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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문 Sep 18. 2019

당신이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께 드리는 말씀.


최근에 머리카락을 밀어버리는 과감한 결단을 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저로서는 평소 그런 투쟁을 무시한 당신과 그 정당이기에 비웃기에 바빴지요. 또한 지금도 거리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의 투쟁 수단마저 강탈하는 것 같아 불쾌한 기분마저 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최대한 선의로 해석해서 조국 씨가 법무부 장관이 된 것이 얼마나 문제라고 생각했기에, 당신들이 평소에 무시하던 투쟁 방법까지 쓰는 것일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치욕적일지도 모릅니다. 80년대 운동권을 비판하던 당신들이, 주사파 정권이라는 단어를 쉽게 꺼내는 당신들이, 그들이 쓰던 전술을 썼으니 당연히 그럴 겁니다. 그 정도로 조국 장관 임명이 자유한국당 같은 정치 세력에게는 큰 문제였던 것이겠죠. 당신들과 같은 이유와 목적은 아니지만 나도 이번 법무부 장관 임명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오죽하면’이라고 아주 조금이나마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머리카락까지 밀어버릴 정도로 강하게 투쟁하시는 황교안 대표님. 나는 당신이 그 기억을 오래 가져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같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왜 당신들이 싫어하는 노동조합, 시민단체 기타 소수자들이 최후의 투쟁 방식 중 하나로 머리카락을 밀어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머리카락을 미는 결정의 경중이 어떤지 사람마다 다르겠습니다만, 분명 과소평가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에 아셨을 테니까요.    


당신이 조국 씨가 장관직에서 내려오는 걸 바라는 것이 간절한 것처럼, 이 땅에서 고통받는 소수자들도 자신들만의 간절한 문제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신의 요구보다 더 소박합니다. 직장에서 차별 없는 대우를 받고 싶다. 사람으로서 당당히 대접받고 싶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런 요구를 위해 오늘도 사람들은 거리로 나서고, 머리카락을 잘라야 하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당신이 바닥에 놓아준 머리카락이 진심으로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라면, 그 국민들이 바닥에 놓아준 머리카락도 함부로 비하할 것이 아닐 겁니다.    


저는 자유한국당의 강령을 생각합니다. 강령에는 ‘지역, 세대, 이념, 성, 피부색 등 어떠한 이유의 불합리한 차별로부터 공동체를 지켜나가고, 소득이나 시장지배력의 양극화로 인한 대립과 갈등이 국민통합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이제라도 당신이 본인의 삭발 경험을 통해 그것을 위해 거리에 나선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자유한국당의 해당 강령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대표님이 깨달았으면 하는 부분은 단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당신이 삭발하자 군대나 가라고 조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 정당의 당원이지만, 그것을 매우 부적절한 논평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국무총리일 때 일어난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에 아직도 분노하고, 혐오감도 들지만, 나는 군대나 가라는 비난에 대해 당신을 옹호합니다. 내가 원하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군인들처럼 머리를 짧게 깎았으니, 생각은 해보기를 권합니다. 군대에서 청년들이 잃는 것들. 그리고 그걸 위해서 당신이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그동안 징병제에 대해 실언을 한 적이 없는지 말입니다. 그런 과거가 생각났다면, 그리고 당의 소속원들이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면, 당신의 까까머리를 한 번 만져보며 반성하고 깨닫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를 계기로 당신의 정당이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군인들에 대한 합리적인 대우를 진정으로 실현시키기를 바랍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자유한국당을 ‘안보 정당’이라고 인정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이 글을 대표님께서 읽으실지, 읽어도 자유한국당이 바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상황은 그래도 예전과 같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의 없어진 그 머리카락에 대해 지적하며, 대표님과 자유한국당 일원이 생각이라도 한번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비로소 한국의 보수에도 희망이 있다고, 야당이 재건되어도 나 같은 성소수자가 조금이라도 덜 불안할 테니까요. 삭발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부디 생각도 그런 수고를 하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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