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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문 Nov 13. 2019

덕질을 그만두며

홍콩 시민들과 함께하며

프로듀스 시즌 2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오릅니다. 순위발표식 때였는데, 순위가 급락했음에도 담담한 라이관린씨의 모습을 보면서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저의 고정 픽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 뒤부터 저는 꽤 오랜 기간 동안 라이관린 덕후를 자처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대만에서 혼인 평등이 이루어지자 라이관린 같은 남자를 만나러 대만에 가야겠다고 여권 농담도 치기도 했습니다. 소속사와 분쟁을 통해 홀로서기를 했을 때도 ‘연예인도 노동자다’라면서 연대의 의사를 비칠 정도로 저는 그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여전히 저는 그의 빛나는 외모를 볼 때마다 죽어있던 생기가 다시 깨어남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한 지금도 소속사의 분쟁에 있어 ‘라이관린씨는 연예 산업 노동자’라며 강력한 연대의 의사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물론, 기존 팬들처럼 적극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덕후라고 자처하는 것도 우스운 일일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도 그를 진심으로 걱정했던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작은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 저는 홍콩을 봅니다. 홍콩 민중이 바닥에 흘린 피를 봅니다. 거리에 쓰러진 홍콩 민중들을 봅니다. 사진뿐이지만 어떤 강렬함을 느낍니다.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시민들의 외침, 헌신, 희생. 한국의 현대사를 생각해봅니다. 87년 체제라고 말하는 지금의 민주주의는 현재 홍콩 시민들의 투쟁처럼 건설된 것입니다. 우리가 얻어 낸 민주주의가, 자유가 그런 기반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에서 홍콩도 그런 성과를 얻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홍콩 경찰을 지지하는 당신을, 그리고 제가 덕질하는 다른 연예인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의 팬이라고 이제는 자처할 수는 없습니다. 너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홍콩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애써 그런 덕질을 합리화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당신의 팬이 아니라, 홍콩 민중의 편에 서려고 합니다. 이것이 홍콩 민중들의 투쟁에 있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당신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사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의 압박이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든 간에 지지할 수밖에 없겠죠. 그럼에도 한 번 용기를 내주시길 바랍니다. 홍콩 민중들은 경찰에 짓밟혔습니다. 그들은 목숨도 바쳤습니다. 그들이 거리에 나온 용기처럼, 저는 라이관린씨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저의 마지막 당부입니다.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린린, 수년간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2019년 11월 13일 어느 덕후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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