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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문 Sep 19. 2019

3. 제1차 본회의

제1차 본회의

‘저주받아라!’

‘너희만 목숨이냐!’

진형이 국회의사당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은 국회 담벼락에 적혀있는 커다란 글씨들이었다. 그 글씨들은 하나 같이 국회의원들을 질책하고 있었다. 정부가 인류 보완 계획을 위해 남극으로 이동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국회의원들도 같이 줄행랑을 쳤다고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진의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국회의사당 앞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그 흔한 1인 시위자도 볼 수 없었고, 국회 앞을 지키던 인력도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진형은 걱정과 달리 국회 내부로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아무런 제지 없이 휙휙 국회로 들어갔기에 ‘이거 참 재미없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어찌 되었든 진형은 국회에 들어왔으니 목적을 이루기에는 충분하다고 여겼다. 서진형. 45세. 개혁국민당 대표. 한 정당의 대표이니 국회에 온 것은 딱히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평상시였으면 그다지 신경 쓸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국가의 기능은 정지되었고, 국회는 건물만 남은 상황이었다. 이럴 때 한 정당의 대표가 국회를 직접 방문했다는 것은 오히려 독특한 일이었다.

평소라면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지만, 진형은 국가가 자신의 기능을 다 했을 때도 국회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개혁국민당이라는 정당은 창당 요건을 겨우 충족한, 선출직 공직자 한 명 없는 군소정당이었기 때문이었다. 연고가 있는 국회의원도 없어 다른 군소정당과 같이 기자회견도 할 수 없는 신세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진형은 당당하게 국회에 들어갔다. 힘차게 본희의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본래 본희장을 밝히던 무수한 전등들은 몇 개를 제외하고 꺼져있어 어두웠다. 그나마 구석구석 앉아있는 사람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에 진형은 넘어지지 않고 의장석 쪽으로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제시간에 도착하셨습니다.”

의장석에 앉아있는 민석이 진형을 발견하고서는 말했다. 그러자 의장 쪽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진형을 바라보았다. 진형은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서는 자리에 앉았다. 국회 기능은 정지되었다. 그런데 본회의장에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바로 군소정당협의회 소속의 군소정당 대표들이었다.

군소정당협의회. 가끔 언론 단신에 ‘군소정당협의회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기는 성명을 발표했다.’라고 할 때 나오는 단체 이름이다. 비록 각 정당이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만, 군소정당이라는 처지는 같았기 때문에 힘을 합치자고 만든 단체였다. 그러나 먼지가 모인다고 해서 갑자기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이 뭉쳤지만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언론 단신에서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던 상황에서, 각 정당이 이제 두 번 나올까 말까 고민하는 상황으로 바뀐 정도였다.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던 시점. 그때 군소정당협의회의 대표인 양진만 민주신당 의장이 다음과 같은 게시글을 올렸다.

‘지구가 멸망할 때. 우리 정치인들은 더 냉철하게 현실에서 국민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국회가 제대로 돌아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거기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봅니다. 국회의원들이 모두 도망쳤으면 우리가 국민의 이름으로 정치를 진행합시다. 만일 있다면 그들과 함께 비상시국을 이길 새로운 방법을 고민합시다. 이에 동의하시는 대표분들은 XX 월 XX일 까지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으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이 사람이 제정신인가?”

진형이 이 게시글을 처음 보았을 때 한 말이었다. 대부분의 군소정당협의회 대표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당장 살기 바쁜데, 마무리해도 모자란 시간인데 국회에 모여서 한가하게 무얼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더 냉철하게’라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 비록 선출직 공직자 한 명도 없지만, 자신들은 ‘정치인’ 아니었던가. 이럴 때, 오히려 나라를 위해서 무언가 해야 하지 않던가. 이런 생각이 들자 진형은 창당대회 때를 회상했다.

4년 전 진형은 젊은 정치를 모토로 개혁국민당을 창당했다. 거창하게 말해서 창당이었지만, 그 규모는 초라했다. 사람들은 겨우 모았고, 도와주기로 한 원내 정치인들은 정계개편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그를 무시했다. 결국 진형은 눈물을 머금으며 창당 연설 때 이렇게 말해야 했다.

“비록 저희가 지금은 이렇게 작게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저 정당들을 뛰어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방선거를 준비하던 참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뉴스가 들려 왔기 때문이었다. 진형은 평소에 이러다 지구가 먼저 멸망하지 않겠냐고 우스개로 이야기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자 당황했다. 소식이 들려오자 몇 시간도 지나가지 않아 중앙당사(말로는 이렇지만 10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에 남아있던 인원들은 모두 집으로 가버렸다.

바닥에는 만들다 만 선거 포스터가 떨어져 있었다. 진형은 그것을 주워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정치를 바꿔보려고 했는데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끝이 날 상황이었다. 허무함에 그 포스터를 꼭 끌어안고서 하염없이 울어야만 했다. 하지만 상황은 바꿀 수 없었다. 진형은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나서 집으로 향했다.

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혼란기에 생존을 위해 노력하고 마무리를 준비했다. 그러다가 민석의 게시글을 보게 되었다. 그는 정치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기로 했다. 비록 아무 국민에게도 투표로 선택받지 못했지만, 적어도 국회에 가면 무언가 논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그는 가족들이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이런 식으로 모인 군소정당대표들은 총 7인으로, 다음과 같다. 본 목록은 가나다라순으로 정리된 것이며, 성향 구분은 군소정당협의회에 올라온 자료를 기초로 했다.

김명석 (37) 국민통합당 대표 - 중도
김정인 (34) 환경동맹21 대표 - 진보
박철수 (53) 가자!선진기독당 상임대표 - 보수
서진형 (45) 개혁국민당 대표 - 진보
양진만 (57) 민주신당 대표 - 보수
이정진 (62) 사회진보당 의장 - 진보
한기정 (48) 자유보수당 대표 - 보수

“자, 이제 더 올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의장석에 앉아있던 진만이 말했다.

“그러면 진행하는 게 좋겠군요. 안타깝게도 현역 의원이 없음으로 우리가 국회를 임시로라도 진행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여기에 이의 있으신 분은 없겠지요?”

“없습니다.”

일동이 외쳤다.

“좋습니다. 그럼 시작하기에 앞서, 국회 사무총장을 대리하실 분이 필요합니다. 자원하실 분?”

그러자 명석이 손을 들었다. 민석은 그를 사무총장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하여 이의가 있는지 물었고, 이 역시도 일동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명석은 이렇게 비공식적이지만 역대 최연소 국회 사무총장이 되었다.

“그럼 사무총장님, 의사 일정을 진행해주십시오.”

그 말과 동시에 명석은 발언대로 나왔다. 그는 민석에게 인사를 하고, 앞에 앉아있는 대표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발언대에 올라서자마자 그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마이크가 되지 않는 상황이니, 소리가 큰 점에 대해서 양해해 주십시오.”

명석은 이후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국회사무총장 김명석입니다. 일단 비공식적이지만 정치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국회에 출석하신 각 의원님에게 진심으로 존경의 말씀을 보냅니다.”

“의원이요?”

민석이 물었다.

“편의상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뭐 저도 사실상 아무 권한 없지만 국회사무총장이라는 직함을 달지 않았습니까?”

김명석 의원의 대답에 장내는 웃음 소리로 가득 찼다. 김명석 의원은 손짓으로 이를 진정시키고 발언을 이어갔다.

“그러면 본 국회 집회 및 국회의장 선거를 위한 의장직무대행에 관하여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지구 멸망 발표 이후 국회의원들이 모두 도망가 저희가 이를 새롭게 조직했기에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여기 계신 의장대행 양민석 의원께서 국회 소집 요구가 있어 저희가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이 의장대행은 군소정당협의회 대표로서 서 계시는 겁니다. 그러면 양민석 의원님 지금 그 자리에서 회의를 주재해주시면서 의장 선거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의석을 정돈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김명석 의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진만 의원이 말했다.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다른 정당 대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비록 국회가 없는 상황과 마찬가지지만, 언제 국회의사당에 와서 이런 식의 호사를 누릴 수 있겠는가?

“성원이 되었으므로 본회의를 개최하겠습니다. 저는 방금 국회사무총장이 보고한 바와 같이 군소정당협의회 대표로서 국회의장 선거를 진행하게 된 양진만입니다.”

한기정 의원을 시작으로 의석에 앉아있는 대표들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양진만 의원은 소란을 정리하기 위해 의사봉을 쳤으나 그도 매우 기쁜 상황이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의원님 여러분! 우리는 지금 국가가 사라지는 초유의 위기 속에서 여기에 모였습니다. 기존의 정치인들은 모두 도망가고 우리만 여기에 남았습니다. 헌법에 적힌 숫자에 한참 미달하고, 저희에게 권한도 없습니다만, 정치인의 의무를 위해 이렇게 모여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도 냉철함이 요구됩니다. 저희는 이 나라의, 또한 이 인류의 마지막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여러 안건을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선출되는 의장과 함께 동료 의원 여러분께서 되어 하나가 되어 치열하게 논의하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양진만 의원의 연설 이후 의장 선거가 진행되었다. 원래는 부의장을 포함해서 의장단을 구성해야 하지만 인원수가 매우 적으므로 국회의장 하나만 선출하기로 했다. 의장 선거가 개시된 시각은 14시 32분이었다.

“투표를 다 하셨습니까?”

14시 41분이 되자 민석이 말했다.

“그러면 투표를 마치고 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러자 서진형 의원과 김정인 의원이 각각 명패함과 투표함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먼저 명패함을 열겠습니다.”

서진형 의원이 명패함을 열고 명패 수를 점검했다. 명패 수는 정확히 7개였다.

“이번에는 투표함을 열겠습니다.” 김정인 의원이 투표함을 열었다. 투표수도 7표였다. 의장은 바로 개표를 지시했고, 서진형 의원과 김정인 의원은 투표 용지를 정리하고 개표를 시작했다. 개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이정진 (62) 사회진보당 대표 5표
박철수 (53) 가자!선진기독당 대표 2표

“총투표수 7표 중 5표를 얻은 이정진 의원이 이번 국회에서 국회의장으로 당선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정진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장석을 향해 한 번, 의원들을 향해 한 번 크게 허리 굽혀 인사했다. 모두 박수로 화답했다. 그러고서는 의장석으로 올라가 양진만 의원에게서 의사봉을 전달받았다. 새로운 대한민국 국회의장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더욱이 최초의 진보정당 출신 국회의장인지라 진보 성향의 서진형 의원과 김정인 의원은 그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저는 이 자리를 매우 명예롭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정진 의원은 울먹이며 당선 연설을 했다. 사람들은 박수로 그를 따뜻하게 격려했다.

“그럼 저는 지금부터 의장으로서 의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석을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 모이셨습니까?”

의장은 이미 대표들이 다 모여있는 것을 알았지만, 굳이 한 번 물어보았다. 의석수를 확인한 의장은 ‘그럼 제1차 본회의를 개의하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막상 개의했으나 무슨 의안을 올릴 것인지 의장은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양진만 의원의 제안대로 일단 모인 그들이었지만, 뭘 논의할지는 제대로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혹시 제안하실 의원님 계십니까?”

약간의 침묵이 있고 나서 의장이 말했다. 그러자 우렁찬 목소리를 내며 박철수 의원이 ‘저요’하고 손을 들었다. 의장은 그를 발언대로 불렀다.

“존경하는 의장님! 동료 의원 여러분! 가자!선진기독당의 의원 박철수입니다.”

“빠른 번호수 배정받으려고 당명을 저렇게 바꿨다고 해요.”

“어쩐지 이름이 독특하더라.”

김정인 의원이 김명석 의원에게 속닥거리자, 그도 조용히 응대했다. 의석이 없는 정당들은 가나다순으로 기호가 배정되기에 철수는 당명을 ‘선진기독당’에서 ‘가자!선진기독당’으로 바꾸었다. 위에 있으면 실수로라도 표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계산이었다. 실제로 최근 선거에서 가자!선진기독당의 득표율은 조금이지만 상승했다. 그러나 유의미한 결과는 아니었다. 여전히 비례의석을 획득하기에는 한참 모자란 수치였다.

“우리 자유대한민국의 국회는 맨 처음에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 국회에서도 하나님에게 감사기도를 올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제정 분리 국가입니다.”

서진형 의원이 이의를 제기했다.

“마지막인데 어떻습니까? 그냥 각자의 신에게 기도를 올리도록 하죠.”

김명석 의원이 절충안을 내놓았다. ‘제정 분리’라는 단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던 박철수 의원은 김명석 의원의 말을 듣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서진형 의원은 여전히 불만이었지만 ‘마지막’이라는 말에 그러기로 했다. 어차피 자기들이 지금 국회에서 하는 행동도 헌법에 합치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말을 시작으로 박철수 의원은 기도를 시작했다. 몇몇은 “부처님”이라고 했고, 다른 몇몇은 아예 기도하지 않고 조용히 눈만 감았다. 박철수 의원이 대표로 낭독한 기도 내용은 대강 ‘자유대한민국을 지켜 주셔서 감사하고, 무궁한 발전을 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게 지도해주셔서 역시 무한히 감사하다.’였다. 특정 단어에 대해 김정인 의원이 눈살을 찌푸리기는 했지만, 박철수 의원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의안 제시할 의원님 계십니까?”

박철수 의원이 자리로 돌아가자 의장이 감사를 표하며 물었다.

“이번에는 제가 하겠습니다.”

한기정 의원이 손을 들었다.

“존경하는 의장님! 그리고 이 자리에 끝까지 함께 하시는 동료 의원 여러분!”

그가 비장한 어투로 발언하기 시작했다.

“우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오늘 이렇게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인 만큼, 우리 대한민국의 굳건한 정신을 후세에 남길, 대한의 의지가 남긴 결의안을 같이 논의하고 채택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멋진 제안입니다.”

양진만 의원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김정인 의원은 이번에도 몇몇 어구에 불쾌한 표정을 지었으나, 결의안 채택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럼 우선 어떤 내용이 들어가면 좋을지에 대해서 계속 토론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총장님 기록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미 하고 있었습니다.”

의장의 물음에 김명석 의원이 답했다. 그는 박철수 의원이 기도에 들어갔을 때부터 종이에 회의 내용을 적고 있었다. 의장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그럼 토론을 개시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이렇게 가칭 ‘대한민국의 마지막을 앞두고 후세에 남길 국회 결의안’과 관련한 토론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우선 화합의 정신을 넣어야 합니다.”

첫 번째 토론자로 나온 서진형 의원 강조했다.

“기존 정치인들은 지구 멸망이 발표되었음에도,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안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왜입니까? 자신의 정파 의견만 고집하다가 화합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명확히 반성을 표하고, 앞으로 화합이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강조해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화합하지 못한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의견을 조정하는 협치의 정신을 이 결의안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강조한다.’라고 쓰면 될까요?”

“네, 그 문장이 적절하겠군요”

김명석 의원이 제안하자 서진형 의원이 동의했다. 그러자 해당 조항을 결의안에 넣을 것인지 바로 투표에 들어갔고,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저는 강력한 질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토론자로 나선 박철수 의원이 말했다.

“하늘에는 하나님의 강력한 질서가 있듯이, 땅에서는 국가라는 강력한 권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혼란 속에서 후세를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공권력’에 대한 문구를 꼭 추가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그 국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쳤나요?”

김정인 의원이 즉각 반박했다.

“자유를 위해서 국가가 있다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얼마나 사람들을 억압했습니까? 국가권력은 시민에게 위임받은 한도에서, 인권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공권력’이라는 문구를 추가해서는 안 됩니다.”

“김정인 의원은 지금 대한민국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한기정 의원이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다시 반박했다.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얼마나 사람들을 억압했습니까?’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을 이야기했는데, 왜 모독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래서 운동권 출신이 안 되는 겁니다!”

“저는 운동권 출신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게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자, 그만, 조용히 합시다. 일단 두 의원님 진정하고 앉으세요.”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며 토론에 개입했다. 그제야 두 의원은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한기정 의원은 못마땅한 표정이었고, 이는 김정인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인권을 존중하는 강력한 질서’ 정도로 합의 보는 건 어떨까요?”

“강력한 질서가 인권을 존중하기에는...”

김정인 의원이 추가 반론을 하려고 했으나 ‘그만 투표합시다’라는 서진형 의원의 목소리에 묻혀 무산되었다. 의장은 바로 이 문구를 투표에 회부했다.

찬성 : 4 (한기정, 박철수, 양진만, 김명석)
반대 : 3 (김정인, 이정진, 서진형)

“재적 7인 중 찬성 4인으로서 ‘인권을 존중하는 강력한 질서’ 문구를 추가하는 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의장은 다소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투표 결과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발표했다.

“제가 제안할 것은 바로 평등에 대해서입니다.”

세 번째 토론은 의장인 이정진 의원의 발언으로 진행되었다. 본래 의장이 의안을 제시하지는 않으나, 특수한 상황이므로 의원들은 예외를 인정하기로 했다.

“우리 사회에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아실 겁니다. 가진 자는 매일 더 재산을 많이 가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매일 더 가난해져 갑니다. 이런 상황은 사회 갈등을 극단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 폐해에 대해 말하려면 끝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알고 저도 그것을 잘 알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후세는 불평등의 심각함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회의 책임을 강조한다. 사회는 교육, 의료, 주거 등의 분야에서 평등을 추구하고 실현해야 한다.’라는 문구를 제안하려고 합니다.”

“좋습니다.”

서진형 의원과 김정인 의원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러나 평등은 지극히 공산주의적 원리 아닙니까? 자유대한민국의 후세에 용납될 수 없습니다.”

박철수 의원이 이의를 제기했다.

“평등을 강조한다고 해서 반드시 공산주의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평등권은 우리 헌법에도 있는 하나의 권리지 않습니까? 그걸 강조한 내용을 넣자는 것일 뿐입니다.”

의장이 반박에 답했다. 하지만 박철수 의원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모두 평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내려준 소명과 능력은 다릅니다. 또한 사람의 노력에 따라 언제든지 부를 획득할 수 있는 우리 자유대한민국에서 평등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어떻겠습니까? 이북의 잔악한 공산정권의 경우처럼 파멸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지배하는 국가가 아닙니다. 또한 반드시 평등을 강조한다고 해서 모두 가난하게 살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기본적인 생활의 필수 요소 정도는 사회에서 마련해주어 굶어 죽지 않을 기반을 만들어주자는 겁니다.”

의장은 재차 반박했다. 그런데도 박철수 의원은 ‘결코 안 됩니다.’라고 완강히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에 한기정 의원도 동조하여 의장을 공격했다. 그러자 서진형 의원과 김정인 의원이 의장 편을 들며 말싸움이 커지기 시작했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흑백논리를 펼칩니까?”

“공산주의적 평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반발을 안 할 수가 있어요?”

말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김명석 의원은 이 싸움에 끼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러지 못했다. 자신이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말을 하려고 하면 다른 의원들이 논쟁에 개입하는 바람에 그는 계속 펜을 들어야만 했다.

“자, 그러지 마시고.”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며 상황을 진정시켰다.

“잠시 쉬었다가 하시죠. 15분 정도 휴회하겠습니다. 괜찮겠죠?”

이의를 제기하는 의원들은 없었다. 의장은 15분 동안 휴회를 선포했다. 의장은 한숨을 쉬며 의장석에 앉았다. 다른 의원들은 셋으로 나뉘었다. 김정인 의원과 서진형 의원의 진보 그룹과 박철수 의원과 한기정 의원의 보수 그룹, 그리고 그 가운데에 앉아있는 김명석 의원의 중도 그룹. 진보와 보수 그룹에 있는 의원들은 이후 전략을 논의했다. 중도 그룹에 있는 김명석 의원은 그것에 신경 쓰지 않고, 속기록을 점검하는데 바빴다.

“의석을 정돈해 주시길 바랍니다.”

15분이 지나자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평등에 관한 문구를 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에 관해서 토론 중이었습니다.”

“자유보수당과 가자!선진기독당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그런 문구를 넣어서는 안 됩니다.”

“환경동맹21과 개혁국민당, 그리고 사회진보당은 넣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국민통합당은 어떻습니까?”

두 그룹의 의견을 듣고 의장이 김명석 의원에게 물었다.

“평등 문구를 넣되 ‘각자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며, 권리를 향유한다.’라고 넣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야 양보할 생각이 있습니다.”

김명석 의원이 발언이 끝나자 박철수 의원이 말했다.

“의무를 다해야 권리가 생기는 게 아닙니다만.”

김정인 의원이 이의를 제기했으나, 이번에도 한기정 의원의 ‘투표합시다’ 목소리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의장은 토론 종결을 선포하고 해당 안건을 투표에 상정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찬성 : 4 (한기정, 박철수, 양진만, 김명석)
반대 : 3 (김정인, 이정진, 서진형)

“재적 7인 중 찬성 4인으로서 ‘각자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여 권리를 향유하는 의미로서의 평등을 강조한다.’’ 문구를 추가하는 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진보 그룹 의원들은 그것이 못마땅했으나 그들은 국회의원으로서 투표 결과를 따르기로 했다. 또한 어차피 넣어야 할 것은 많고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상대측도 양보하면서 자기들의 주장도 많이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평등 이야기 나왔습니다.”

다음 토론자로는 김정인 의원이 나왔다.

“우리 사회는 차별받는 소수자 집단이 있습니다. 성소수자, 노인, 청소년 등등 저는 기왕 평등에 관한 문구를 넣었다면 이들도 포용하는 것이 국회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는 성평등과 같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평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문구를 하위에 집어넣자고 요청합니다.”

“성평등은 절대 안 됩니다!”

박철수 의원이 고함을 지르며 일어섰다.

“그것은 하나님이 말한 죄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모르십니까? 모르신다면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동성애가 죄악인 이유를 설명해드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대한민국은 제정 분리 국가고, 무엇보다 동성애는 죄가 아닙니다.”

김정인 의원도 지지 않겠다는 강력한 어투로 반박했다.

“하지만 동성애는....”

“아무리 그렇게 이야기해도 죄가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죄가 아닙니다!”

김정인 의원이 항의하려는 박철수 의원의 말을 가로막고 소리쳤다.

“아니 이 여자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른이 말을 하는데.”

“이봐요.”

그 순간 겨우 불빛을 비추고 있던 전등이 하나 나갔다. 남은 전등 개수는 2개가 되었다.

“다들 진정하세요.”

의장이 의사봉을 세게 내리쳤다.

“박철수 의원님, 김정인 의원님에게 ‘이 여자가’ 하신 부분에 대해서 사과하세요.”

“대한민국도 모욕 당하는 마당에 그 정도는 감당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한기정 의원이 응수했다.

“도대체 그거하고 뭔 상관입니까!”

참다못한 서진형 의원이 한기정 의원을 향해 외쳤다.

“모욕적인 언사를 했으면 사과를 해야죠. 그리고 국회에서 그런 품격 없는 용어를 쓰는 게 어떻게 정당화됩니까!”

“아니 좌파 용어 쓰면서 대한민국을 비난하는 것도 되는데 그 정도도 안 된다고 하시는 겁니까? 이게 전형적인 아전인수 아닙니까!”

한기정 의원도 지지 않고 말했다.

“좌파라니! 말 좀 똑바로 하세요!”

김정인 의원이 가세하여 보수 그룹 쪽에 있는 의원들을 향해 외쳤다.

“아, 그렇지. 빨갱이라고 해야지.”

박철수 의원이 빈정거렸다.

“아니 이 사람들이!”

다시 전등 하나가 꺼졌다. 이제 국회 본회의장을 비추고 있는 전등은 단 하나였다.

“그러면 당신들을 친일독재 세력이라고 하면 좋겠어요!”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저 빨갱이들이.”

“좀! 닥치라고! 개새끼들아!”

“자, 진정하시고요. 의원님들!”

의장이 싸움을 말리려고 의사봉을 다시 세게 내리쳤으나, 그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의장에게 공격이 가해졌다.

“의장! 당신도 빨갱이 출신이었지? 지금 편드는 거야?”

“아닙니다.”

“뭐 하세요, 저런 인간들 퇴출하지 않고.”

“제가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말싸움은 거칠어져 갔다. ‘빨갱이’, ‘좌빨’, ‘우좀’, ‘친일파’, ‘반동’, ‘적폐 세력’과 같은 단어로 회의장이 시끄러워졌다. 의장은 몇 번이고 개입하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진보 그룹으로부터는 박철수 의원과 한기정 의원을 퇴출하라는 항의를, 보수 그룹으로부터는 편파 진행이라는 규탄을 들어야 했다.

“자자, 그럼 이렇게 합시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기록을 담당하던 김명석 의원이 일어나서 말했다. 그러자 의원들이 싸움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의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김명석 의원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이 문구를 넣는 대신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고치거나 아예 빼서 다른 거로 대체합시다.”

“그러면 본질이 사라진다고요! 본질이!”

서진형 의원이 곧바로 반박했다.

“아니 평등권을 그렇게 많이 넣으면, 공산주의에 오염된다니깐!”

박철수 의원도 지지 않고 말했다. 결국 다시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김명석 의원은 그 상황을 보고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다시 기록을 시작했다.

“이제 그만합시다! 그만! 산회를 선언합니다! 산회!”

참다못한 의장이 산회를 선포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세게 의사봉을 내리치고서는 본희의장을 나가버렸다. 그런데도 싸움은 한동안 계속되다가 박철수 의원이 ‘어휴 내가 더러워서 나간다!’라고 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박철수 의원과 한기정 의원은 ‘빨갱이 새끼들’이라고 분개했다. 그러고서는 자신들 앞에 있는 촛불을 끄며 말했다.

“좌파 새끼들이 나라를 망친다니깐!”

“누가 할 소리를!”

김정인 의원과 서진형 의원도 소리치며 본회의장을 빠져나왔다. 김명석 의원은 소란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내용을 종이에 적었다. 본회의장에는 그가 종이에 기록하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김명석 의원은 속기록을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본희의장에서 나왔다. 김명석 의원이 빠져나가자 위태롭게 목숨이 붙어있던 전등 하나도 꺼졌다.

‘17시 09분 산회’

김명석 의원이 쓴 속기록 마지막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대한민국 국회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어두운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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