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브레이킹의 대표적인 질문은 이제 이렇게 진화했다. 설령 본인의 별자리는 모를지언정, 자신을 나타내는 알파벳 네 개는 알아야 말이 통하는 시대다.
MBTI의 신빙성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MBTI의 유행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 유행은 "우리는 모두 계획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등으로 대표되던 특정 성격에 관한 선호에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진 사회 풍조를 반영하고 있다. MBTI 검사의 결과는 비록 16개의 유형에 한정될지언정, 다양한 성격이 위계 없이 병렬적으로 나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한다.
성격 검사의 유행으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여겨지던 성격들, 예컨대 '외향적인', '계획적인', '꼼꼼한' 등으로 한정되던 형용사에서 벗어나 비교적 다양한 수의 형용사를 포용하게 되는 셈이다. MBTI에는 다른 유형에 비해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유형도 없고, 장점이 상대적으로 적은 유형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각각의 유형은 특성과 장점을 가지고 다른 유형과 상호 보완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어린왕자(2015)> 에서 아이는 엄마가 세워 놓은 '분 단위 계획표'에 따라 생활한다.
예컨대, 계획적인 유형과 직관적인 유형이 동시에 또 우열 없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이해의 바운더리를 넓히는 과정이다. 그간, 계획적인 것과는 반대되는, 이를테면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선택이나 비이성적인 판단은 사회에 대한 반항으로 여겨져 왔다. 어디서나 항상 계획적인 하루, 계획적인 시간, 계획적인 삶을 살기만을 강요받는 사회였기에 어쩌면 본인만을 탓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왜 이렇게 계획적이지 않지, 나는 왜 10년 후에 되고 싶은 것이 없지, 혹은 나는 왜 이렇게 효율적이지 못하게 시간을 쓰지 등과 같은 생각은 오로지 본인만을 갉아먹는다.
한편, '마침내 자신이 이해받을 수 있었다'라는 문구에서 볼 수 있듯, 성격 검사의 목적은 어쩌면 성격을 과학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성격 검사는 사실 스스로가 가진 강점을 파악하고 더 이상 스스로를 탓하지 않기 위한 과정이다. 사회적으로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던 성격만을 지향하던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유한 성격이 가진 강점을 파악하고 스스로를 자기혐오에서 구제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상대방의 MBTI를 묻는 행위는 '당신을 이해해보겠다'는 신호와도 같다.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의 영역'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시도다. 설령 그 알파벳 네 개가 그를 제대로 나타낼지 못할지언정, 상대방의 성격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해나가고자 하는 신호다.
어쩌면, MBTI는 개인의 현재 성격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는 각 개인이 지향하는 삶의 유형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항에 답할 때, 모두가 어느 정도는 자신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에 체크하는 경향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성격 검사가 제시한 유형은 각 개인이 지향하는 삶의 유형과 일정 부분 닮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모두가 지향하는 삶의 유형이 사회가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삶의 유형이라면, 많은 사람의 성격 검사의 결과는 특정 유형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성격의 다양성만큼이나, 개인이 지향하는 삶의 유형이 다양하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우리는 모두가 지향하는 삶의 유형이 꼭 사회가 원하는 삶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가고 있는 중 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지향하는 삶은 잘 짜인 삶일 수도, 그러나 누군가는 삶을 얼기설기 맞추어가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다. 잘 짜인 삶도 삶이고, 얼기설기 얽힌 삶도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