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기행
"그림자 길게 끄을며 아직 누가 길을 묻는다."
(p44)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안다.
아니 어쩌면 모를지도 모른다.
단체 여행이나 패키지여행만 다녀오신 분들은.
혼자
쓸쓸한 곳에 다녀왔을 때
그곳의 기억은 오래 남겨진다.
곽재구의 <포구기행>도 그런 류의 책.
워낙에 시인이었기에 글도 시처럼 쓰고 중간중간
본인의 시 혹은 그 여행지에 맞는 시를 적절히 넣어 책을 풍요롭게 했다.
그중에 한 장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네>를 가져와 본다.(사진 찍어서 옮겼다)
동화 같은 곳.
아, 이런 책은 설명하면 안 된다.
읽고 가슴에 담아두면 된다.
그저 천천히 읽어보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는 책이다.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류시화는 물안개에 대한 명징한 시 한 편을 남겼거니와 나는 그가 이곳 강변의 물안개에 영감을 얻어 이 시를 쓰지 않았을까 슬몃 생각해보곤 한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팥죽집 가는 길」 중에서 (P 164)
삽입된 류시화의 시가 좋아 옮겼다.
다른 군말이 필요 없다.
그리고 다른 장면!
오래전, 나는 장항과 군산 사이를 오가는 여객선을 타면서 이 두 도시에 사는 연인들은 서로 이별하기가 힘들 거라는 생각을 했다. 15분인 편도 뱃길을 바래다주며 헤어지기 싫어서 다시 돌아오는 배를 함께 타고, 막상 한쪽의 도착지에 이르면 또다시 헤어지기 싫어 맞은편의 항구로 함께 가고……. 그러다가 불빛들이 충분히 아름다운 마지막 배 시간에 이르러서야 연인을 내려놓고 혼자 돌아오는 시간, 연인이 사는 도시 쪽의 불빛을 보면 또 얼마나 아쉽고 가슴 설렐 것인지……. 그 두 도시의 연인들은 필경 이별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환경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헤어지기 싫은 연인들의 항구: 충남 서천군 장항」 중에서 (P271)
곽재구 시인은 충분히 그럴 위인이었으리라.
연인을 위해 배를 함께 타고 갔다가 홀로 배시시 웃으며 돌아오는 그런 남자.
수록된 모든 글이 시다.
글이 좋아 옮기려 한다면 책 전체를 다 해야 한다.
그럴 수는 없고...
그러니 사서 읽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