런 공유 시스템에서 빠져 버린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 의학연구소 프로그램 의뢰가 들어와 나와 최고참 프로그래머와 협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분은 모든 소스를 나와 공유하면서 모르는 것은 알려주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 '대부분 소스를 잘 안 알려줄 거야, 어렵게 배웠거든... 근데 그게 뭐라고. 어차피 몇 년 지나면 다 알려지는 것들인데' 하면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맞아. 뭐 그게 대단하다고. 나도 며칠 끙끙거리면 대부분 풀렸던 문제들이라 그런 생각에 동의하면서 그 이후 나의 모든 소스는 공개하기에 이르렀고 그 생각은 글을 쓰면서도 변함이 없었다.

물론 내 생각이 다 옳거나 맞다는 건 아니다.

자기가 고생해서 만든 소스, 어렵게 쓴 글 혹은 책에 대해 저작권은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가제트는 별로 그럴 마음이 없다.

'좋은 거 혹은 내가 어디서 긁어 온 거 긁어가고 싶다면 다 가져가시라'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런 걸 copyright라고 하던가?


가제트는 전문 작가도 학자도 아니기에 저작권에 등록될 일도 없고 위 글의 우치다 선생의 주장과 조금은 다른 궤도이지만,

저작권 그게 뭐라고.....



책 정보(교보문고에서 가져 옴)

책과 세계를 뾰족하게 읽어 내는 21세기형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에게 배우는 읽기의 힘

여기 밥을 먹을 때 반드시 책을 읽어야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손에는 책을, 다른 한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지요. 그는 화장실에서도 꼭 책을 읽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다 읽은 책이 놓여 있으면 식은땀을 흘리며 책장으로 가서 읽을 책을 찾습니다. 전철에서도 무조건 책을 읽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책을 다 읽었을 때 느낄 절망감에 대비해 언제나 가방 속에 예비용 책까지 넣어 다니죠. 늘 무언가를 읽고 있고, 무언가를 읽어야만 안심이 되는 사람. 그는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입니다. 레비나스, 레비스트로스, 라캉 등 프랑스 현대사상을 기반으로 지금 여기의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우치다 다쓰루가 이번에는 조금 느슨하게 그러면서도 뾰족하게 ‘읽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오랫동안 블로그 ‘우치다 다쓰루의 연구실’을 운영하며 정치, 영화, 문학, 만화, 무도 등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써 왔는데요. 그중에서 책과 독서 행위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골라 엮은 것이 바로 이 책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입니다.
 
 우치다 다쓰루는 이 책에서 문학에서 예술로, 정치에서 영화로, 고전 시가에서 무도로 장르와 장르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며 우리에게 자신이 읽은 책과 세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가 온갖 분야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읽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까닭은 그에게 읽기는 곧 배우는 힘을 단련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이 책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만화책의 대사, 전시회에서 본 그림, 지하철 안의 광고, 외국 영화의 자막, 식당 메뉴나 마른 김의 포장지, 140자로 완성되는 트위터나 블로그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오는 글과 댓글, 유해하다는 판정을 받은 책 등을 읽는 것도 모두 독서라고 말합니다. 잘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읽고 지식을 습득하는 일이 아닙니다. 온몸으로 읽어 내고, 강렬한 신체적 쾌감을 느끼고,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궁극적으로는 ‘어제의 나와 다른 나’로 살아갈 때 비로소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치다 다쓰루는 이렇게 읽고 배우는 힘을 단련하려면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스스로 스승을 찾아내고, 무엇이든 흡수하며 배우려는 무구함과 개방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우치다 다쓰루를 스승으로 삼고 그의 호흡과 속도를 따라 온몸의 촉수를 세우고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어제의 나와 다른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읽고 배우는 힘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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