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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Feb 06. 2021

영어 이름, 꼭 있어야 하나요?

I don't think so.


나는 영어 이름이 없다.

(쇄국정책, 매국노 이런 것과는 상관없는 사람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어릴 때 영어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은 다들 영어 이름이 하나씩 있었다. 에이미, 빅토리아, 카일리, 벤, 제임스.. 등등.. 글쎄, 영어 학원을 다닌 적 없는 나는.. 그게 참 이상했다.  본인들의 이름이 있는데 왜 이름을 또 하나 더 만들어야 하는지.


대학생 때 기초교양수업이었던 영어회화 클래스에서도 10명 남짓한 인원 중에 나와 남자 선배 한 명만 영어 이름이 없었다. 남자 선배의 한국 이름은 비교적 발음하기 쉬웠지만.. 내 이름은.. 받침이 두 개나 들어가기 때문에 외국인 교수님들이 발음하기 어려워했다. 그래서인지 질문할 때는 나를 잘 시키지 않았다. (뜻밖의 개이득..ㅎ)


15년 전, 워홀로 호주에 갔을 때 브리즈번 인근의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에서 우프(wwoof)를 했었다. wwoof 책자의 표지도 그렇고.. 보통 우프는 농가(farm)에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 도시가 휴양지일 것이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냥 호스트의 설명이 적힌 글을 보고.. 내가 가고자 하는 여행의 목적지 부근에 있길래 대뜸 전화를 해서 며칠쯤 가도 되는지 물었다. 마침 기존에 있던 우퍼가 나가서 흔쾌히 승낙을 받아 약속한 날에 지도 한 장을 들고 차를 몰아 호스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렇게 첫 우프가 시작되었다.



WWOOF란?
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

'유기농가에서의 세계적인 기회'라는 뜻으로, '유기농가에서 하루 5시간 노동과 숙식을 교환하는 세계적인 네트워크'이다. 우프(WWOOF)는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 해외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여행 방법의 하나로, 외국인 가정에서 가족처럼 함께 생활하며 외국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첫번째 WWOOF HOST 집 @Noosaville


호스트는 60대 중후반의 할아버지였는데.. 자녀 3남매가 다 결혼하며 독립하자, 넓은 집에 혼자 있기 심심하니 WWOOF를 시작하셨다고 했다. 첫날은 할아버지가 하루의 대략적인 일정과 집안의 시설물들에 대해 알려주셨다. 보통 그러고서 우퍼가 해야 할 일들도 알려주는 게 정상일 텐데.. 저녁이 되어도 아무런 말씀이 없고, 다음날이 되어도 나의 JOB에 대해 아무 말씀이 없길래.. 이틀 동안 무전취식하는 게 도대체 미안해서 3일째 되는 날 물어보았다.


"저는 무슨 일을 하면 되나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기지개를 한번 켜시더니, 식탁 위에 있던 식빵 봉지를 주시며 테라스에 찾아오는 앵무새들과.. Harry를 위해서 먹이를 주면 된다고 하셨다. 앵무새들이야 앵무새라고 치고.. Harry는 또 뭔가.. 집에는 보더콜리 멍멍이가 있었지만, 그 아이는 이름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오후.. Harry라는 아이의 실물을 영접할 수 있었다.


호주 ibis (일명 거지 새) - 출처.네이버


일명 거지 새로 더 유명한 이비스였다. 어른 무릎 정도까지 오는 키에.. 덩치도 작지 않은데..  브리즈번 시티에서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걸 자주 보았었다. 주로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사람이 가까이 오든 말든 겁도 없었다.


그런 애가.. WWOOF 집에 마치 칸트처럼 정해진 시간(오후 3시)에 찾아왔다. 깜박 다른 일을 하느라 제시간에 식사 준비 (주로 식빵 한 조각)를 안 해두면.. 테라스에서 줄 때까지 노려본다.. ㅠ ㅠ 하다 하다 새 식모 노릇까지 하게 될 줄이야.. OTL


그렇게 우프 집에서의 일상에 젖어갈 무렵, 어느 날 호스트 할아버지가 영어 이름은 없냐고 물었다. 그전까지는 내 한국 이름이 발음하기 힘드셔서 family name으로 부르셨는데, 문득 그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셨던 게다. 그래서.. 영어 이름은 없다고 하며.. 지금 만들까요? 했더니.. 할아버지가 단호하게 대답하셨다.


"아니. 네 이름이 있는데 왜 불필요하게 영어 이름을 만드니? 혹시나 있는지 물어본 거였고.. 네 한국 이름을 우리가 불러줘야 하는 게 맞아. 영어 이름은 따로 안 만들어도 돼."


하시며.. 그날부터 계속 내 한국 이름의 발음을 연습하셨다. ㅠ ㅠ so 감동..

그래서 그날 이후로 쭈-욱 나는 영어 이름을 만들지 않았다.


괜스레 내 이름을 지킨듯한 뿌듯함..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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