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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문 Nov 07. 2019

모병제로 가는 길

'모병제를 시행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군대에 가게 된다'는 주장에 대하여

모병제 이야기가 계속 화제다. 나는 이전 글에서도 모병제에 대해 언급했지만, 이번에도 특별히 더 언급할 수밖에 없다. 바로 '모병제를 시행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군대에 가게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해당 논리는 모병제를 반대하기 위한 주요 논리로 하나다. 모병제를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사람들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분명 징병제로 인해 피해받는 상황을 끝내기위해 모병제로 전환하라고 주장했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재산에 따라 특정 고통이 전가되는 모병제가 좋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상황은 징병제에게 유리하지 않다. 오히려 모병제가 앞으로 가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지도 모른다. 인구는 끊임없이 감소할 예정이며 정부의 대책은 시원치 않다. 감군 계획이 있지만, 그 정도 줄여서 지금의 인원을 충원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차라리 모병제를 선택하자고 할지도 모른다. 정치권에서 화두가 된 것이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이미 예전부터 한국에서 모병제를 시행한다면 어떻게 해야할지는 여러 차례 분석된 바 있다. 즉, 정치권이 결단하면 모병제 시행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병제에게 유리한 상황이지만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따라온다. '군대에 가야만하는 가난한 사람들'. 충분히 현실적인 고려다. 그러나 이 논의에 있어 우리는 하나의 함정에 빠진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이다. 무한경쟁 교육, 사람을 갈아버리는 자본주의, 공정을 기대할 수 없는 문화. 이런 나라라면 모병제를 반대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체제를 계속 이대로 끌고 갈 수는 없다. 결국 문제는 체제다. '가난한 사람이 군대에 가게 되니까'라는 주장은 체제를 그대로 두겠다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우리는 징병제 존속과 사회 체제 유지라는 최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징병제도 바꾸고, 사회 체제도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우리는 개인이 진정한 자유로운 선택을 하게 만드는 사회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 모병제의 결과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모병제의 결과를 바꿀 생각을 먼저해야한다. 보편적 복지, 공정한 교육 등등 이미 대안은 제시되어 있다. 다만, 우리가 지금까지 애써 하지 않았을 뿐이다. 


모병제로 가는 길은 한국 사회 일대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모병을 해도 특정 국민이 어쩔 수 없이 군대에 끌려가는 상황을 막는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 현재 정치권에서는 제4차산업혁명을 이야기하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좋을 일이다. 오히려 미래를 정치인들이 각별히 신경 쓴다는 점에서 더 고무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들이 보지 않는 미래가 있다. 바로 지금의 체제가 불러올 끔직한 상황들에 대해서다. 징조들이 조금 씩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지만, 느긋한 태도로 관조하는 정치권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무언가라도 해야한다. 그리고 제대로 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가난해서 군대가는' 모병제라는 좋지 않은 상황을 지금 체제의 쓰레기 더미 위에 올려야 할 판이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과감한 체제의 전환으로 진정한 모병제로 가는 길을 만들거나, 특정인만 가는 모병제로 반창고로 땜빵질만 하거나, 지금의 비극을 더 악화시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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