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라 각 회사들이 저마다 사장단 인사, 임원 인사를 발표하고 있다. 올해는 누가 누가 승진을 했나.. 명단을 보다가 응..? 잘못 보았나 싶어 다시 한번 실눈을 뜨고 쳐다보게 된 이름들이 있었다.
(* 대부분의 임원은 출중한 능력을 갖추었지만, 이 글은 일부 예외적인 케이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내 콜밴이 당신만 타는 택시는 아니잖아요
TF가 끝날 무렵 원소속 부서로 돌아가는 인력들로 사내 콜밴이 부족한 시기였다. (회사 내 건물들이 띄엄띄엄 있어 짐이 많을 경우는 콜밴을 이용함) 오늘 전화를 하면 최소 3-4일은 기다려야 이동이 가능했는데, 마침 콜밴 기사님이 그날은 우리 건물 다른 부서에 있는 A 부장도 같은 건물로 이동하니 먼저 예약한 그분만 동의하면 같이 탑승할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기쁜 마음에 부랴부랴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No."
당황스러웠다. 사내 자가용과 달리 콜밴은 기본적으로 두세 명은 같이 타고 가는 게 상식이었다. 합석이 불가능한 이유도 설명 않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 통에 더 이상 말도 못 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 부서에 근무하는 동료에게 오늘 이동하시는 A 부장님 짐이 많은지를 물었더니 그것도 아니라고 했다. 우리와 똑같이 PC와 모니터가 전부였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동료가 덧붙이는 한마디. "아마 오늘 기분이 안 좋으셔서 그럴 거야." 이런 @(!*$&&^#(*(!#$@#$)* 이유도 별 그지깽깽이 같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회사를 20년 가까이 다닌 사람이 자기 기분이 안 좋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기름 낭비를 하고 다른 사람 시간 낭비를 시킨다고!? 어차피 내 돈 아닌 회삿돈에 내 시간 아니다 이건가.
정말 본인 감정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속 좁은 사람으로 각인되었는데.. 임원 발탁에 2년 연거푸 고배를 마시더니 드디어 올해 성공하셨다. 역시 회사는 버티는 자가 승자인 건가.. 부디 임원직을 수행하면서는 보다 어른스러워지시길 바란다.
만차 코스 통근버스에서는 안쪽 자리부터 채워 앉는 게 예의 아닌가
우리 집 앞 통근버스 정류장은 출발점이다. 출발점 포함 총 세 곳의 정류장을 거쳐 회사에 도착하는데, 이미 출발점에서 자리의 1/3이 채워지고, 두 번째 코스에서 두세 자리만 남고, 마지막 코스에서는 꼭 한두 명은 서서 가게 된다. 몇 년 전부터 고속도로 입석운행은 금지되었기 때문에 중간에 다른 통근버스로 환승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런 버스인데.. 우리 집 코스에서 탑승하던 B부장님. 늘 둘째 줄 복도석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두 번째 코스에서 사람들이 탑승하면 비키지 않고 자는 척을 시전 한다. 신호를 안 받으면 차로 3분도 안 되는 거리라 깊은 잠에 빠지려야 빠질 수도 없는 거리다.
한 날은 치마를 입은 여자분이 두 번째 코스에서 탑승했다. 바로 가까이 있는 자리가 비어서 그분이 둘째 줄 창가 자리로 들어가려는데.. 문제의 B부장. 정말 최소한의 미동도 않는 것이 아닌가. 일어서서 비켜주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한 다리를 복도 쪽으로 빼주겠거니 했는데 정말 돌부처 자세 그대로 앉아서 마치 '지나갈 테면 지나가 봐라' 하고 앉아있었다. 대각선 자리에서 그 모습을 보는데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소속은 다르지만 같은 회의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회의석상에서 본 B부장은 굉장히 공격적이었다. 본인 부서의 이슈는 서둘러 감추려 하고, 타 부서의 이슈만 크게 부풀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해서 한참 후배였던 나도 보는데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 전무를 달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모른척할 땐 언제고 사과 상자가 썩어 나니 사과 잘못이라고?
이 부장이 임원이 되는 걸 보고.. 확실히 깨달았다. 정말 대기업에서 그 어렵다는 별을 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구나. 운 7기 3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물론 뛰어난 업적과 성과로 임원이 된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서 인성'까지' 훌륭한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임은 확실하다.
이 임원은 부장이던 때부터 비교적 가까이서 업무 성향을 지켜봐 왔다. 후배로서 봤을 때 업무적 탁월성은 없었다. 오히려 존재감이 없던 부장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하다. 늘 논문을 찾아가며 새로운 실험 방법을 연구하던 동료 부장들이 진절머리 나는 사내 정치질에 못 견뎌 하나 둘 더 좋은 곳으로 떠나자 본인만 살아남은 모양새가 되었고, 그런 내부 상황에 더해 그동안 한 번도 임원을 배출하지 못했던 부서이니 올해 한 명 밀어주자는 여론이 돌아 정말 말 그대로 어부지리로 임원이 된 케이스였다.
물론 이 임원도 능력이 있다면 있었다. 어느 사람도 적으로 만들지 않는 것. 좋게 말하면 사회생활을 잘한 것이고, 사실대로 말하면 기회주의자 같은 사람이었다. 절대 자신이 책임지는 발언이나, 다른 사람들의 타깃이 되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서 대내외적으로는 더 존재감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경영진과의 회식자리에서는 윗사람들 비위를 잘 맞춘다는 후문이 돌았다.
이렇게 능력 없이 자리에 오른 사람일수록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 언제 내쳐질까 늘 전전긍긍해하기 마련이다. 단적으로 부서 내 성희롱이나 조직 내 갈등이 일어났을 때의 대응은 정말 말 그대로 '수준 미달'이었다. 성희롱 피해자에게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하며 '그 나이 때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러하니 네가 이해를 하라' 식으로 말한다던가, 조직 내 갈등이 일어났을 때는 '이 상처들이 그냥 조용히 아물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며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구성원들은 상처를 입고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언행으로 조직이 썩어가고 있는 것을 부러 모른척했다. 그러고선 (당연히) 같은 일이 반복해서 벌어지자 "아니 우리 부서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나" 하며 누가 해야 하는 하소연인지 모르는 소리만 하고 앉아있었다.
'이런' 사람도 전무가 되었다..
신입사원 면접 때 합숙을 시키면서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인성을 보는 기업도 있고, 압박 면접으로 검증하는 기업도 있다. 이렇게 신입사원 필터링은 다양한데.. 더 중요한 임원을 뽑을 때는 왜 인성면접을 보지 않을까. 사내 평판이란 건 충분히 조작될 수 있고 편파적일 수 있다.
(그럴리는 없지만 그래도 만약) 내가 사장이라면 거창한 면접의 형식 없이 당사자들이 느끼지 못하게 평가를 치를 것 같다. 위로 올라갈수록 업무능력보다 인성이 중요하다. 어느 정도 연차 이상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업무 능력은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업무를 하며 임원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니,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정도로 정성 들인 보고를 수시로 받고 대외 미팅을 다니며 주워듣는 이야기가 많아지면 없던 업무 역량도 생기겠더라.
다만 인성은 자리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자리가 그 사람의 인성을 드러낼 뿐이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지 않았겠는가. 더 큰 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나는 임원 대상자도 인성 면접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