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딜김 Nov 20. 2020

괜찮다는 말 없이 위로하는 법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를 보고 생각한 것

감정 기복을 많이 겪거나 어지러운 생각을 많이 하는 때일수록, "요즘 어때?" 같은 질문에는 오히려 "그냥 그렇지, 뭐."라는 건조한 말로 답하기 마련이다. 정말 별 일이 없거나 괜찮게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감정의 변화를 너무나 자주 겪어 그중에 어떤 감정을 꺼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의 브래드도 그렇다. 감정의 변화를 수시로 겪는 브래드의 상태를 한 마디로 정리할 방도가 없다. 한국어판 제목인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가 아닌 영어 원제 <brad's status>라는 단순한 제목이 마음에 들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길고 사소한 감정의 변화를 단번에 요약하기 어렵기에, 건조하디 건조한 '브래드의 상태'라는 말이 그의 감정의 격변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제목인 것이다.

'괜찮아요'라는 한국어 제목이 풍기는 느낌처럼, '각자의 삶에 충실하되 남들을 부러워 말고 개인의 행복을 좇자'라는 단순한 메시지는 너무나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 인간의 심리가 버튼을 하나 눌러서 휙 바뀔 수 있는 거였다면 이렇게 다양한 성격의 개인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에.


누군가는 "다 좋아질 거야, 토닥토닥"에는 반응하지 않을 수 있지만, 자신과 유사한 상태의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만으로 위로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내가 하는 고민은 비단 나만의 고민이 아니고, 나의 감정 기복은 남들도 종종 겪는 상태라는 것을 아는 것 자체로 때로는 위로가 된다.  


출처 씨네21,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자존감’ 없는 아버지가 아들과 동행한 여행, 17.09.20


적어도 나에게는, 위에서 언급한 '지나친 내레이션 사용과 상상 속 장면의 과잉'이 이 영화의 백미 같은 연출이었다. 나 역시 감정 기복과 자의식에 갇힌 사람으로서, 의식의 흐름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독백과 상상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브래드 혹은 나의 내면 상태는 항상 이리저리 날뛰기 때문에, 근사한 플롯보다 더욱 드라마틱한 것이 이 심리 상태인 것이다.


자존감의 부족이 브래드의 상태를 좌우하는 단 하나의 원인이 아니기에, '자존감 없는 아버지'와 같은 키워드로만 브래드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때로는 나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감정의 쓰나미가 몰려올 때가 있다. 브래드는 외부의 자극 없이도 상상과 생각만으로 분노에 빠지기도, 슬프기도, 무력해지기도 한다. 나 역시 한 순간의 상상으로 스스로를 기쁨에 찬 상태로 만들기도, 헤어 나올 수 없는 좌절에 빠지게 만들 때가 있다. 기쁜 이벤트가 있어도 한순간에 슬픔에 빠질 수도, 슬픈 이벤트가 있어도 기쁠 수 있다.


외부의 상황으로부터 오는 고통이 아니기에, 공감받을 일 드물었던 상태가 한순간에 이해받는 느낌이었다. 주변의 누군가가 자신의 상황을 미화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만으로 자신의 상태를 고백할 용기를 갖게 되는 것처럼, '브래드의 상태'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 위로인 것이다.


"괜찮아요"라는 말 없이 위로가 된다. "괜찮아요"라는 말이 없어서 위로가 된다.





작가의 이전글 철들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