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감정 기복이 심한 것을 나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아 왔다. 한편으로는, 나는 무디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새로운 것을 느낄 때 항상 내 감정이 날카로웠으면, 그래서 나 스스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으면 했다. 내가 약점으로 꼽아 왔던 감정 기복은 어찌 보면 내가 가장 잃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한 셈이다. 감정의 끝이 날카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나의 모습인 동시에 나의 현재를 가장 잘 반영하는 말인 것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레고 하우스> 중 레고 회장의 말
"아이들은 어떻게 창조하고 스스로 발전하도록 자극받을까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리자면 나는 단연코 동심 덕분이라고 말하겠다.동심은 비단 아이의 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체가 어른이 되었건 아이가 되었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혹은 지향해야만 하는 그런 종류의 마음이다.
세상에 길들여지기 전,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법을 채 익히지 못한 어린아이의 마음은 인간이 태초에 설계된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밖에 모르는 어린아이의 무지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원천이다. 무뎌지지 않은 어린아이는 가장 날카로운 모서리를 지니고 있다. 날카로운 모서리는 둥그런 곡선보다 더 많은 충돌에 직면하지만 때로는 그 뾰족함 덕분에 벽이 뚫리기도 한다.그래서 나는 동심을 잃고 싶지 않다.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무언가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p.26)
"이른바 '실행을 통해 배우기(learning by doing)'가 바로 그것입니다.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선험적으로 그런 방식을 통해 과제를 수행합니다. 인간은 원래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배우는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p.26)
정재승, <열두 발자국>
정재승의 책 <열두 발자국>에서는 마시멜로로 탑을 쌓는 실험에서 어른들과는 달리 계획을 세우지 않고 바로 실행했던 아이들 집단의 결과가 가장 좋았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저자는 아이들이 "실행을 통해 배우기"를 실천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는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선험적으로 그런 방식을 통해 과제를 수행한다."며, "인간은 원래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배우는 존재"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어쩌면 우리는 어른이 되는 법을 익히며 가장 본질적인 것을 잊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며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서 득실을 따진다. 성숙하게 성장했다고 여겨지는 어른들은 자신이 경험을 통해 축적한 과거의 사례를 바탕으로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미리 재단한다.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판단은 실행을 미연에 차단하는 허울 좋은 핑계가 된다.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을 외면하고 이성을 좇으며, 실행력으로 무장했던 어린아이의 마음을 점차 잃어버린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레고 하우스>는 레고 팬들을 위한 일종의 성지순례지, '레고 하우스'가 지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레고사의 철학을 들려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레고 하우스 안에 놓을 레고로 만든 거대한 나무가 만들어졌을 때 감동하던 레고 회장의 표정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레고로 만든 나무를 보고 감동과 감탄이 섞인 표정을 짓는 레고 회장의 모습.
그것이 그토록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그의 표정이 레고사의 철학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레고라는 장난감을 파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놀이 행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 자체가 기업의 목표인 것이다. 그들은 레고가 어떤 가치를 제공해야 하는 지를 명확히 알고 있고, 그 가치는 삶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레고를 가지고 노는 것을 "창의성의 다른 형태"라고 표현한 한 레고 팬.
우리는 노는 법을 잊으며 가장 중요한 문제를 잊어가고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왜 놀이를 좋아했는지, 왜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했었는지를 잊어가고 있다. 놀이가 그저 재밌는 것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어린아이처럼, 선택의 이유를 그저 '재미'라고 자신 있고도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재미라는 단 하나의 기준에 기반한 어린아이의 판단을 닮아, 무엇보다도 내 감정을 우선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