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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딜김 Feb 24. 2022

정치가 스포츠에 개입할 때. 넷플릭스 <이카로스>

이 다큐멘터리는 스포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도핑이 아니다.

문제는 '조직적인' 도핑이다.

이카로스 2017 | 15+ | 2시간 1분 | 다큐멘터리 영화
줄거리 | 스포츠와 약물을 둘러싼 러시아의 거대한 음모. 그 진상을 내부 고발한 러시아 과학자가 푸틴의 수배 목록 첫머리에 오른다.

<이카로스>는 러시아의 도핑 문제를 다룬 다큐지만, 도핑에 대한 경각심을 전하거나 스포츠의 공정성을 역설하지는 않는다. 이 다큐멘터리는 외려 정치적이다. 러시아의 도핑이 국가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계획적으로, 지속적으로 자행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일련의 사건들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올림픽 중계를 들었다면, 도핑이 적발된 러시아는 올림픽 출전이 불가하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딱 그 정도까지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건의 핵심은 러시아는 단순히 도핑을 '용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큐멘터리는 러시아의 도핑은 절대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며, 국가의 주도적인 계획 아래 진행되어 온 뿌리 깊은 관행이라는 사실을 다소 충격적으로 전한다.


그래서 러시아의 도핑은 단순히 스포츠계의 문제가 아니다. 도저히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러시아의 정치를 빼놓고서는 러시아의 도핑을 설명할 수 없다.

국가가 주도한 조직적인 도핑은 국제 대회에서 자국의 위상을 드높여 지지율을 올리고 자신의 정권을 공고화하려는 지도자의 계획이며, 침공을 정당화하고 독재를 지속하게끔 만드는 수단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조직적인 도핑에 가담한 사람들이 모두 구조의 희생양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완전무결한 피해자라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선택을 한 사회 구성원일 뿐이다. 물론 기형적인 구조 속에서도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있듯, 소수의 옳은 사람들은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 조작을 하거나 혹은 암살을 당하거나, 그 두 개의 옵션만 존재하고 나머지는 고려할 수가 없는 사회라면? 놀랍게도 극단적인 예시가 아니다.


저는 서로 완전히 모순되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었어요.
도핑과 반도핑요. 순수하고 정확한 이중사고였어요.
-내부고발자 그리고리 로드첸코프
푸틴 대통령은 결론을 규탄하면서
세계적으로 정치가 스포츠에 관여하는 위험한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 주장을 '변절자의 모략'이라고 합니다.
-다큐멘터리 내 삽입된 뉴스 중 발췌
배반한 국민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네요.
러시아 반도핑 연구소를 운영한 사람 말입니다.
-푸틴


푸틴이 내부고발자를 '배반한 국민', '변절자' 등으로 칭했듯,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행위는 사회적인 합의였다. 이 사회에서는 진실과 정의가 정치와 별개가 되지 못한다. 정치는 진실과 거짓을 창조한다. 정치가 정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정치를 따른다.


이 다큐멘터리가 시사하는 가장 충격적인 함의는, 스포츠가 아닌 다른 분야에도 국가적인 음모가 만연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가가 정치와는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던 스포츠에마저 개입했다면, 진실을 조작하는 행위가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 조직적인 도핑이 그랬듯, 체계적이고 교묘하게 진실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촬영 전, 도핑 문제를 다루고자 기획된 이 다큐멘터리는 그래서 <이카로스>라는 제목이 붙었다. 그러나, 이카로스를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존재가 아닌, 내부고발자라고 해석한다면 어떨까. 태양은 곧 진실이지만, 진실에 다다르려면 날개를 잃고 바다에 빠져버릴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태양에는 그 누구도 닿지 못했지만, 이카로스는 위험을 무릅쓰고 태양으로 향한다. 자신의 날개가 녹아버릴지라도.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는 진실을 알리는 게 혁명이다.
모두가 거짓을 수용하면
거짓은 역사의 일부가 되어 진실이 된다.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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