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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Dec 23. 2020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feat. 나의 아저씨

원체 연예계나 드라마와는 담을 쌓고 살아서 주변 지인들의 추천으로 드라마를 접하는 내가 기억하는 이 작품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이다.


. (주로 여성분들) 어둡다. 불륜 소재. 기분이 안 좋다.

. (주로 남성분들) 할많하않. 강추. 꼭 봐.


호오, 보통 남자들이 드라마를 추천하는 경우는 잘 없는 일인 데다 반응이 극명히 나뉘어.. 호기심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작품은 내 인생 드라마가 되어 유료 결제를 하며 세 번을 돌려 봤다. 내 평생 다시 보기 한 드라마는 이 작품이 처음이다.

 


저를 믿고 (응..??)

꼬옥 보세용!!!



처음 볼 때는 전체 스토리에 집중했었고, 두 번째 볼 때는 왜 유독 남자들의 호응이 좋았나에 좀 더 포커스 해서 보다 보니 어느 정도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많은 기사들이 중년 아저씨들의 로망, 남자들의 판타지와 같은 자극적인 제목들이 내걸었는데.. 안타까운 건 그런 얕은 단어들이 품기에는 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와 울림이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마치 42.195km 마라톤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방금 100m 지점을 통과할 때 했던 제스처는 무슨 의미냐고 되지도 않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고 할까. 같은 영화를 봐도 스쳐 지나가는 2초 분량의 자극적인 장면에 포커스 해서 전체 내용에 집중 못하는 사람들처럼.


회사에서는 상사한테 치이고,

집에서는 아내와 대화가 겉돌고,

도움 안 되는 골치 아픈 형제들에,

그런 와중에 인간미를 잃지 않는 정의로운 모습은

딱 중년 아저씨들의 로망 더도 덜도 아니다 라고..


삶을 깊이 없이, 나를 알아주는 사람 없이

자신이 그렇게 불행하게 살았는지도 모른 체

꾸역꾸역 생존만 해 온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보고 말한다.


안습...

그런 분들은 그냥 빠잉.




이 드라마는 긴 호흡으로, 전체 흐름 속에서 깨알 같은 디테일의 묘미를 찾아야 하는 작품이다.

bgm이며, 배우들의 목소리, 숨 쉬는 소리까지.. 매 순간이 감동이고 전율이다.




따흑.. ㅠ ㅠ

왜 리뷰를 적으면서도 눙물이 나는 건지 ㅠ ㅠ


이건 정말 국보급 드라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장면과 대사를 소개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기억하기엔 처음으로 삼 형제 중 둘째인 동훈이가 형제들에게 속마음을 말한 때인 것 같다. 둘째지만 자의든 타의든 첫째 역할을 해야 했던 동훈이.. 가족들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던 사람이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동훈의 삶의 무게가 느껴졌던 대사다.

- (동훈) 아버지가 맨날 하던 말..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 말을 나한테 해주는 사람이 없어.

  그래서 내가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 인간이 슬프면 진짜 슬픈 거야

마음 기댈 곳이 없어서 평소 감정표현이 거의 없는 동훈이. 그런 동훈이를 막내 기훈이는 알고 있다. 어쩌면 가족 모두가 알고 있을지도. 겉보기엔 형제들 중 제일 성공했고, 잘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엄마에겐 가장 마음 아픈 자식인 이유가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 (기훈) 그냥 슬퍼.. 그 인간이 슬프면 진짜 슬픈 거야.



누가 날 알아 

이렇게 진중한 대화를 할 수 있는 형제라니. 돈을 못 벌어 좀 찌질하면 어떤가. 사람을 '안다'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었던 장면이다.

- (동훈) 누가 날 알아. 나도 걔를 좀 알 것 같고..

- (기훈) 좋아?

- (동훈) 슬퍼.. 날 아는 게 슬퍼.



- (지안) 진짜 내가 안 미운가

- (동훈)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널 알아



좋아서..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드리고 면회를 간 지안이가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를 전해드리는데, 할머니가 그 부장님은 잘 지내냐고 묻는 말씀에.. 수화와 눈빛으로 연기하는 장면. 울먹이면서 입술 떨림까지 연기했던 아이유의 연기가 너무 좋았다.. 정말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던 순간.

- (지안) 잘 지내.

- (할머니) 근데 왜 울어?

- (지안) 좋아서.. 나랑 친한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맙다.. 옆에 있어줘서

정말 마음이 무너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는 장면.. (아이유 님 연기 너모너모 잘하시는 거 아닙니까아!!)

- (동훈) 죽고 싶은 와중에.. 죽지 마라,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다.. 파이팅해라.

  그렇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

  숨이 쉬어져. 고맙다.. 옆에 있어줘서.



나 그렇게 괜찮은 놈 아니야

어라? 낯익은 이 대사는..

- (동훈) 용감하다.. 근데 나 그렇게 괜찮은 놈 아냐.

- (지안) 괜찮은 사람이에요, 엄청.

             좋은 사람이에요, 엄청.



매 씬에서..

동훈은 괜찮은 '상사'일 뿐 아니라 괜찮은 '사람'이구나,

진짜 '어른'이구나.. 를 느꼈다.


어디서 본 글 말마따나,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 모두 자기 연민이 가득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보통.. 자기 연민에 빠지면 스스로를 제일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옳지 않은 행동도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동훈이나 지안이는 자기 잘못을 책임지고 비난과 비판을 감수하려고 한다는 점이 큰 차이인 것 같다. 그래서 더 나은 어른이 되는 것일지도.  


자신의 삶이 고단해도 타인에게 알아달라고 징징대거나 엉겨 붙지 않고, 그럼에도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사람을 알아가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더 판타지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장면,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라고 묻는 박동훈의 질문에


지안이 "네.. 네!"라고 힘주어 대답하는 장면은

그동안의 애환과 시련을 기억하는 시청자로서는

더없이 뿌듯하고 대견할 수가 없었다.





나도 박동훈 같은 부장님을 만났었다.

내 직장 생활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지나고 보니 부장님도 힘든 시기였는데,

그 와중에도 후배인 나를 챙겨주고

진심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같은 동네에 살아서 종종 퇴근길에 집 근처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곤 했는데.. 어느 날은 헤어지는 길에

드라마의 대사를 그대로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고 더욱 놀랐었다.


드라마처럼 그 부장님은 지금 상무님이 되셨지만,

어떤 위치에 있든 어느 장소에 있든

내가 기억하는 '좋은 사람'의 모습 일거란

믿음은 변치 않는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 멋진 사람,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운이 좋아서 그런 사람을 만나 좋은 관계를 맺으면

그 사람 때문에 삶의 재미를 느끼고,

그 사람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고,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닮아가게 된다.




이 드라마를 보고 함석헌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포스터..

따뜻한 느낌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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